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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경 Dec 08. 2017

기 도


한 해의 운행이 끝나가는 십이월

어둠이 흰옷으로 갈아입기 전

여명이 창문을 두드리기 전

뒤척이던 밤을 껴안고 일어납니다


어둠의 파수꾼 가로등도 잠들고

희미한 달빛만이 어스름 스미는 침실

묵도하듯 두 손 모아

지나온 삶 음미하며 지금의 나를 반추합니다

괴로움으로 잠 못 드는 창백한 밤도

눈물이 핏방울로 뚝뚝 떨어지는 고통의 날도 있었습니다

한알의 대추가 여물기 위해 폭풍우와 천둥번개 견뎌야하듯

살아가면서 눈물의 가치를 배우고

슬픔 뒤에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저문 석양아래 친구와 건네는 술 잔

정다운 사람과 더불어 걷는 돌담길

이런 작은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요

그저 무탈하게 보내는 하루도 내겐 크나큰 축복으로 다가옵니다

고통의 무게에 눌려 휘어진 마음도

세월 앞에 가벼운 꿈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돌아보니

세상은 그렇게 가혹하지 않고

견디지 못할 일도

견딜 수 없는 일도 없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누군가의 향기로 가득차고

가슴이 고동치던 사랑도

마음 한 기슭에 남한때의 추억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부질 없는 사랑 앞에 맹세하지 않습니다


아픔이 나를 키우고

좋은 인연이 나를 다듬었습니다

작지만 주어진 일이 있어 감사하고

절망도 의연하게 버틸 만큼 단련되었습니다

이제

커튼에 새벽빛이 스미고

조용히 어둠의 베일이 벗겨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어진 삶을 정성으로 살겠습니다

머뭇거리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지 않겠습니다

철철 넘치던 행복도 불행한 날들처럼 금방 달아나 버릴 테니까요


남은 생을 살아가면서

무런 이유없이 슬픔이 밀려온다 해도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하였듯.


- 저물어 가는 2017년 십이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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