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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19. 2021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다섯 식구가 자기에는 단칸방은 너무 좁았다. 서로의 체온은 겨울에는 득이었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독이었다. 가족에 대한 마음이 계절을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밤이면 아빠는 집 앞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얇은 이불을 가져다 놓았다. 엄마 옆에서 자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아빠가 자리를 잡고 누우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누웠다.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귀뚜라미가 내게 뛰어들까 봐 두려웠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은 눈을 감아도 비집고 들어와 잠들기 힘들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아빠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빠의 숨소리가 제일 무서웠다.     


 어찌 잠에 들고 다시 눈을 뜨면 항상 아빠는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다양한 사람이 아빠 대신 내 곁에 있었는데 하나같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중년의 여자가 내 이마를 짚으며 걱정해주기도 했었다.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걱정해주기도 했었다. 할아버지가 돗자리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나를 지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눈을 뜨고 자는 척을 하다, 도마뱀 꼬리 대신 이불을 두고 집으로 뛰어들어갔었다.     


 낯선 아이가 길에서 자고 있을 때 그것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성인이 되면서 외면은 쉽고 사랑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도망쳤지만 그들에게서 사랑을 배웠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볼 때, 길에서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볼 때 나는 내가 느끼는 마음보다 그 날 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노인의 리어카를 뒤에서 같이 밀 때, 큰 소리로 우는 아이를 익살스러운 표정을 내며 달랠 때 외면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복기였다.  

   

 내가 아빠의 숨소리를 두려워한 이유는 아빠가 나를 지키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빠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본가에 가면 종이호랑이 같은 아빠가 있다. 찢으면 찢길 것 같은 사람.

 가족은 계절이 상관없이 아빠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계절은 겨울이다. 어린 시절 겨울에는 단칸방에 모여 서로의 체온을 품었다. 따뜻한 마음을 품었다. 

 서늘한 마음은 어릴 적부터 여름의 것이었다. 우리는 사계절 여름을 살아왔다. 아빠 덕분에 온 몸에 화를 품고 자랐다. 


 크면 아빠에게 온갖 화를 내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늘한 마음 사이에서 언제부턴가 아빠에게 연민을 느꼈다. 아빠에 대한 감정을 몇 번이나 부정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결론은 항상 아빠를 불쌍해하는 것이 맞았다.


 아빠가 나를 두고 들어간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의도치 않았던 은혜라도 은혜는 은혜라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은혜를 갚는 것을 복수심이 아니라 연민의 감정을 품는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아빠에게 내 연민은 당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가르침이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말로 할 수는 없어 글로 남긴다. 

 아빠는 글을 모른다. 결국 내가 나를 다독이기 위해 쓴 글이다.

이전 17화 아빠에게 잠깐 고마웠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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