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들이 지닌 온도
몇 년간 잊고 있던 카카오스토리를 열게 되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옆에 카카오스토리가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여태 몰랐는데, 이게 뭐지? 싶어 터치하여 인증을 하고 열었더니 내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했던 카카오스토리가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신기해서 하나씩 보다가 2014년 어느 봄에 쓴 글을 보고 뭔가 좀 그리워졌다.
그러니까, 드디어 봄이라는 거다.
또 봄이 왔네, 봄이 왔어.
겨울잠에서 깨어나 튀어나오는 개구리처럼 울컥울컥 감정들이 좀 튄다.
좀 전에 다이어리도 정리하고 가계부도 쓰려고 앉아 있었는데 주뽕이가 거실에서 코미디 프로를 보고 있는 건지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들어도 어이없을 정도로 방정맞은 웃음소리.
피식거리며 쟤 또 저러네, 비웃다가 나도 모르게 멍하니 넋을 놓고 그 웃음소리를 듣게 되더라.
이런 소리 진짜 짱짱맨 짱짱걸로 오글거리는 거 내가 잘 아는데, 그 웃음소리가 일요일 오전 햇살 속에 섞여 들어 울리니까 문득 내가 아주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져 멍하니 한숨이 났다.
아, 나 또 왜 이래...... 임신하면 호르몬이 막 미쳐 날뛰어 기분이 이렇게 되나?
저 인간은 코미디 보면서 방정맞게 웃느라 정신줄 놓고 있는데 나 혼자 이러는 건 옳지 않아, 산책이나 하자 싶어 혼자 잠시 나왔다.
아파트 입구엔 드디어 꽃이 활짝 피었네. 진짜 봄이 왔구나.
기분은 여전히 말캉말캉. 이게 뭐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리스 수도원 기행문이었던가.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그 기행문을 보면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수도원의 어딘가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감동하는 장면이 있다. 이런 파란 소리는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녹음을 해도 소용없고 오직 이 순간 이 공기 속에서만 느낄 수가 있어 무라카미가 안타까워했는데 내가 지금 좀 그러네.
그리스 외딴 수도원의 경건하고 아름다운 새벽녘 종소리가 파랗게 울리던 순간이 얼마나 극적 일진 몰라도 나는 조금 전 일요일 오전 햇살 속에서 들었던 그 웃음소리가 참 좋았다.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워 한숨이 날 만큼 좋았다.
봄이니까. 호르몬이 미쳐 날뛰니까. 내가 지금 짱짱맨짱짱걸로 오글 모드니까.
수많은 일요일 중 하루쯤은 일요일의 마음은 원래 이래, 할 수 있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좋은 건 좋은 거니까, 괜찮다 뭐.
보다가 '이 널뛰는 감정의 흐름은 뭐지? 짱짱맨짱짱걸은 또 뭐야?' 하며 2014년 어느 봄날의 나를 비웃었다.
지금의 나는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감정표현을 우습게 여기거나 희석시키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저 때는 저런 말을 사용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신했을 때 무한도전을 보며 낄낄거리는 남편을 보며 썼던 글인가 본데 읽다 보니 불쑥불쑥 밀려드는 감정들과 아득해지는 어떤 그리움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나도 모르게 "참 오글거리네" 하고 말았다.
아하, 오글거린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구나, 하며 그 단어가 지닌 특별한 효용성을 인정해야만 했다.
남편은 무한도전 팬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한테는 무한도전이 최고다. 그 방송을 보며 소리 내어 크게 웃는 남편이 행복해 보여 나도 무한도전이 참 좋았다. 남편과 저녁을 먹거나 맥주를 나눠마시며 무한도전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남편은 정말 즐거워하며 소리 내어 크게 웃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는 것이 정말 즐거워서 크게 웃었다. 무한도전이 끝난 후 남편은 그 프로그램만 한 것이 없다며 채널 위를 여기저기 방황하다 결국 휴대폰을 붙잡고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남편이 무얼 보며 즐거워하고 웃는지 알 수가 없어 조금은 심심하고 아주 살짝 쓸쓸해서 무한도전이 많이 그립다.
그리하여 내게는 무한도전이 그립다는 말,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말은 같은 온도를 지닌 말이다.
무한~~~ 도전!! 오그리 토그리, 오글오글.
어쩌면 그 또한 사랑한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