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익숙함
처음 골프를 시작했던 미국에서는 캐디와 함께 플레이를 하려면 한참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캐디가 어떤 역할을 해주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고, 제대로 맞는 샷도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골프채를 막 잡던 그때에는 캐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저와는 상관없는 그런 ‘전설 속의 존재’였죠.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드래곤이나 유니콘 같은 느낌이랄까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몇 년을 또 정신없이 일로 가득가득 채워 보내고 있다가 우연찮게 다시 운동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골프장에 대한 막연함이 있기는 했지만, 같이 나가기로 되어있던 형님께 이것저것 여쭈어보고 체크인 방법부터 실수해서는 안 되는 것들, 준비해야 할 것들을 잘 숙지했습니다. 뭐 잘 못 치는 거 아니까 부담 갖지 말고 ‘공이나 많이 챙겨와’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고요.
그런데 막상 나가기 전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캐디가 동반하는 제 생애 첫 라운딩이었던 것이죠. 소심한 성격 탓에 다시금 ‘모르는 사람이 나를 지켜본다, 평가한다’는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실력도 없는 만큼 혹여라도 누를 끼칠까 염려되어, 아이언 커버도 미리 다 벗겨놓고, 골프백 정리도 깔끔하게 해 두고 첫 티박스에 들어갔었습니다.
캐디님과의 첫 라운딩은 기존까지 해오던 골프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스코어카드에 그려져 있는 코스 약도를 꼼꼼히 보고, 거리를 재고, 직접 채를 고르고, 방향 참조점도 잡아야 했는데, 카트에서 내리자마자 알아서 채를 건네주시고, 어디를 보고 얼마큼 치라고 해주시니 이것은 아예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골프가 좀 더 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수풀 속으로 들어간 공도 찾아주시고, 그린에서 어떻게 치라고 방향까지 잡아주시더군요. 물론 저보다 작은 체구의 아주머니께서 무거운 클럽을 여러 개 챙겨서 몇 시간 동안 걸어 다니시는 것은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캐디를 동반한 첫 라운딩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 플레이하는 내용이 매 라운딩마다 같지 않듯이 임의로 배정되는 캐디님도 항상 같을 수만은 없더군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첫 홀 드라이버 실수를 보시고 마치 ‘오늘은 쉽지 않겠구나’라는 느낌으로 한숨을 쉬시는 분도 간혹 있었고, 본인보다 연배가 어려 보인다는 것 때문이신지 굳이 필요 없는 말들을 쉽게 쉽게 건네시는 분도 있으셨고, 우리 팀의 동반자인지 골프장에서 배치한 감시/진행요원인지 모르겠는 분도 계셨습니다.
초보시절에는 그리 좋은 볼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못 찾겠으면 로스트볼 선언하고 적당히 플레이를 했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 태권도를 전공하고 있다던 체대 여학생 - 캐디는 저 한참 아래 언덕에서 돌려받기도 민망한 로스트볼을 찾아다 주기도 했었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어떤 캐디께서는 두어 홀을 조용히 지켜보시고서 제가 클럽 선택을 갈팡질팡 할 때마다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셨죠. 좋은 기억도 절반, 그리 좋지 않은 기억도 절반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제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겠죠. 친구, 가족들과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 오래간만에 라운딩을 잡았는데, 날씨보다 캐디가 그날의 변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우리나라 골프장 현실을 감안할 때, 그리고 무분별하게 규칙에 맞지 않는 플레이어들도 없잖아 존재하기 때문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막 머리를 올린 친구와 함께 라운딩을 하거나, 어르신들을 모시고 플레이할 때에는 캐디를 동반하는 것이 확실히 편하게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지만, 선택을 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맹목적으로 불편함이 생기는 것이겠죠.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4차 산업혁명, 사물 인터넷 등이 이제 옛말이 아닌 시대인데, 편의점/마트에서도 셀프 결재를 하는 시대에 몇 가지 이미 다 나와있는 기술만 적용한다면 캐디 없이도 진행에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골프라는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 훌쩍 흘렀지만, 아직도 첫 티박스에 서면 가슴이 떨리고, 처음 만나는 분과 플레이할 때면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공보다 그분이 더 신경 쓰이곤 합니다. 좋은 분들과 라운딩 약속이 잡히면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체크하면서 설레다가, 전날 저녁 가방을 정리하고 나면, ‘아! 내일 어떤 캐디를 만나게 될까?’하는 걱정이 먼저 듭니다. 소심한 성격 탓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