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종교서적
아내가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식탁 위에 올려둔 책입니다. 지난 주말에 읽었던 책인데, 어떻게 서평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밑줄 쳐둔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봤습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부모님에 이끌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다녔고, 몰래 한두 번 빼먹고 오락실에 들렸을 때에는 이상하게도 꼭 걸려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곤 했습니다. 교회를 안 가놓고 갔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어머니뿐만 아니라 신께서 직접 노하셨을 수도 있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요일 아침 남들은 TV에서 만화영화를 보는 시간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교회에 앉아있어야 했고, 그렇게 교회는 제 삶 속에서 그냥 당연한 일과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이 또 이 종교였습니다. 제대로 일독을 마친 적은 없지만 큰 맘먹고 성경을 읽을 때면 항상 첫 장면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조물주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첫날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과 어두임이 생겼다고 하는데, 빛도 어둠도 없었던 그 이전은 도대체 어떤 상태였던 것인지부터 쓸데없는데 궁금증을 가지다 보니 그 뒤가 제대로 읽혔을 리가 없겠죠. 괜히 빛이 파동성과 입자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우주가 탄생하던 빅뱅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괜히 이런 것들만 구글에 검색하곤 했죠. 구글이 없던 초등학교 시절 교회학교 때에 비슷한 질문을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던 대학생 선생님께 드렸을 때도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으면 된다'는 답변 정도밖에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모든 종교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우리 사람들 수준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자 엄기영 목사님께서 책 중간에 '가시광선 밖에 보지 못하는 인간의 수준에서 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임마누엘 칸트의 이야기를 인용해 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기독교에 대해 맹목적으로 품고 있던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해 어느 정도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이쪽 분야의 기초체력이 부족한 탓일까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예배 설교에서 해주시는 좋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을 때면, 간혹 불경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좋은 말씀 해 주시는 목사님께서는, 당장 내일 월요일에 회사에서 펼쳐질 일들을 알고 계실까. 본인이 직접 겪으셔도 저렇게 말씀하신 대로 담담하게 헤쳐나갈 수 있으실까.' 다행히도 이 책에서는 그런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나마 답을 해주려고 노력하신 부분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맹목적인 메시지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원칙에 따른 선택'을 강조한 부분은 어떻게든 이해가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신앙에 대한 문제를 그래도 이해시켜 주시려고 노력하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 서적은 불교나 유교 서적에 비해 '그들만의 리그'이기는 합니다. 미국 유명 목사님 베스트셀러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국내에서 집필된 기독교 서적이 종교를 불문하고 널리 읽힌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유학 서적인 논어, 맹자 등은 하나의 고전서적으로 새로운 해설서가 꾸준히 나오기도 하고, 유명 스님들의 불교서적은 인문학의 일부로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에 자주 오르기도 했습니다. 20여 년 전 대학시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괜스레 모아 오고 집착하던 음악 CD 수집을 그만두었던 기억도 새록새록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나마 한주에 한 번씩 가던 교회생활도 느슨해진 요즘. 좋은 설교를 한편 듣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40년간 들어왔던 여느 설교와 마찬가지로 분명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수준에서 이 종교란, 꼭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꼭 다 이대로 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사실 그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괜히 읽다 보면 찔리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것이 종교에 대한 책이니까요. 그렇지만 자주는 접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가끔이라도 한 번씩 이쪽 책들도 꺼내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3. 그래서 기독교는 교회 예배당 건물이나 어떤 제도나 형식에 갇혀 있거나 매여 있을 수 없다.
47. 자율적 마음 없이 표현하는 사랑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90. 사람이 볼 수 있는 색은 빨주노초파남보와 같은 가시광선 안에 담긴 색뿐이다. (중략) 사람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이 가진 시각의 한계이다. (중략) 이렇게 틀림없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한계 때문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이성을 깨운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인식할 수 없는 인식의 한계를 이야기했다. 칸트는 신의 영역은 신앙의 눈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의 영역은 신앙의 눈을 통해서만 알 수 있지, 인간의 이성으로 전부 다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신지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믿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다.
95.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하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일컫는다.
108. 또 우리가 기차를 탔을 때, 기차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115. 우리를 부추기는 오늘날의 상향 주의적 가치관이 바로 가인의 문화다. 상향 주의적 가치관은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이다.
121. 죄의 감각은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길들면 끊기가 힘들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의 맛을 모르는 것이다. 술맛을 모르면 술을 끊는 것이 어렵지가 않고, 담배 맛을 모르면 담배를 끊는 게 어렵지 않고, 도박을 모르면 도박을 안 하는 게 어렵지 않다.
141. "형, 나는 영어 단어 하나 외울 때마다 내가 외운 이 지식으로 영혼들을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
149. 잘못 결정하면 실패할까 봐, 실패하면 손해 볼까 봐, 손해 보면 내 인생이 망가질까 봐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155. 안정감과 보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157. 우리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주님 앞에서 그 일들을 성실하게 하면 된다. 그래서 월급 받는 직장에서 업무 시간에 성경을 읽는 행위는 부적합하다. 회사일 하라고 월급을 준 거지 업무 중에 성경을 보라고 월급을 준 것이 아니다.
158. 그 사람들이 주인이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의 다스림 앞에서 성실하게 행해야 하는 일원론적 사고를 말씀하는 것이다.
181. 내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까 이웃을 사랑하는 걸까 분별해 보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하고 아니면 하지 않는다.
188.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원칙에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194. 성령이 우리 안에 일으키는 죄책감은 예수께로 더 나아가도록 한다. (중략) 그러나 사단이 주는 죄의식은 교회를 떠나게 하고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216. 비합리적인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스러운 사람, 매사가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 사람, 자신에 대한 비판에 너무 민감하고 주위 사람들의 웃음이나 귓속말들이 다 자기 이야기라고 착각하는 사람, 유별나게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아첨하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지나친 허풍, 분에 넘치는 너무 높은 목표 설정, 요란한 옷치장이나 자기 과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과 자기를 연관시키려는 등의 모습은 다 알고 보면 열등감에서 말미암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