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에 맞춰 일하는 승무원들에게는 특별한 코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스탠바이"(STBY)
스탠바이라 함은 말 그대로 "대기"를 하는 두티이다. 왜 이런 스탠바이가 있냐 하면 모든 비행기 기종은 무조건 지켜야만 하는 최소 탑승 승무원 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잉 737이나 에어버스 320처럼 (제주항공이나 에어부산 등 저비용 항공사들의 주 비행기 기종) 작은 비행기는 최소 탑승 승무원이 네 명이다. 각 승무원은 각자 도어(문)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건 좀 더 복잡해지니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어쨌든 이 최소 탑승 승무원 인원은 세계 어딜 가도 공통된 규칙이어서 비행기 하나를 띄우려면 무조건 이 승무원 숫자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만에 하나 탑승 승무원이 아프다거나 사정이 생겨서 비행을 못 가게 될 경우 투입시키는 승무원이 바로 스탠바이 중인 승무원이다. 만약 승무원이 없다? 그러면 안전상의 이유로 승객을 다 태울 수 없다. 이것 역시 복잡하니 설명은 다음번에..
스탠바이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에어포트 스탠바이(ASBY), 또 하나는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홈스탠바이이다 (SBY)
에어포트 스탠바이는 비행을 간다는 가정 하에 모든 걸 준비하고 공항에서 기다리기 때문에 대기시간만큼 돈을 받는데 홈 스탠바이는 불리지 않아도 일정 시간만큼 돈을 주는 항공사도 있고 안 불리면 안주는 항공사도 있고 항공사마다 천차만별이다. 예전 회사 다닐 땐 스탠바이를 자주 받은 편이었는데 여기는 스탠바이가 하루 전 날 거의 비행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스탠바이 한 적이 한 번 밖에 없다. 이번에는 예정되어 있던 런던 비행이 취소되면서 스탠바이를 받았다.
전 직장 다닐 때는 준비할게 딱히 없기도 하고 비행이 쉬운 편이어서 스탠바이여도 자다가 전화받으면 준비해서 나가고 전화 안 오면 그냥 자고 그랬다. 또 스탠바이가 8시간 정도 돼도 4시간 정도 지나면 불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마음 편하게 놀곤 했는데 여기선 지난번 스탠바이 때 스탠바이 끝나기 한 시간 직전에 바르셀로나 비행으로 불린 뒤로 미리 준비하는 편이다.
승무원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내가 어딜 갈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신나기도(?) 하고 누굴 만날지 설레기만 했는데 비행 오래 한 지금은 제발 안 불리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세계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피곤한 상태에서 나 혼자 간다면 그만큼 즐길 수 없을뿐더러 오늘은 또 어떤 사악한(?) 사람을 만날지 걱정되는 마음뿐.. 어딜 갈지 누구랑 비행을 할지 예상 가능한 게 훨씬 낫다. 다음 달 스케줄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스탠바이 하나 없이 바라는 비행만 나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