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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재 Jun 21. 2021

누구를 위하여 나를 울리나

레시피 화양연화 #8 김대리의 죽음

1.


 근사한 미인이 되어 훤칠한 애인과 레스토랑 고향연화를 다시 찾겠다는 계획은 처참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동생 철이를 빌려(소개해) 달라는 말에 선영은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다. ‘얘 제정신이니? 나랑 시누이 되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첫째, 내가 예쁘고 젊긴 하지만 과묵하고 진중한 철이의 이상형은 절대 아닐 터이며 둘째, 결코 끼 부리거나 음흉한 속내를 품지 않고 반나절 안으로 철이를 돌려보내겠다며 선영을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선영의 전화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선영은 내 고향연화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지지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가 쫓아오니?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사람을 찾아야지. 남자가 밥 한 끼 먹자고 소개를 받겠니.’


예리한 지적이었는데, 나는 마침 내가 드라마 빅뱅이론의 괴짜 천재 쉘든이 된 듯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리학 이론을 토대로 연애 상대를 고르고 매뉴얼을 만들어 스킨십부터 데이트까지 관리하는. 하지만 결코 여자 친구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얼간이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선영을 한번 더 찔러보았다. ‘철이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돼?’ 수화기 너머로 선영의 침묵과 한숨이 이어졌다. ‘말 좀 들어라. 안 한다니까?’



2.


 정신을 차려보니, 팔다리를 어디로 빼야 할지 모르는 바디슈트를 입고, 머리카락을 제외한 모든 털을 다 밀고, 잡지에서 본 뇌쇄적인(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사진작가 정호는 ‘스튜디오 오디너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이름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지향한다고 했다. 박스티에 청바지만 입은 모습을 보니 대학생처럼 앳되어 보이다가도, 카메라를 집으니 표정은 진지해지고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언니, 이번엔 깍지 끼고 팔을 뒤로 넘겨봐요. 페로몬은 겨드랑이에서 나온데.’


 사진작가 정호 옆에 내 친구 진이가 서있었다. 그는 어디서 본 듯한 모양새로 나에게 포즈며 표정을 알려줬다(페로몬…? 내가 개미니…?). 그는 내가 이 빤스와 브라자만 입고 소품용 소파까지 올라오도록 북돋은 장본인이었다. 나보다 석 달 먼저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면서 작가 정호를 알게 되었고, 작업이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나를 여기 스튜디오까지 끌고 왔다.


 ‘누드 촬영도 한데요.’ 진이는 은근한 호기심을 보이며, 만일 내가 스튜디오를 바꾸면 자신도 따라와 거들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뭘 거들어주는데? 스타일리스트처럼 옷도 골라주고, 갈아입고 나오면 머리를 정리해주거나 포즈 코칭도 해주겠다는 말이었다. 평소 옷이나 사진에 관심 많은 진이가 어쩐지 사리사욕을 채우는 느낌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좋은 제안이 없었다.  이미 혼자 참가하는 미인대회에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미운 오리 새끼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였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내가 수지(그렇다, 바로 그 수지다)가 아님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다만 사진을 찍는 데 도전함으로써 스스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상기하려고 했을 뿐이다.


 정호가 몇 장 찍어 보여준 이미지 속 내 얼굴 역시 알던 바와 같이 삐뚤었고, 눈밑은 생각보다 더 꺼졌고, 콧볼은 너무 넓적해서 파티용 안경에 붙어있는 장난감 코처럼 보였다. 살 빼고 광을 냈는데도 처참할 정도로 평소와 같았다. 보고 있자니 이런 걸 샘플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힐끗 살폈는데 호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


 한편, 진이는 모니터를 가까이서 보다 못해 이제 호와 거의 뺨을 맞대고 사진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둘의 한쪽 허벅지도 찰싹 붙어있었다. 저것들이 왜 저러고 있지… 싶은데 호가 렌즈에서 눈을 뗐다.


 ‘자세 좋아요. 이제 마음에 드네요. 한번 볼래요?’ 





다이어트 뒤 제일 먼저 맛볼 가치가 있는 서면 오도넛


‘언니, 이거 이거 이거 이거, 느낌 좋다. ’


 마침내 촬영을 마쳤다. 정호가 마음에 드는 이미지 몇 개를 추려왔다. 처음 촬영하며 곁눈질로 보았던 원본보다는 나았다…. 아니, 나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나라는 점만 제외하면 썩 볼 만했다. 사진 속 사람은 미인이었나? 잘 모르겠다. 누드톤 민소매를 입고 다리를 모로 꼬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그 자세를 잡기란 쉽지 않았지만) 사람은 젊고 건강하고 어떤 슬픔을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슬픔이었고, 나는 금세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재무팀 김대리는 어디 갔지? 전표를 치고 계산서를 발행하는 김대리는 거기 없었다. 그렇다면 이 자는 뭘 하는 사람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 속 인물을 보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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