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타를 넘던 시절, 혼자만의 착각
라운딩 할 기회가 별로 없던 시절, 스크린 골프만 간간히 가족, 친구들과 즐기던 때가 있었습니다. 경험이나 실력이 비슷비슷한 초보자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규칙도 스크린 골프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대로 신경 쓰지 않고 클럽을 휘두르기만 했고, 용어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스크린골프 게임 시 보통 1~1.5m 디폴트로 설정되어 있는 컨시드를 손대기 않고 그냥 플레이했기 때문에, '원래 이런가 보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 '컨시드'라는 건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죠.
100개를 치느냐 99개를 치냐를 그날의 목표로 삼고 있었고, '보기'만 해도 즐거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기회가 닿아 잘 치시는 분과 라운딩 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았습니다.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한수 배우는 자세로 나가서 제 공을 찾아 게임에 지장가지 않도록 열심히 빠릿빠릿 돌아다녔지만, 그린 주변에서 온탕 냉탕은 어쩔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첫 홀이었을 것입니다. 그린 언저리에서 마지막 주자로 막 올라갔을 때였죠.
오케이~!
OK?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면서 퍼터를 한 타 치고 나서, 카트에 올라 앞뒤 사정을 들어보니 이미 승부가 가려진 홀에서 OK를 받으면 그냥 볼을 집어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스크린에서 나오던 '컨시드'가 실제 라운딩에서는 이렇게 되는 거구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분들을 만나다 보니 오케이, 컨시드에도 주먹구구는 아니고 나름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 같다는 느꼈습니다. 물론 술래잡기 규칙, 고스톱 일부 특수 룰과 같이 '동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타이트한 경기를 하는 비슷한 실력의 또래들끼리는 그립을 제외한 퍼터 하나 길이 정도로 할 때도 있고, 서로 적당히 실력을 아닌 사람들끼리는 실수 없이 넣을만한 거리는 야박하지 않게 컨시드를 주지만, 옆으로 흐르는 경사와 같이 쉽지 않은 위치라면 아무리 가깝더라도 재미를 위해서 잘 주지 않기도 하더군요. (가까운 거리를 놓치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이기 때문일까요? 흐르는 경사를 잘 태워서 공을 홀컵에 넣으면 그것도 또 큰 즐거움일 테고요.) 각 홀별로 승패를 가리는 경기를 하시는 분들은 이미 승부가 가려진 홀에서는 바로 컨시드를 주시기도 합니다. 초보자가 끼어있을 경우에는, 그린까지 올라오는데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진행 차원에서도 그렇고, 초보자에 대한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도 그렇고 컨시드를 후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라운딩 당시를 다시 떠올려보면, 서너 번, 네댓 번 만에 가까스로 그린에 올라가고 나면 오케이를 후하게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잘 봐주셔서 그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사실 '진행'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사실 한 타 한 타 쫄깃쫄깃하게 치는 막역한 친구사이라면 소위 말하는 '땡그랑'할 때까지 내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몇 분 단위로 앞뒤팀 사이에서 열차처럼 이동해야 하는 우리나라 골프 현실에서 '실력이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어렵겠죠. 프로들처럼 세컨드샷 이내에 그린에 바로바로 올라갈 능력이 안된다면, 마킹하고, 공 줍고, 닦고, 경사를 읽어서 다시 내려놓고, 조용히 다른 사람 차례 기다리고 있다가, 내 순서를 봐서 치고 하는 것을 세네 번씩 하기는 빡빡하긴 합니다.
하지만 사실 짧은 거리라고 해서 무조건 넣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컨시드 없이 플레이하는 것이 진짜 자기 실력을 아는 것이겠죠. 위에서 이야기했던 '후한 오케이'를 받은 라운딩 직후에, 저는 '투 퍼팅 이상은 없겠구나'라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그린에 두세 번 만에 갈 수 있도록 아이언만 좀 더 연습하면 '금방 90타 초중반을 치겠구나' 망상을 했었죠. 하지만 웬일인걸요. '그때 같은 오케이'는 다시는 없었고, 들쑥날쑥한 퍼터로 인해, 쓰리 펏이 기본이다 보니, 아무리 두세 번 만에 그린에 올라가도 더블보기로 끝내는 홀이 더 많았습니다.
금방 줄어들 것만 같은 스코어가 '후한 컨시드' 없이 ‘보통의 플레이’ 속에서는 계속 제자리더군요. 네다섯 번 만에 그린에 올라가면 쉽게들 주시던 '오케이'라는 소리가, 두세 번 만에 올라가서는 잘 나오지 않으니, 분명 그린까지 올라가는 플레이가 확연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코어카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4 온 2 퍼트였던 더블보기가 2 온 4 퍼트 더블보기가 되었으니 결국은 제자리였습니다. 당시에는 조금 야속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제 실력을 알고 부족한 것들을 고쳐나가기에는 진행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가급적 컨시드 없이 끝까지 플레이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들은 컨시드를 받는 게 더 좋으신가요? 아니면 땡그랑 할 때까지 플레이를 하는 게 좋으신가요? 그리고 컨시드는 좀 후하게 주시는 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