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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초이 Oct 15. 2021

두집 살림

오랜만의 근황

드디어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는 단계에 들어섰으며 한 학기만 무사히 지난다면 졸업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표집이 무사히 진행된다면, 연구결과가 잘 나온다면, 다음 커미티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등.


이 바쁜 와중에 나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하였다. 마침 인테리어 값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내가 계획한 평당 100만원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따라서 반강제로 반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게 되었다. 틈틈히 서울의 연구실과 경기도 작업현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나의 취향을 풀로 담아 집을 가꿨다. 집꾸미기 인플루언서와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한 저예산 내추럴 인테리어이지만 소중한 나의 집을 공개해본다.


해가 차분히 스며드는 거실 전경


나의 퀘렌시아, 나의 발코니


발코니에서 소풍을


아이의 방은 무조건 다채로워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서 집은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가 되었다. 정말이지 집은 그 집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늘 조급하게 살았던 20대의 집은 차가웠고, 식재료는 바닥났건만 치장할 옷은 풍년이었다. 집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향해 애썼던 나는 내면을 지향하는 힘이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가 성장할 포근하고 단정한 집을 꿈꾸게 되었다. 행복하게 웃는 아이 사진의 배경에 내추럴한 우드톤의 따스함이 배이길 바랬다. 20년 후에 그 사진을 봤을 때, 우리 그 집에서 정말 행복했다는 느낌이 가득하길 바랬다. 그래서 난 가족이 오손도손 떠드는 지금의 집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풀타임 대학원생으로 매일 학교에 나가야만 하고, 아이는 학교소속 어린이집에 다닌다. 매일 아이를 태워서 고속도로를 1시간씩 타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4살은 어린이집을 중간에 옮기기에 너무 성숙해서(?) 갈 곳도 없다.  그래서....우리 가족은 평일에 원룸에서 지내기로 했다.


내가 그리 사랑해마지 않는, 나의 소중한 공간은 주말에만 만나게 되었다. N평 가량의 원룸에서 가족 3명이 숨만 쉬고 지낸다. 처음엔 살짝 달라진 공간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건만, 이내 속상해져 버렸다. 곰팡이가 보이는 천장,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오가는 샤워기 등. 매달 내는 돈이 적지도 않건만 삶의 질은 급하강했다. 원룸은 우리가 '작은 집'이라 칭하는데, 아이는 작은 집에는 가기가 싫단다. 장난감도 없고 TV도 없어서 그렇단다. 언어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그 어린 애도 두 공간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리라. 아이가 TV 대신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유투브를 보는 뒷모습을 찍었다. 사진을 본 지인들은 '사업 망한 사장님 같다', '어깨가 너무 슬퍼보인다' 등 웃음 터질만한 명언들을 남겼다.


미안하다...


원룸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 것은 너무 아쉬우니 우리집 뒷길을 투척해본다. 30년 다 되가는 구축아파트 답게 키 큰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긴 우리가 뒷마당이라 부르는 곳인데, 하루에도 여러번 진짜 우리집 뒷마당처럼 노닥거리다 들어온다. 빛에 반사되는 초록 잎을 보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순수해진다. 너에게 이 곳이 리틀 포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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