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타를 깰 것인가, 드라이버를 멋지게 칠 것인가?

자존심의 문제인가, 남들을 의식하는 것이 문제인가?

by jim

연습을 열심히 열심히 하다가 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동네에서 두어 달 레슨을 받고 근 10년이 지나서야 머리를 올렸으니, 사실 당시 저는 '저만의' 스윙을 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스윙의 원리와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 없었을 것이었고요. 그래도 운동 약속이 잡히면 늦지 않게 퇴근하는 저녁마다 '어쨌든 똑바로 공을 앞으로는 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 근처 연습장을 빼먹지 않고 다녔습니다. 예전 기억을 더듬고, 유튜브 레슨도 열심히 찾아보면서, 나름의 원리를 이해해 가면서, 쌓여가는 관심만큼이나 아이언 샷들은 점점 거리도 일정해지고, 좌우 오차 폭도 좁아졌습니다.



문제는 드라이버와 같은 긴 채였죠. 우드는 클럽 세트에 아직 꽂혀있지도 않았을 시기였고, 드라이버, 하이브리드 하나, 아이언은 4번부터 P, A, S로 구성된 풀세트였습니다. 아이언도 4~5번의 긴 채는 잘 안 맞는 경우가 좀 있었지만, 드라이버처럼 잘 맞은 느낌인데도 공이 우측으로 한없이 휘어나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때의 힘든 기억이 과장되게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거의 앞으로 날아가는 만큼 우측으로 휘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운동을 몇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가 좀 덜 죽는 날이면 100개를 훌쩍 넘겼고, 차라리 탑핑으로 공이 굴러서 100m도 안 날아가더라도 좀 덜 죽는 날에 오히려 98~99개를 기록하곤 했죠. 나아지는 것 없이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라운딩 약속이 잡히고 연습장을 다닐 때면 절반 이상의 시간을 드라이버에 투자하고,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고, 힘이 들어갈수록 공은 더 옆으로만 속절없이 휘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터넷이나 아무리 책을 뒤져봐도, 제 상황을 보고 저에게 맞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 다른 솔루션만 제시해주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그립을 강하게 잡아야 된다. 또 다른 분은 아예 왼쪽을 보고 쳐라. 아니면 어드레스부터 헤드를 닫아라. 백스윙을 샬로우 하게 가져가야 한다. 인 투 아웃으로 던져라. 로테이션을 해라. 알아들을 수 있는 말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전문용어들까지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원인에 맞는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근거 없는 말들과 일반적인 답변으로 자가진단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


드라이버와의 악연이 깊어지고 악순환에 들어가다 보니, 티박스가 부담스러워지고, 괜히 게임의 긴장감만 떨어지고 공 찾으러 시간만 낭비하게 될까 봐 동반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커져갔습니다. 궁지에 몰리게 되니,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게 되더군요. "장비 탓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라운딩을 마치고, 고민 끝에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골프 숍에 갔고, 골프채 브랜드도 잘 모르면서, 아직 드라이버 스윙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추천해주는 신제품을 몇 개 휘둘러 보고, 수십만 원의 클럽을 덜컥 사 왔습니다. 물론 다행히도 그 클럽을 지금까지 잘 쓰고 있지만, 샤프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그냥 덜컥 그렇게 싸지도 않은 신제품을 덜컥 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식해서 용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아무 차나 저한테 잘 맞을 것 같은 것 골라 주세요'라고 중고차 딜러를 찾아간 것 같달까요.


역시나 클럽을 바꿔도 제가 바뀌지 않았으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관용성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까지 들고 다니던 클럽이 아시는 분을 통해서 20만 원 돈에 업어온 세트였는데, 클럽 한 개를 4~50만 원을 주고 샀으니 그런 정신 승리라도 했어야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긴 채를 편안하게 휘두르는 저만의 스윙이 완성되기 이전에, 로테이션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때, 인 투 아웃이라는 스윙 궤도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때, 드로우와 페이드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을 때(슬라이스와 훅만 알고 있을 때), 드라이버 티샷 슬라이스가 나는 것은 당연했던 수순이었는데,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몸으로 하는 운동이 수학 공식이 아닌데, 이해만 하면 바로 될 거라고 저를 과신했던 탓이겠죠.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스코어카드를 무심코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18홀 파 72 코스에서 보통 4홀 정도 있는 파3를 제외하면 드라이버 휘두르는 것은 14번 정도였습니다. '이걸 꼭 드라이버로 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 당시 LPGA에서 활약하던 주타누간 선수도 드라이버가 아닌 클럽으로 티샷을 하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스코어카드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불현듯 만화책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안 선생님께서 서태웅, 윤대협을 이기고 많은 득점에만 집착하는 강백호에게 리바운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장면이었죠. 오펜스 리바운드를 빼앗기면 상대방이 득점을 하게 되어, 우리 득점 기회 상실 -2점, 상대방 득점 +2점으로 4점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만약에 그 리바운드를 강백호가 잡게 되면 상대방의 득점 기회는 상실되고, 우리가 득점을 하게 되어, 그 리바운드의 가치는 8점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숫자가 정확한지는 모르겠네요.)


드라이버가 OB가 나면, 벌타를 받고 다음 티샷을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네 번째 샷이 되어야 간신히 아이언을 들고 그린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티샷을 자신 있는 클럽으로 하게 되면, 짧은 홀에서는 롱 아이언으로 바로 그린이나 주변을 노려볼 수도 있고, 긴 홀이라고 하더라도 세 번째 샷으로 그린 또는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잘 치는 골퍼도 아니고 장타자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요즘에도 드라이버는 운에 따라 180~220m 정도를 염두에 두고 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샷이 크게 오차 없이 똑바로 날아가는 하이브리드는 뒤땅을 심하게 치지 않으면 180m 전후로 거리를 두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컨드 샷을 해야 하는 거리가 부담되지 않으면 굳이 드라이버를 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100타를 깨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파 72 기준으로 모든 홀을 더블 보기로 플레이하면 36 오버파, 108타로 마무리됩니다. 보기플레이를 하면 18 오버파, 90타이고요. 보기를 목표로 한 홀 한 홀 차근차근 막아나가고, 절반 정도는 실수해서 더블보기 한다고 하면 100타를 깰 수 있는 것입니다. 드라이버가 OB가 나면, OB 벌타 없이 파를 하듯이 아주 잘 쳐야 간신히 더블보기로 막을 수 있고, 실력껏 적당히 실수해가면서 치면 보통 트리블 보기 이상이 나옵니다. 일단 100타 이내로 들어오려면 벌타를 줄이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린에 올라가기까지 서너 타로 올라가서, 퍼팅 한두 개로 마무리를 한다고 하면, 사실 안정적으로 90타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는데, 항상 큰 변수는 그날의 드라이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더군요. 티박스에 하이브리드나 아이언을 들고 가니 그때부터 주변에서 토론이 시작됩니다. '남자'냐 아니냐는 성별 논란부터, 그러면 골프가 늘지를 않는다는 향후 전망 예측, 드라이버 슬라이스 방지 원포인트 레슨까지. 결국 다시 드라이버를 잡았고, 대여섯 개 정도의 OB와 함께 볼도 저 멀리 날려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친구와 드라이버가 바뀐 적이 있습니다. 캐디분께서 드라이버 커버를 서로 바꿔 끼우시고, 그러다 보니 서로 커버는 제 가방을 찾아왔지만, 그 안에 있는 실제 클럽은 반대로 들어가 버린 것이죠. 그것을 그다음 주 연습장에서 깨닫게 되고, 서로 먼 지역에 있었던 차라 부랴부랴 서로 연락해서 택배로 클럽을 발송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친구 클럽은 주말 전에 도착했고, 제 클럽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 주에 있었던 라운딩에서 '본의 아니게' 드라이버 없이 플레이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군요. 매홀 하이브리드나 아이언들 들고 올라가서 숏티를 꽂을 때마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내 드라이버로 칠래?"라고 한두 번 권유해 주신 분도 있었지만, "제가 부러뜨릴 수도 있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더 이상 권하지도 않으시더군요. 그날의 플레이는 아주 마음이 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OB나 해저드 같은 벌타도 없었고요. 물론 버디를 잡는다거나 파를 수월하게 한다거나 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없었지만, 그때는 그런 실력도 미처 되지 않았고, 더블보기 숫자보다 보기의 수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이버가 없었지만 오히려 마음이 더욱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플레이는 안정적으로 90대 중반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날 이후로 드라이버가 잘 맞지 않는 날은, 그리고 코스가 길지 않을 때는 드라이버를 잡지 않고 하이브리드나 롱 아이언을 들고 올라갑니다. 드라이버를 잘 쳐놓고 세컨드 샷으로 그린에 올린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그린 위치에 공을 세우는 능력이 없는 저로서는 두 번 만에 그린 끝자락에 올라가서 롱 퍼팅을 하는 것과, 그린 주변 몇십 미터 어프로치를 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죠. 세 번 만에 홀컵 근처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나니 굳이 긴 채로 멀리 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물론 싱글 플레이를 한다거나, 언더파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드라이버를 공격적으로 250m씩 날려 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끝이 아니라, 세컨드를 날카롭게 쳐야 하고, 퍼팅을 한번 만에 끝내야겠죠. 아직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는 드라이버 티샷보다 다른 데에서 잃고 있는 스코어를 먼저 챙기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이롭고, 골프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저에게 골프는 동반자와 하는 운동일뿐만 아니라, 과거의 저와 겨루는 경기이기도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보여주기보다는, 지난주, 지난달의 저보다 나아지기 위해 좀 더 영리한 플레이가 필요했습니다.


특히나 드라이버 OB를 내면, 바로 드라이버를 또 휘두르지 않고 있습니다. 몇 초, 몇 분 만에 달라질 것이었으면 애초부터 그런 실수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괜히 기분만 더 나빠질 수도 있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소심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1938년부터 프로로 활동하여 통산 74승을 거두었던 Bobby Locke의 명언으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You drive for show, but putt for dough(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시원하게 파란 하늘을 찢으며 날아가는 그 맛을 포기하긴 어렵죠. 주말골퍼 아마추어일 뿐이니까요. 다들 그날 본인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즐거운 라운딩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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