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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빌리 Feb 14. 2023

주말 동안 주문한 플라스틱 쓰레기

유연하지만 단호한 마음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우리 집 요리사는 쿠팡과 마켓컬리와 배달의 민족이었다. 밀키트와 인스턴트 냉동식품, 배민에서 별점 4.5 이상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음식들을 냠냠- 먹으며 주말을 보냈는데 배달음식 용기를 버리려고 보니 분리수거함 주머니가 꽉 차 있었다. 그 주머니는 남편이 이틀에 한 번씩은 분리수거장에 가져가 정리하고 있는 터라 이렇게 꽉 찰 리가 없는데 싶었지만 주말 동안 주문했던 밀키트 등의 용기와 비닐포장이 과했던 것 같았다.

배달음식으로 생긴 플라스틱 용기만 따로 옆에 쌓아 정리하다가 문득 이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나 싶었다. 정말로 재활용이 되긴 하는 걸까. 주말마다 많은 집에서 이렇게 쏟아져 나올 텐데.


지난여름, 코로나 확진으로 집에만 있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다큐 몇 가지를 봤었다.

씨스파라시, 나의 문어선생님, 대지에 입맞춤을

쉽게 감흥 받고 자주 고무되는 나로선 그 다큐를 보고 꽤 충격받았다. 동네 빵집 중에 깜빠뉴가 맛있는 집이 알고 보니 비건 빵집이라(계산대 옆에 우리 제품은 모두 비건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비건에 관심이 가던 중이었기에 그 다큐들을 보곤 드디어 결심했다.

채식을 해야지

 

직장 생활과 가족들과의 식사 등의 이유로 온전한 채식은 자신 없었기에 조금 유연한 채식을 하기로 정했다.

가능하면 주 5일 채식, 채식 단계는 락토-오보(달걀과 유제품 섭취 가능)
환경을 위한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채식을 선택한 것이니 제품 소비 시 구매 가능한 선택지에 있다면 비건인증 제품 구입

내가 채식을 하려는 이유는 환경 때문이라 초점은 지속성을 지닌 확장성이.


지구 전체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채식을 한다면? 그런 소박한(?) 상상을 하며 채식을 한다. 종종 주 5일 채식에 실패하지만 지구를 위해선 위대한 사상가나 운동가보단 '고작 나' 정도 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난주에 실패했어도 이번주엔 다시 새 마음으로 시작한다. 나 같은 애들이 지구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풀떼기를 나눠 씹으며 오늘은 지구 컨디션이 어땠을까,에 대한 얘기를 소소하게 나누기를 꿈꾼다. 혼자서 되는 일은 아니니 이런 종류의 채식이 점점 늘어나 작은 힘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유연성을 지닌 너그러운 시선으로 채식을 한다...... 고, 스스로의 채식에 대해 정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쓰레기들은 뭐지?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한다는 내가 이 쓰레기에 대해선 좀 무감한 거 아닌가.

배달음식으로'만'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씻어서 분리수거함에 넣지만 정말 재활용이 되는지 모르겠다.
구내식당 메뉴를 살펴보고 밥과 김치만 먹어야 할 상황이면 꺼내드는 채식 도시락. 근데 이것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꼭 나온다


꾸준히 제로웨이스트 게시물을 찾아보며 그 지속적인 실천과 불편함을 감내하는 모습에 감탄한다. 결국은 소비를 줄이고 단순하게 살아야 환경오염이 덜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미니멀라이프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데 나의 감탄과 관심이 행동력과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나 보다.

하필이면, 주말에 배송되어 온 책이 이 책들이라 책을 보다가 또 반성했다.


텀블러를 새로 구입했지만 들고 다니기 귀찮아 카페에선 여전히 1회용 컵을 받아서 쓰고 있고, 우선 1년은 옷을 사지 않겠다(중고제품 제외) 결심했지만 봄 원피스와 셔츠가 이뻐서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결재 시기를 노리는 중이다. 지난주에 배민은 3번이나 이용했고 마켓컬리 박스가 현관 밖에 있는 아침이 꽤 많은 요즘이다.

북극곰을 살려주세요, 하던 광고에 충동적으로 시작했던 그린피스 후원을 잠시 뿌듯해하기만 했지 그린피스에서 보내온 활동보고서를 제대로 보지 않던 내 모습과 채식은 해도 쓰레기 문제에 무감한 내 모습은 결국 결이 같아서 부끄러웠다.


우선은 채식을 하는 유연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줄여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만큼만, 주변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만큼만 불편함을 감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나는 푸른 별 지구를 사랑한다.

내 아들이 다 큰 어른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붉게 눈부셨으면 좋겠고 바다는 하얀 파도와 푸른 물결로 청량한 소리를 내며 일렁였으면 좋겠다. 때로는 그 앞에서 울고 웃으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배민과 마켓컬리 주문은 무조건 줄인다.

일회용품 사용도 줄여 간다.

장바구니 옷은...... 반만(... 그럼, 반의 반? 아니, 블라우스랑 원피스 딱 두벌만? ㅠㅠ) 결제한다.

오늘 실패해도 내일 다시 시도한다. 유연하지만 조금은 단호한 마음으로 계속 계속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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