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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Aug 09. 2021

뭐야, 바지가 왜 안 들어가?

옷장에 가득한 바지, 하지만 다 입지를 못 하네.

나는 바지를 참 좋아한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골라입는 20대 시절에도 나는 줄곧 바지를 즐겨입었었다. 그런 나의 성향이 직장인이 되어서도 유지가 되었었고, 나는 쇼핑몰만 들어가면 아직도 슬랙스를 구경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작년 봄, 임신한 소식을 알고부터 슬슬 불어나는 복부때문에 그 좋아하던 바지는 다 제쳐두게 되었고, '내년엔 꼭 입어야지' 하고는 볼록 나오는 배가 편안한 원피스를 몇 장 사서 돌려 입고 출근을 했었다. 그렇게 출산 후에 집에 돌아와서 스타일러에 오래된 옷장 속 슬랙스들을 다 스팀하고 출산 휴가 후 입고갈 생각만 했었다. 


이거 진짜 내 사이즈 맞아? 


헐. 이게 무슨 일인지 처음 집은 슬랙스가 허벅지에서 낑겼다. '말도 안 돼...' 한 1분 정도는 현실을 부정하다가, 뒤이어 꺼내본 바지들도 맞지 않거나 겨우겨우 버클을 잠그는 상황을 목격하고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 많은 예쁜 바지들을 못 입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슬펐다. 


당장 주말 지나고나면 출근인데, 코로나 때문에 아기를 데리고 쇼핑을 가기도, 신생아를 두고 쇼핑몰을 여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옷장에는 바지만 가득할 뿐, 원피스는 계절에 맞지않거나 너무 어릴 때 입었던 것들 뿐이었다. 


결국 나는 허리가 밴딩처리된 펑퍼짐한 바지만 골라두게 되었다. 이 몇 장 되지않는 아주 편안한 바지 서너개를 갖고 돌려가며 출근할 때 입어야 했다. 예쁜 바지를 매일매일 다르게 입고 출근하는 재미가 있었던 나에게는 참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무조건 다시 돌아간다, 예전 사이즈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이 현실을 탈피하기로 마음 먹었다.  새로 큰 사이즈 옷을 사기에는 돈도 아깝고 무엇보다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참에 원피스를 입고다녀보라는 엄마의 조언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 원피스를 입으며 분명 나는 이 상태로 계속 살 것이기에. 


냉정하게 현재의 나를 돌아보았다. 몸무게를 재어보니 출산 후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려면 아직 5kg가 남았고, 허리 사이즈는 옷장 속의 바지를 기준으로 스판끼 없는 바지를 무리없이 입어야 한다. 기필코 돌아가고 말겠어!


누가 보면 취미로 운동하는거 맞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 악물고 독하게 운동했던 임신 전 그 때처럼 운동하면 되리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운동은 배신하지 않거든. 다만 아직 회복이 덜 된 나의 몸 곳곳의 관절들이 시리기도 하니까 조심스럽긴 했다. 


출산 전후로 이사하면서 어디다 뒀는지 알 길이 없던 요가매트와 너무나 쉽게 들어올렸던 2kg 덤벨세트를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찾아냈다. 덤벨을 들어보니 '덤벨이 이렇게 무거운 물체였나?' 싶을 정도로 내 몸에 남은 근육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드레스룸 은경도어 앞에 서서 내 몸 곳곳을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탄력없고 맥 빠진 근육만 남아있을 수가. 군살 하나 없던 팔뚝은 이제 민소매를 입기에는 망설여지는 모양새가 되었고, 그렇게 애플힙을 외쳐가면서 계단타고 근력운동한 게 의심될 정도의 하체, 한 때는 정말 선명하게 있었던 초콜릿이 복부에서 사라지고 웬 늙은 호박만이 보이고 있다. 최.악.이.야... 


이런 나를 용납할 수가 없어서 꺼내둔 요가매트의 먼지를 물티슈로 박박 닦아내고 햇볕에 일광욕 시키자마자 플랭크 자세를 해본다. 1분은 거뜬히 버티던 사람 맞아? 당췌 어느 관절에다가 힘을 주고 버텨야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코어가 무너져있었고, 나도 요가매트 위로 무너졌다. 


그동안 내 몸을 돌보지 않았던 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사과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너무나 뒷전으로 두었던 내 몸과 내 건강. 출산하면 확연히 늙어버리고 삐걱거린다고 하는 산모의 몸이라 튼튼이를 품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과 땀방울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강해져야겠다. 그리고 새 옷은 사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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