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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n 12. 2021

표현의 기술

표현은 많았는데 기술을 찾을 수는 없었던 책

 흔히 '~~의 기술'이라는 책들은 한 분야의 대가들이 본인의 사상과 경험을 압축 해 놓은 글이 많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들 비롯하여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신간 서적 중에서도 ~~의 기술이 참 많습니다. ~~의 기술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Art of ~~ 정도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Art는 예술이 아닌 술(術)을 의미하고요. 손무가 쓴 병법서인 '손자병법'의 영문 번역본 제목도 The Art of War입니다. 우리가 '~~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접할 때는 잠깐씩 스쳐가는 아이디어나 감상 수준의 글보다는, 한 분야에 대한 통찰과 고민을 기대할 것입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이 제목에 이끌려 꺼내 보았습니다. 언론과 대중매체, 방송에 자주 등장하시는 유시민 씨의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꺼내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언론과 방송에서 자신의 의견 위주로 주장하시는 분들의 글이나 생각은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의견을 두루 수렴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너무 한쪽 주장만 보다 보면 좀 피로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좌측이나 우측,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치우친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Art, 즉 술(術)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본인의 글 위주로 인용하면서 본인의 표현은 많이 하셨는데, 제가 궁금했던 The Art of Expression, 나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두께도 제법 되는 책이었는데, 여백이 너무 큰 탓인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인지 본인이 과거에 표현했던 글에 대한 변 이외에는 크게 이 책만의, 이분만의 새로운 술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보통 술적인 부분을 다룰 때에는, 본인의 경험이나 실험만큼 타인의 사례에 대한 연구도 많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대부분 자신의 글 위주로 인용, 분석하시고, 일부 타인의 글은 자신을 변 하기 위한 악플 정도이니 그러한 부분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수많은 책을 집필하시고, 각종 방송에서도 지식인으로 활동하시는 분이었기에 책을 읽는 중간에 제가 좀 기대를 했던 탓이었을까요.


 본인은 세상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정치적 글쓰기를 하고 있으시다고 하는데, 타인이 본인에게 적는 글에 대해서는 대응을 하지 는 것을 추천하셨는데 이해는 되기도 하면서 안되기도 하는 모호함이 많이 남았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글 서두에 언급한 여러 가지 글쓰기의 목적 중에서 개인적으로 저는 미학적인 글쓰기나 정보전달을 위한 글쓰기가 정치적 글쓰기보다는 더 끌리곤 합니다. 제 생각도 바꾸는 것이 어려운데, 어찌 제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직 저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거창한 제목에 비해 제가 궁금했던 부분을 찾아볼 수 없어 다소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본인의 글과 대응에 대해 -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 다소 치우친 의견은 읽는 동안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일부 언론, 네티즌, 작가에 대해 돌려가며 이야기하실 때마다 얼마 전 정확한 확인 없이 특정인을 거론하며 국가기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고소를 당하고 사과를 했던 뉴스 기사가 떠오릅니다.


 사실 이 책에는 다른 작가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이후로 웹툰 조금을 제외하고 만화책을 제대로 시간 내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정훈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표현의 기술’이라는 제 하에 유시민 작가가 글로 표현했던 부분을 본인의 경험을 보태서 일부 만화로 같이 다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구성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책의 내용과 분량을 만회하기 위해 만화를 채워 넣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만화에서 조차도 ‘표현의 기술’을 논하는 책에서 반복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지적, 구세대에 대한 불만, 특정 서적과 작가에 대한 찬미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좀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짜 제목처럼 본인이 고찰한 표현의 ‘기술’을 진지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요즘 우연찮게 꺼내어 든 가벼운 제목의 서적에서 의외로 굵직한 가르침을 많이 받았었는데, 묵직한 제목에 제가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글이든지 다 배울 부분에 있습니다. 제가 잘 이해가 안 되고 공감이 안된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때로는 이렇게 ‘다른 생각’을 보면서 ‘틀린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도 유익한 것 같습니다.




11. 웃으면서 욕을 하는 소설가, 평온한 얼굴과 느릿한 어조로 과격한 말을 하는 작가들이 그리 드물지는 않습니다.


48.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두 가지 도덕법을 밝혔는데, 다들 아시는 정언명령 1번과 2번입니다. 정언명령 1번은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2번은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자격을 얻는다는 주장입니다. 그저 욕망을 충족하는 데만 매달려 사는 사람은 중력에 끌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당구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행복을 누리려면 욕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조언이지요.


55. 막말로 감정을 배설하거나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지 않고 제대로 주장을 펼친다면 논쟁은 좋은 겁니다. 예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72. 악플러들은 보통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를 않아요.


75. 비판과 인신공격의 경계선에 있는 댓글도 무시합니다.


81. 특별한 기대를 하면 특별히 실망하거나 특별히 서운해할 일이 많아집니다.


96. 강요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그 사람의 견해는 그것대로 존중하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말과 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남이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생각을 바꿀 리는 업습니다.


99.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보장은 없고, 단 한 번의 논쟁으로 옳고 그름 또는 승패가 가려지는 문제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100. 내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니, 남이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요.


132. 어떤 책이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둘째, 이해는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161.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책을 많이 읽는 데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책 속으로 젖어들어야 합니다.


207. 비평은 도대체 누가 비평하나? (중략) 비평가들은 서로 좀처럼 비평하지 않는데, 누가 그들에게 비판을 면제받는 특권을 주었다는 말인가?


343. 세상에는 훌륭한 지휘관들도 많겠지만 제가 사회생활에서 처음 모신 윗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중략) 어른들의 세계는 종종 아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유치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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