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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ul 25. 2017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일

브와디스와프 포드코빈스키 <광란>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선율,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림.

아무리 아름다운 작품이어도 그것에 감동받고 그것을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그 작품들은 생기를 잃는다. 물론 생명력을 잃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작품이어도 그것을 만든 사람이 불어넣은 생명마저 꺼져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예술가가 과연 있을까. 예술가들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강렬한 욕망과 세간의 평가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도도함 사이를 마치 진자 운동을 하듯, 오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거장들은 세상으로부터 터질듯한 찬사를 받은 후에, 숨겨왔던 도도함을 비로소 드러냈다.      


        

19세기, 폴란드의 한 젊은 화가도 그 같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세상에 내놓은 그림으로 넘치는 찬사를 받고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그런 꿈을. 폴란드 바르샤바(Warsaw)에서 태어난 브와디스와프 포드코빈스키(Władysław Podkowiński, 1866-1895)는 열정으로 가득찬 화가였다. 그는 십대 시절 보이치에흐 게르손(Wojciech Gerson, 1831-1901)에게서 그림을 배우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보이치에흐 게르손은 19세기 중반 폴란드에서 활동했던 화가로 포드코빈스키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한 인물이다. 그러나 포드코빈스키는 게르손 곁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약 4년간 미술 교육을 받은 것 외에 그가 정식으로 교육받은 기록은 없다. 그는 폴란드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1889년, 포드코빈스키는 파리로 떠난다.           


Władysław Podkowiński, <Szał>,1893


예술의 도시 파리는 야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의 가슴을 무두질하기 충분했다. 그는 당대 유럽 예술계를 매료시켰던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강렬한 물결을 직접 경험한다. 이 여행은 포드코빈스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파리 여행 후, 그는 비로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23세의 청년이 평생의 직업을 결정하기 전, 왜 망설임과 고민이 없었을까. 더욱 깊은 내면에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졌으리라. 내가 과연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 폴란드로 돌아온 포드코빈스키는 '젊은 폴란드(Young Poland)'의 회원이 되어 열심히 활동한다. ‘젊은 폴란드’는 폴란드의 모더니즘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이었다. 고리타분한 그림은 집어치우고, 당대 서유럽 특히 프랑스를 휩쓸고 있었던 최신 화풍을 따르자는 게 그들의 주된 주장이었다.


           



<광분(Szał)>(1893)은 포드코빈스키가 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칠흑같이 검은 거대한 말이 몸에 잔뜩 힘을 준 채 날뛰고 있다. 두 눈은 튀어나올 듯하고 콧구멍은 거세게 내뿜는 숨으로 벌름거린다. 누런 이빨들 사이로, 혀가 힘없이 쳐져 있고 침인지 거품인지 모를 것이 입 주변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갈기는 어디까지 나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흩어져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왜 <광분>인지 알만하다. 그러나 지금껏 열심히 묘사한 저 검은 말보다도 사실 우리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존재는 말 위에 올라탄 하얀 나신의 여자다. 벌거벗은 여자는 말이 무섭지도 않은 듯, 말의 목에 팔을 둘렀다. 두 눈을 꼭 감은 평온한 표정으로 꿈속을 유영하는 것만 같다.          



<광분>은 1894년 3월 18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자헹타 갤러리(Zachęta National Gallery of Art)에 전시됐다. 그림은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독특하고 기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그림은 높이 3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그러나 전시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포드코빈스키는 원하는 값에 그림을 팔지 못했다. 그가 그림 값으로 제시한 금액은 만 루블(rubles)이었지만 고작 삼천 루블에 그림을 사겠다고 한 구매자가 있을 뿐이었다. <광분>이 전시된 지 37일째 되던 날, 돌연 포드코빈스키가 갤러리를 찾았다.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그는 곧장 그림으로 돌진해 칼을 휘둘렀다. <광분>은 자신을 탄생시킨 이의 손에 갈기갈기 찢기고 만다. 이상한 점은 그가 말 위에 올라탄 여자만을 찢었다는 것이다. 광분한 말은 그대로 남겨둔 채.          


이 돌발사고 이후 무수한 소문이 돌았다. <광분> 속 여자는 포드코빈스키가 사랑했던 이를 모델로 그려진 것이며 그 여자와의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림 속 여자만을 찢었다는 이야기.  포드코빈스키는 아무런 해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전시가 끝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였다. <광분>을 그렸던 3개월 동안 평소 앓고 있던 폐병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사랑에 실패했기에 자신의 그림을 찢어버린 걸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게 한 것은 아닐까. 광분한 검은 말에 올라탄 하얀 나체의 여인은 어쩌면 화가로서의 성공, 화가로서 자신이 꿈꾸었던 밝은 미래,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었던 찬사 그 모든 것이 응축된 ‘찬란한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희망이 절망이 되었을 때, 

포드코빈스키에게 그림 속 여인은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없는 허상에 불과했으리라.              



                   





폴란드 크라쿠프 국립 미술관(Muzeum Narodowe w Krakowie) 전경

 


이 그림은 폴란드 크라쿠프 국립 미술관(Muzeum Narodowe w Krakowie)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 다음가는 제 2의 도시, 크라쿠프. 

이 곳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많은 문화 유적이 남아 있어요. 

브와디스코프 포드코빈스키의 젊음, 열정, 희망이 투영된 이 그림을 크라쿠프 국립 미술관에서 직접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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