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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03. 2021

평화로운 날

 중학교 하교 길,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구급차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골목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았다. 해바라기를 하던 노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의 집을 살펴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죽은 걸까.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일이 생기면 평소에는 활짝 열어놓던 문을 굳게 닫았다.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처럼 무슨 일이냐 묻기 바쁜 사람들뿐이었다.


 우리 집 문이 열렸다. 구급대원이 먼저 나오고 엄마가 따라 나왔다. 아빠가 죽었나 생각했다. 구급대원은 빈손이었다. 구급대원은 이런 일은 119가 아니라 112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무엇인 걸까. 평소 같으면 고함 소리가 들렸을 집이 조용했다. 아빠는 비겁하고 영악했다. 자신이 지금 소리치면 구급대원이 아니라 경찰관이 들이닥칠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구급대원을 배웅하는 서글픈 엄마를 봤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금세 온데간데없고

 노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하나 둘 해바라기를 위해 나왔다.

 골목이 평상시 모습을 찾는 것은 순간이었다.

 집에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골목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만 일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가방이라도 두러 집에 들어갈까 하다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숨죽인 채 누워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허망하게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를 배경으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미워졌다. 엄마의 최초의 반항이자 방황이 뒤엉킨 채 널브러져 있었지만, 골목은 내 비명만큼이나 엄마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구급대원은  엄마를 데리고 갔어야 했다. 엄마를 부를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부른다면 엄마는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겠지만 그게 싫었다.     


 가방을 멘 채 동네를 배회했다. 어깨가 아팠다. 차마 경찰을 다시 부르지 못하는 엄마도 밉고 아팠다.

 아무리 걸어도 동네는 평화롭기만 했다. 얼마나 많은 일을 동네가 침묵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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