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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Jul 11. 2021

Fight Club

액션 영화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걷어찬 철학적 작품

 파이트 클럽, 막연히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액션 영화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1999년도에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사실 이 영화의 유명세에 비해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동안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몇 주 전에 브래드 피트 주연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그의 영화를 좀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번 주말 안방극장에서 '파이트 클럽'을 아내와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전에 제대로 된 브래드 피트 영화를 본 적이 없던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영화는 거의 빼먹지 않고 관람했었는데, 은근히 허스키하게 긁히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알아듣기 어려워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영화의 주제 자체가 끌리지 않았던 탓일지 '브래드 피트'의 필모그래피에는 아직도 보지 않은 영화가 많았습니다.


 영화 자체가 특정 지역을 부각시키는 작품은 아니다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 '여기가 어딜까'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넓게 펼쳐진 주차장과 별다른 익스테리어 없이 툭툭 떨어진 건물들을 보면서 동부는 아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유명배우가 나오는 헐리웃 영화답게 대부분이 L.A.에서 촬영되었더군요. 동명의 원작 소설의 배경은 다른 곳이라고 하니, 아마 지역적인 특색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파이트 클럽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듯이 싸움으로 인해 깨진 얼굴, 웃통을 벗고 드러난 복근과 날렵한 외복사근 등은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일 것입니다. 짧은 머리에 약간은 불량해 보이는 이 영화의 젊은 브래드 피트는 올해 봤었던 '델마와 루이스'에서의 그 모습과 비슷하기도 했고, 지금은 훈훈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데뷔 초에는 가벼운 역할 위주로 했던 우리나라 배우 '공유'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시원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액션보다는 '폭력'이 이 영화를 설명하는데 더 적당한 단어일 것 같고, 실제로는 '자기들끼리 싸움'하는 '클럽'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단체'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세기말 미국 사회를 반영한 것일까요.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에 대한 매우 강렬한 비판이 목적이 영화였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가면서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소시민들에게 내재될 수도 있을 법한 불만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콘셉트의 영화였죠.


 영화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인셉션이나 셔터 아일랜드 수준이라고 할까요. 예전 영화일수록 친절한 설명보다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사고를 요하는 경향이 크다 보니, 20년도 더 된 이 영화는 방금 거론했던 인셉션이나 셔터 아일랜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측하고, 생각하면서 쫓아가야 합니다. 까딱하다가는 맥락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1999년, 세기말이었습니다. 다들 뭔가 큰 변화가 닥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죠. 미국의 현대사에서 큰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건물인 뉴욕의 World Trade Center를 반미 테러집단이 무너뜨린 9.11 테러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2001년 9.11 테러 몇 년 전에 제작된 작품인데, 혹시 테러리스트들이 이 작품에서 모티베이션을 찾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신용 중심의 경제 사회를 불만이 가득 찬 소시민들이 무너뜨리고자 신용카드 회사 건물에 맹목적인 테러를 자행한다니 말입니다.


 축축한 장마철 여름 저녁, 잘생긴 걸출한 남자 배우의 몸매와 액션 격투신을 볼 요양으로 가볍게 선택한 영화였는데, 그 중심 사상과 전개 방식이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억눌릴 대로 억눌린 주인공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내 자아와 이성적인 자아의 충돌, 나도 모르게 내가 충동과 욕망 속에 만들어 버린 괴물, 정신분열 등등 뭐 하나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들이 가득 찬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찾아보니,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회자될 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아마 IMF를 막 극복하고 있던 우리 사회에는 이 영화의 생각을 담을 만한 여유가 사람들 사이에 없지 않았을까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대기업에 종사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생활비를 벌고, 공허한 마음을 이케아 가구를 구매하면서 채워나가다 결국 스스로를 놓쳐버린 주인공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이 얼핏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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