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마존이 될 수는 없다
유통사에서 반드시 겪게 될 고민거리다. 유통시장에서 파레토 법칙이란, 20%의 핵심상품(혹은 고객)이 매출의 80%를 차지하니 그 핵심 target에 역량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롱테일 법칙은, 고객의 성향과 기호가 다변화되면서 나머지 소소한 80%도 모이면 20%보다 오히려 월등한 결과를 낼 수 있기에, 더 다양한 상품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가 맞을까? 진부한 말이지만 정답은 없다. 사업가의 운영 목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top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롱테일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 Top 유통사 아마존이 겪은 일이며, 그 이후 아마존은 소수가 찾는 상품이라도 모든 상품들을 충실히 구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아마존처럼 되어야 할까?
내가 유통사에 근무할 때, 롱테일 vs 파레토 사이에서 임원진의 방향이 계속 바뀐 적이 있었다. 초반에는 "우리는 롱테일이다"였다. 명색이 국내 최대 유통사 中 하나인데, 상품 range는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롱테일을 하려면 감당할 만한 시스템과 인력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커피 하나를 팔더라도 맥심, 카누만 팔다가 레어템 원두까지 구비하려면, 소싱/가격네고/재고관리 등 기본적인 업무 부담이 크게 올라간다.
그래서인지, 상품들은 다양하게 깔려있는데 관리는 안되는 경우가 파다하다(재고가 없다던지, 가격이 잘못됐다던지 등). 어설프게 상품range만 확대했다가 cost만 확대되는 등 일련의 부작용을 겪고는, 다시 파레토 법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영방향이 바뀌곤 한다. "됐고, 잘 팔리는걸 확실히 잘 팔자!"
고백하건대, 실무단에서 단순히 매출이 아니라 상품개발 역량을 키우면서 보다 재밌게 일할 수 있는 쪽은 롱테일과 파레토 중 단연 '롱테일'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찾고 그 상품을 원하는 고객을 선점하는 과정을 통해 상품과 시장을 보는 눈이 생기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큐레이터'로서의 역량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인정받기 힘들다. 티가 잘 안나기 때문이다(10개를 소싱하여 구비 해 두어도, 1개가 없으면 그건 흠이 된다. 있으면 본전). 그렇다고 검증되지 않은 롱테일 상품을, 잘 팔리는 파레토 상품보다 우선하여 마케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공수는 동일하게 투입되지만 이에 따른 보상과 성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확실한 인력/물적 투자 없이 롱테일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판매량에 따른 상위 20%만 집중하는 파레토, 뭘 고를지 몰라 다 준비하는 롱테일 둘 다 엄밀히 말해 큐레이션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그나마 롱테일이 큐레이션의 역할을 일부 할 수는 있겠으나, 사전적으로 양적인 측면에서 모든 것을 구비한다는 것 뿐이다. 큐레이터의 '선택'에 따라 구비된 상품들을 보고, 그의 주관적 취향, 신념, 고민의 흔적이 느껴져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큐레이션이다.
단순히 고객의 선택지를 제한하거나 늘리는 것이 큐레이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통 종사자들은 알아야 한다. 선택지를 미리 예측 및 제안하여 고객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 해 주거나, 아예 생각지도 못한 New Range를 알려주는 것, 이 정도는 되어야 큐레이션 축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필히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기계 vs 사람, 누가 더 훌륭한 큐레이터 인가?" 모두가 고민 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