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 이글?

골프 스코어 이름 정리하기

by jim

골프를 시작하기 이전에도 뭔가 '엄청 좋은 것'이라는 정도로 '홀인원'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9시 뉴스 이후에 짧게 진행되는 스포츠 뉴스에서 종종 다루기도 했고, 각종 미디어에서 '실력과 운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었죠. 홀인원 Hole in One은 말 그대로 한 번의 스트로크로 공이 홀에 들어간 것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골퍼들이 그렇듯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못해볼 수도 있고요.


공을 한 번의 스트로크로 홀컵에 집어넣으려면 정확하게 깃대 방향으로 공을 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적절한 거리에 공을 떨어뜨릴 수도 있어야 하고, 공을 멈춰 세우기보다는 홀컵에 공이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을 높이려면 적당히 구름도 있게끔 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겠죠. 그러면 프로선수들이 매번 홀인원만 하겠죠. 마치 볼링 프로들이 대부분 스트라이크만 잡는 것처럼 말이니다. US 오픈 같은 대단한 경기에서도 홀인원이 마구마구 튀어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의 바람, 공이 떨어진 위치의 바닥과 잔디 상태, 경사 등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상호작용이 합쳐진 결과이니까요.


저와 아내는 지금까지 필드에서는 한 번도 홀인원을 해본 적은 없고, 스크린에서는 딱 한 번씩 해본 적이 있습니다. 멋진 리플레이에 카메라 워크도 다양하게 보여주니 기분이 좋더군요. 스윙이 잘 들어갔다는 손맛도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상의 화면에서 보여주는 홀인원은 '기분 좋으라고 만들어준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남아서 그 여운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까요. 아내는 본인이 홀인원을 하고서 '앞으로 계산대 앞에 있는 홀인원 게임에 응모해야겠다, 이번에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라고 했지만, 저는 '한두 번 또 홀인원을 한다고 쳐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마 꾸준히 내는 돈이 나중에 한번 받을까 말까 한 돈보다 많을 것이다'라고 반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홀인원은 아니지만, 딱 한번, 아직 120m는 족히 남은 거리에서 아이언 스트로크로 공을 한 번에 넣은 적이 있었습니다. 파 4 홀에서 세컨드샷, 라이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8번 아이언을 조금 짧게 잡고 작은 스윙으로 가볍게 휘둘렀고, 러프의 잔디는 조금 길고 거칠었지만 공 아래로 잘 들어간 느낌이 좋았습니다. 짧은 아이언이 항상 조금 좌로 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우로 흐르는 바람 덕분이었는지 희한하게도 공이 깃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습니다. 그린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좌우로 흐르는 경사도 없는 곳이었고, 공이 그린에 떨어진 것까지만 확인하고 카트로 돌아가서 퍼터와 - 혹시 뒤로 흘렀을 수도 있으니 - 웨지 하나를 챙겨서 자리에 앉았었습니다. 눈이 아주 좋지는 않기도 하고, 그날 날도 흐리고 해서 그린에 공이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의 샷을 기다렸다가 그린 쪽으로 다가가는 카트 안에서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제 공으로 보이는 공이 없더군요. 뒤로 넘어가서 OB가 된 것은 아닌지, 어디 짧게 떨어져서 배수로 같은 곳에 걸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면서 카트에서 일찌감치 내려 그린으로 걸어갔습니다.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홀컵 쪽으로 다가가서 슬쩍 보니 공 하나가 들어가 있더군요. 그게 제 처음이자 마지막 이글이었습니다.


골퍼라면 다 아실만한 내용이지만 홀인원 이야기를 통해서 골프 스코어 이름에 대해 조금 알아볼까 합니다. 골프를 시작하기 전에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홀인원이면 무조건 -2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글도 -2타라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계산법이었지만, 아마 골퍼라면 한 번씩 겪었을법한 일이지 않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골프의 각 홀은 파 PAR라고 부르는 규정된 타수가 있습니다. 파 4 홀이면 네 번의 스트로크를 통해 홀컵에 공을 집어넣으면 파, 파3 홀에서는 세 번 만에 넣으면 파인 것이죠. 이 파를 기준으로 적게 칠 수록 좋은 점수, 많이 칠 수록 나쁜 점수를 기록하는 경기가 바로 골프입니다. 골프에서 각 홀별 스코어를 이야기하는 용어가 참 재미있습니다. 버디, 이글, 앨버트로스 등등 새와 관련된 단어로 각 점수가 이름 지어져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1-08-21 오전 7.37.53.png Sparrow, Birdie


먼저 규정된 파 보다 1타를 적게 쳤을 경우, 즉 파 3홀에서 두 번 만에 넣거나, 파 4홀에서 세 번 만에 넣으면 버디 Birdie라고 합니다. 파 3홀에서 티샷으로 온그린을 성공하고 퍼팅 한 번만에 끝내는 것이죠. 파 4에서는 세컨드샷을 정확하게 해서 깃대 근처에 공을 붙여야 가능하고요.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파 5에서 버디 찬스를 많이 노리실 겁니다. 아주 길지 않은 파 5홀이라면 보통 세 번 만에 그린에 올릴 수 있고, 거리가 잘 나시는 분이라면 두 번 만에 그린이나 그 주변에 도착해서 어프로치-퍼터 또는 두 번의 퍼팅으로 안정적인 버디를 가져가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예전에 읽었던 골프 칼럼에서 '초보자들은 파 3홀에 열광하고, 상급자들은 파 5홀에서 미소 짓는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됩니다.


버디라는 말은 미국 뉴저지 아틀란틱 시티 골프장에서 Ab Smith가 "a bird of shot"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아틀란틱 시티 골프장에서는 버디라는 말이 생겨난 곳으로 기념 조형물도 있다고 하니 기념으로라도 한번 가볼 만하지 않을까요. -1타를 의미하는 버디뿐만 아니라 다른 용어들도 모두 새와 관련이 있습니다.


bald-eagle-adler-landskron-eagle-observatory.jpg Eagle


규정된 파 타수보다 2타를 덜 치게 되는 경우를 이글이라고 합니다. 파3에서 1타 만에 홀컵에 공을 집어넣으면, 즉 홀인원을 하면 홀인원이면서 이글이 되는 것이죠. 파 4에서는 세컨드 샷을 바로 집어넣거나, 초장 타자 분들의 경우에는 드라이버 티샷으로 온그린에 성공하고, 퍼팅으로 이 글을 챙기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파 5에서 두타만에 그린에 올라가는 투온을 성공할 수 있는 골퍼라면 한 번에 퍼팅을 넣으면 이글, 못 넣으면 버디를 하실 수 있겠죠.


이글이라는 명칭은 '버디'로 시작된 언더파 스코어 이름 붙이기 물결에 따라 좀 더 크고 멀리 날아가는 새를 찾다가 부르기도 쉽고 해서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스크린샷 2021-08-21 오전 7.38.01.png Albatross


앨버트로스부터는 프로들의 경기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스코어입니다. 한 홀에서 3언더파를 기록해야 하니, 파 4에서 홀인원을 하거나, 파 5를 원온-원퍼팅 또는 세컨드에서 홀인을 달성해야 하는 것이죠. 앨버트로스를 검색해보면 날개를 활짝 펼친 바다새가 나옵니다. 제가 아는 바다새는 갈매기 밖에 없다 보니, 왜 독수리보다 작은 새 이름이 더 어려운 스코어에 붙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앨버트로스는 '신천옹'이라는 이름의 대형 바다 조류라고 합니다.


Andean_Condor_in_flight.jpg Condor


앨버트로스까지만 공식 명칭이고, 4언더파부터는 비공식 명칭입니다. 무려 파 5 코스에서 홀인원을 해야 할 수 있는 4언더파는 대표적인 초대형 조류인 콘도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골프 역사에도 2021년 기준으로 딱 다섯 번 밖에 달성된 적이 없는 스코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골프코스는 파 5가 가장 긴 홀이니 5언더파부터는 달성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오래된 외국 골프장에는 파 6, 파 7홀도 가끔 있다고 하는데, 그런 곳이라면 5언더파를 도전해 볼 수도 있겠죠. 콘도르와 마찬가지로 비공식 용어이기는 하지만 5언더파를 달성하게 되면 '타조(오스트리치 Ostrich)'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스크린샷 2021-08-21 오전 7.37.42.png Bogey Owl


언더파와 같이 좋은 스코어는 다양한 이름이 붙어있지만, 오버파와 같은 감점에는 그냥 보기 Bogey라는 하나의 이름에 더블, 트리플 같은 숫자를 붙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규정된 파 타수보다 하나를 더 치게 되면 보기, 두 개를 더 치면 더블보기인 것이죠. 보기라는 말은 1890년대에 생겨났는데 당시 유행하던 노래 Here comes the Bogey man에서 유래되어 자연스럽게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Bogey man은 일종의 서양 유령이나 괴물 같은 존재인데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뭔가 문화적인 갭이 있어서 선뜻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네요. 언더파 스코어들과는 다르게 조류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단어를 붙였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보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좋지는 않다고 하지만 프로선수가 아닌 주말 아마추어 취미 골퍼의 입장에서, 각 홀에서 제가 목표로 하는 현실적인 스코어는 보기입니다. 18홀을 다 보기 이내로 막아내서 총 타수 앞자리를 8로 그려 넣는 것이죠. 파 4에서 3 온 2 퍼팅, 아주 정교하지는 않지만 큰 실수는 없는 플레이이지 않을까요. 물론 파나 버디가 더 좋은 스코어이지만, 공격적인 플레이는 그만큼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 더 큽니다. 해저드나 벙커를 가로질러 멀리 가야 한다면, 만약에 거리가 모자라면 2~3개의 타수가 늘어나겠지만, 옆으로 돌아가면 한타로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스코어는 역시 버디겠죠? 아니면 매 라운딩마다 한두 번은 꼭 이글 트라이를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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