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 방구와 '당당당' 당직 와이프

[노견 방구와 푸돌이] 우리 부부가 이들을 기억하는 방법

by 두부두애

'당당당~~당다리당당~~' 아내는 흥이 나는 말투로 '당'을 계속 외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당직을 며칠째 연달아 선 레지던트 의사들이 이를 '당당당'이라고 부른다던데, 그 말을 따온 모양이다.


"크크큭... 뭐야 여보 무슨 의사야? 전공의인 줄 알았어"

"아 이건 의사보다 더 해, 방구는 나랑만 떨어지면 잠을 안 자, 24시간 당직이야..."

시무룩하는 아내는 정작 표정이 밝다.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웃어넘겼다. '그래도 좋으면서'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개육아 당직을 서고 있는 아내, 안방에 들어오질 못한다. 불쌍해...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방구는 깨어있는 시간이면 '졸졸졸' 아내만 따라다닌다. 마치 갓 부화한 오리가 어미를 쫓아다니듯 어딜 가든 따라간다. 바닥에 깔아놓은 강아지 패드의 소리까지 겹치면 '탁~탁~탁~' 방구의 발걸음 소리가 가볍고 경쾌하게 울린다. 이 경쾌한 소리가 새벽에 울릴 때쯤이면 잠시 잠깐 침대에서 잠을 청하던 와이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내 잠을 깨고 방구를 재우러 간다.


심지어는 아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강아지 펜스를 넘어가면 방구는 힘없는 목소리로 '꺄우울'하고 운다. 빨리 다시 돌아오라는 신호다. 그럴 때면 아내는 조금만 기다리라는 의미로 보자기 모양의 손짓을 하고 방긋 웃으며 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정작 방구 옆에 내가 있건만 방구는 오매불망 아내만 쳐다본다. 이런... 방구 눈에는 아직 나란 녀석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19년을 누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방구인데 내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어린애가 된다더니 방구도 아내와 떨어지는 것이 싫은지 가끔 자다가 눈을 떠 아내가 주변에 있는지 살핀다. 그만큼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두려운 것 같다. 아내 역시 그런 방구의 마음을 잘 알아 지칠 법도 한데 별다른 불만 없이 방구의 투정을 다 받아준다.


아내를 보며 사랑의 깊이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신경 증상으로 괴로워하며 불안해하는 방구의 곁에서 자신의 잠마저 포기하고 쪽잠자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참 많은 것을 느낀다. 나도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지만 감히 와이프 앞에서 강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머쓱할 정도이다. 물론 아내는 나처럼 직장인이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워킹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나


"야, 두부야, 너 졌다 졌어! 방구가 여보보다 나 더 좋아해~"

쓰담 쓰담, 방구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강아지 전용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 아내가 나에게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진다. 쉽게 잠이 들지 못하는 방구는 눈을 떴다.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래, 내가 졌다. 방구 너만한 껌딱지가 없다 정말~


오늘도 저녁 9시쯤, 밤늦게 집에 도착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아내 품에 방구가 들려있다. 그리고 옆에는 방구와 같이 생활하는 푸돌이도 멍하니 서서 나를 쳐다본다.


혹시라도 방구와 푸돌이가 놀랄까봐 문고리를 부여잡고 조심스럽게 문을 살살 닫았다. 조심성 있게 행동하는 것이 조금씩 생활 습관으로 잡혀가고 있다.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강아지를 배려하다니 스스로가 대견한 것 같다. 아내에게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어서 나를 칭찬하라고 눈짓했더니 아내는 애 같던 내가 다 컸다며 기특해하며 받아준다.


나는 평소에 문을 '쾅' 닫는 등 조심성이 부족한 행동으로 강아지를 놀래킬 적이 있었는 데, 아내에게 여러 번 꾸지람을 들을 적이 있었다. 그게 남편으로서 때로는 서운할 적도 있었지만 방구와 푸돌이를 좋아하게 된 지금은 그런 나의 행동이 얼마나 강아지들을 놀래키고 아내를 불안하게 했을지 십분 공감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너무 부족해 실수투성이긴 하지만 말이다.


맨날 방구만 많이 안아준 것 같아 옆에 멍 때리고 있는 푸돌이부터 인사해준다. 멍을 때리고 있는 푸돌이는 나를 알아보는 건지 그냥 현관문이 열려서 좋은건지 아리송하다. 푸돌이도 나 반겨주는 것 맞겠지?


방구보다 1살 적은 18살 푸돌이 역시 노견으로 치매를 앓고 있다. 방구가 아파 푸돌이를 전보다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와이프는 늘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 아픈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신경을 덜 쓰게 된다던데,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는데...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싶다.


아내 품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방구. '푸돌이도 좀 안아주장~ 방구야!'

와이프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방구와 푸돌이에 관한 기록을 일자별로 남겨놓는데, 왜 24시간이면 없어질 스토리에 남기냐는 내 물음에 와이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얘들이 나중에 그렇게 되면, 이거 일자별로 다 묶어서 저장할 수 있거든..!!"


마음속에 쿵 하는 것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맞이할 수도 있는 그 순간을 아내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의 그런 모습이 찡하기도 하면서 안쓰러워 먹먹해졌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라'라고 말해도 그 어떤 이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난 아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대신 이렇게나마 글로서 방구와 푸돌이를 기억하는 것이 먼 훗날, 아내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 중 아닐까 싶다.


오! 지금 방구가 겨우 잠이 들었다. 와이프는 나에게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심각하게 손짓한다. 알겠다는 나의 응답과 함께 와이프와 나는 까치발로 침실로 몸을 옮긴다. 오늘 새벽에는 과연 방구가 깰 것인가? 아내는 오늘 당직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내일 아침이면 결과를 알겠지. 방구와 푸돌이가 함께하는 두부두애네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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