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박사입니다
(만두박사, 박사논문을 완성하다 에서 이어집니다)
2025년 어느 한 여름 새벽 1시, 서울. 저는 마포구 어느 반지하방에서 박사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되살려 각색한 글입니다.
저는 그 동안 논문을 다 썼고, 커미티 멤버들의 최종 피드백을 모두 받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은 제가 졸업할 준비가 된 만큼 (또 임용 가능성의 상승 등 곧 졸업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만큼) 저와 졸업날짜를 조율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졸업 그 후가 애매했지만* 취업 관련해 오가는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던 만큼 지도교수님과 저는 리스크를 안고 졸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 당시엔 어디까지나 가상의) 임용조건을 맞추기 위해 8월 말까지 어떻게든 심사를 마치는 것.
이 결정이 난게 늦봄이었기 때문에 살짝 타임어택 느낌입니다.
* 요즘은 박사 취업난이 심해져 많은 학생들과 지도교수들이 취업 확정 전에 논문심사 하는 것을 꺼리는 편입니다. 졸업 후 무직자가 되면 슬프기도 하고, 또 공백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교수임용 확률이 비교적 낮아지기 때문에 보통 졸업 후가 명확해질 때까지 졸업을 한해, 두해 미루기 때문이죠. 따라 졸업 후가 아주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던 저와 제 지도교수님은 살짝 주사위 던지듯 (...) 졸업심사를 한 셈입니다.
실제로 교수님이 "너 임용 계약서 오기 전까진 나 졸업시키기 싫어" 라 하시며 주저하시는 걸 제가 졸업시켜 달라며 조금 간곡히 부탁 드렸었습니다.
박사 디펜스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토론토대학에서는 졸업날짜 조율에서 졸업심사까지 - 모든 게 지체 없이 완벽하게 움직인다는 전제하에 - 대체적으로 12주 남짓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이 프로세스가 시작되면 빠꾸없이 끝까지 가야합니다. 물리기 없습니다.
그 과정을 간단히 훑자면:
1) 내부심사위원 (Internal reviewer) 선정
학생이 나는 이제 졸업하겠노라- 선언을 한 직후 지도교수의 지휘아래 내부심사위원을 물색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논문지도 커미티에 들지는 못했지만 학생의 논문분야에 익숙한 교수님들이 내부심사위원 후보로 올라가게 됩니다.
저의 경우 토론토대학교에서 미얀마의 종교철학과 정치를 깊게 공부하신 교수님이 내부심사위원으로 봉사하셨습니다.
내부심사위원은 적어도 4주의 시간 동안 박사논문을 모두 읽고 세밀한 평가와 코멘트, 그리고 외부심사위원에게 논문을 올리기 전에 이거 안 고치면 니 졸업 못하는 필수 수정요구사항을 나열해 보내준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쳐 논문을 수정합니다. 그 후 외부심사위원의 논문심사를 거치게 됩니다.
2) 외부심사위원 (External reviewer) 선정
외부심사위원은 내부위원보다 더 깐깐한 기준으로 리스트업 됩니다. 외부위원들은 기존 심사위원들과 "at an arm's length," 쉽게 말해 "대충 서로 알더라도 같이 일한 적은 없는" 사람들이 추천됩니다. 혹시나 있을 짬짜미 상부상조의 관행을 처음부터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수십년간 학계에 몸을 담으신 지도교수님의 인맥이 외부위원으로 주로 봉사하시기 때문에 지도교수님과 인연이 짙은 분들이 후보로 거론되며, 동시에 종종 범접할 수 없는 이력의 사람들이 후보물망에 오르기도 합니다. 제 지도교수님의 경우 워낙 발이 넓으셔서 그런지 내전을 공부했으면 이름을 듣는 것을 초월해 학회에서 그 사람 발표를 들어보려고 줄 서서 들어갈 급의 사람들을 나열하시곤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와, 굉장한 대가에게 논문을 읽힌다니! 큰 영광인걸?" 하며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기분좋은 것보단 부담이 더 큽니다 (물론 큰 영광이기도 합니다). 박사논문의 대부분은 이런 대가들을 비평하고, 소위 기어오르면서 완성되기 때문이지요. 저도 제 논문에 이론이 태부족하다며 몇 문단을 할애해 대차게 깠던 어느 한 대가가 외부심사위원 후보로 오르락내리락 했었어서 (...) 한동안 식겁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은 그 기라성과 같은 드림팀 중에서 내전과 반군정치연구에 잔뼈가 굵으신 교수님을 외부위원으로 초빙하셨습니다. 굳이 물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제 연구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최대한 호의적인 평을 내릴 연구자를 찾아 추천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초빙된 외부심사위원에게는 최소 8주의 리뷰 시간이 주어집니다.
외부심사위원의 평가가 도착하면 그때부터 논문심사 준비에 들어가게 됩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토론토 대학교는 외부심사위원과 심사받는 박사후보가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전제로 외부심사평가를 학생에게 공개합니다.내부심사는 논문 수정의 기회가 주어집니다만, 외부심사는 그런 거 없습니다. 외부심사의 질문과 비판은 논문심사 도중 토론하고 방어해야 할 영역입니다. 박사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그랬듯, 많은 박사 후보들이 이 타이밍에서 외부심사위원의 평가를 소화하고 좋은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3) 박사논문심사
이 단계에 오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논문심사를 진행합니다. 그 내용은 학교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가령 어떤 대학은 논문심사 발표를 부분적으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Closed door,' 즉 비공개 심사를 하기도 합니다. 후보가 세미나실에 직접 출석해 심사를 하는게 기본이고 제일 흔한 경우입니다만, 이제는 줌 등 화상미팅 앱으로 원격 심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 학생들이 취업 전에 졸업을 꺼리기도 하고, 또 해외취업으로 일찌감치 멀리 나간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랍니다.
저 또한 외부심사를 받던 중 임용이 확정되어 한국으로 이주해야 했기 때문에 화상미팅으로 원격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토론토 대학교의 박사논문심사는 네 가지의 결과가 나옵니다:
1) Accepted in its present form (제출된 논문 그대로 통과) - 아주 베리굿인 결과
2) Editorial revision (교정 수정) - 오타 바로잡기 등 약간의 수정 필요
3) Minor revision (마이너 리비전) - 이론과 논문 내용을 다듬는 등의 수정 필요
4) Adjournment (심사결정 연기) - 대참사
2번, 3번의 경우 몇 주, 길어야 한 두어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수정을 통해 소정의 심사 후 통과하기 때문에 타임어택마냥 늦은 심사를 받는게 아니라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사실상 불합격인 심사결정 연기가 결정될 경우 그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학교마다 심사결정 연기에 대한 규정이 다릅니다만, 보통 박사학위 심사기회는 최대 몇 회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토론토대학의 경우 두 번째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할 시 그 이상의 심사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디펜스는 통과를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들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보통 지도교수님의 학생 자질 판단이 성공적인 졸업 여부에 제일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디펜스 날짜를 잡을 정도면 (즉 지도교수님이 학생을 졸업시키기로 마음먹은 상황이라면) 큰 걱정거리는 이미 해소되었다 봐도 좋습니다. 지도교수는 자기 이름을 걸고 박사를 배출하는 만큼, 준비되지 않은 학생을 절대 졸업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지도교수님이 졸업을 시켜주겠노라 언질을 줬다면 이제 졸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되겠죠.
고로, 졸업심사가 불합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는 대부분 지도교수와 충분한 교감이 없었던 학생이 디펜스를 밀어붙일 때 발생한다고들 캅니다. 가령 학생이 논문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지 않은 채 졸업시켜 달라고 떼를 쓴다면... 지도교수가 심사도중 학생 실드를 치는데 한계가 있을게 자명하지요. 따라 스무스한 학위취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교수와의 교감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제 박사논문심사의 날이 밝았습니다.
논문심사는 20분 정도의 짧은 연구발표로 시작됩니다. 대체로 교수임용을 위해 갈고닦은 이른바 '잡톡 (job talk)' 또는 여러 학회 또는 초청 세미나 발표와 흡사합니다만, 제 연구의 내용보다는 이 연구를 향후 어떻게 끌고 나갈 건지에 대한 내용에 평소보다 더 무게를 두는 게 좋다는 귀뜸을 들었습니다. 이미 심사위원들은 제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뜯고 씹고 즐긴 후고, 이제 와서는 제 연구가 향후 어떻게 발전해 나갈 건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발표가 끝난 후 외부심사위원을 시작으로 여러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먼저 당해본 많은 사람들이 까이꺼 이미 결론이 정해진 요식행위다, 학자 간의 대화일 뿐이다-며 듣기 좋은 말을 해 준 것과는 정반대로 답하기 몹시 난감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현장연구 중에 참가자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통역을 통해 진행한 인터뷰가 여럿 있다고 했는데, 통역한 인터뷰와 그렇지 않은 인터뷰의 질과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지?"
"전쟁 중인 반군 지도자들의 전략을 나열해서 분석했는데, 사실상 병법서에 가까운 논문이 현장으로 다시 흘러들어 간다면 어떤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상황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미얀마의 사례가 가령 아프리카, 남미의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처럼 심사위원 중 에스노그라피의 대가로 여겨지는 한 교수님은 제 현장연구 방법론과 데이터의 신뢰성, 그리고 연구윤리에 약점을 잡고 그에 대한 기술적인 질문으로 후벼 팠습니다. 심사위원 중 미얀마 전문가로 등판해 내부심사위원으로 봉사하신 교수님은 미얀마학 속에서 제 연구의 의의, 그리고 연구결과의 윤리성에 대해 캐뭍기도 하셨습니다. 과연 너의 연구가 그들에겐 어떤 도움이 되느냐-를 물으시면서요. 다른 한 교수님은 지역선정을 콕 꼬집으며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남아메리카, 서아프리카의 예시를 물어가며 제 연구결과의 일반화 가능성 여부를 물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질문이 대체로 심사위원들께서 제 박사논문을 정독하신 후 (향후 논문을 책으로 가공해 낼 때 참고하라는 의도로) 달아주신 코멘트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미리 응답의 내용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나를 담그려고 작정하셨구나(...) 싶은 곤란한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나중에 여기저기 찾아보니 논문심사위원으로 등판하는 교수님들이 학생에게 미리 언질 해놓은 논문평가 외에 깜짝 질문을 여러 개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심사받는 학생이 자신만의 사회과학적 관점을 지닌 연구자로서 독립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가 학회에 참석하며 부지런히 귓동냥했던 최신 연구 트렌드가 제 연구와 엮여져 많이, 그리고 깊이 논의되었습니다.
글로 접하면 좀 험악한 분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주 흥겹고 밝은 분위기입니다.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보통 학화에서 나오면 질문자가 발표자를 담가버리려고 하나보다- 생각케 하는) 살벌한 질의응답을 한참을 주고받은 후 제 지도교수님이 마지막 질문자로 등판하셨습니다.
지도교수님은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하시곤 논문심사 마지막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만두박사! 지난 7년 동안 네가 학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건 내게 아주 큰 즐거움이었어. 여러 말하지 않겠지만 내가 누누이 강조한 여러 가지 마음가짐은 학자로서 아주 좋은 자질이라고 생각해. 자 이제 마지막 질문받아라:
너는 태국, 그리고 미얀마에서 정말 굉장한 현장 연구를 했고, 그게 네 연구의 아주 큰 강점이야. 남들이 불가능하다, 어렵다고 하는 일들을 조금씩 밀어붙이며 가능한 일로 만들었으니까. 너는 그 현장연구의 끝에서 뭘 느끼고, 또 뭘 배웠지?"
막무가내로 떠난 2022년 3월에서 2023년 8월까지. 그 곳에서 저는 뭘 배웠을까요?
그 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웃음진 얼굴을 상기케 하는 여러 생각들을 하곤, 답했습니다:
"정글에서 총을 든 그들도 저와 같이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같은 유튜브 쇼츠를 보며 웃고, 와이파이에 집착하고, 에어컨 바람을 갈망하는 같은 인간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그곳의 제 친구들과 함께하며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웠습니다. 제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배움은 평생토록 함께 할 것 같습니다."
위 답변을 마지막으로 저는 대기실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30초가 지났을까요? 대기실에서 저를 다시 화상채팅방으로 소환된 제게 지도교수님이 말했습니다:
"만두박사 박사! 만장일치였어서 금방 끝났어. 축하해."
"만두박사 축하해! 그런데 나 2분 후에 미팅이 있어서 얼른 끌게. 학회에서 봐!"
"모두들 감사합니다. 조만간 꼭 뵈어요-" <호스트가 미팅을 종료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이 늘 그래오셨듯(...) 작별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끊긴 줌콜과 함께 심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새벽 한 시가 되었을까요? 단기월세 방구석에 앉아 한참을 수다 떨곤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엔 학위취득을 공식화하기 위해 논문제출을 하게 됩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학과에서 논문이 통과되었음을 알리는 공문을 보내고, 그 공문에서 일러주는 대로 대학교 시스템에 논문을 가공한 후 제출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끝입니다.
논문을 최종적으로 가공해 제출하는 이 타이밍에 땡스 투 논문 제일 앞면에 사사표기, 달리 말해 감사의 글 (Acknowledgements)을 적게 됩니다. 논문은 혼자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켜봐주고 지지해 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죠. 제 경우 지도교수님과 심사위원들, 학계 동료들, 학생들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발 벗고 헌신한 행정팀과 새벽 말벗이 된 대학 캠퍼스 환경미화 이모 삼촌들, 대학원 친구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감사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국경세계의 동무들을 향한 조금 더 특별한 감사의 글을, 제일 중요한 마지막 공간에 적었습니다.
혹시나 더 많은 국경세계 친구들에게 닿진 않을까 해서 감사의 글의 끝 토막을 이 글에도 올립니다:
I am infinitely indebted to the friends and mentors that I have met during my field research in the border world that exists between Myanmar and Thailand. [...] Sadly, political circumstances in Myanmar make it impossible to mention them by their names. Nonetheless, I cannot express how grateful I am for being invited to learn from them.
This research would never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ir friendship, guidance, selfless support, and incredible generosity. The entire community has endowed this bumbling graduate student wandering around in flip-flops with unending trust and encouragement from the beginning of my field research until the very end.
(저는 미얀마와 태국 사이 국경에서 현장연구를 수행하며 그 국경세계에 자리한 친구들과 스승님들께 무한히 큰 빚을 졌습니다. [...] 현 미얀마의 정치상황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밝힐 수 없음을 몹시 안타깝고 슬프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저를 그들의 세계로 초대해 그 시선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에 큰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그들의 우정, 지도, 헌신,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아낌없는 마음씨 없이는 가능치 않았을 것입니다. 국경세계의 모든 분들께서 허둥지둥 쓰레빠 신은 이 대학원생에게 끝없는 신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지켜봐 주셨습니다.)
I dedicate this dissertation to you: my brothers, sisters, uncles, and aunties. I hope this dissertation may lay one more stepping stone towards a better, fairer, and more peaceful future in Myanmar.
As you have said, our last meetings were not an end, but a beginning of something new. While my flesh might have left the border world for now, I leave my heart and soul with you.
(저는 이 박사논문을 국경세계의 제 형제 자매들과 이모 삼촌들에게 바칩니다. 이 논문이 더 낫고, 더 균등하며, 더 평화로운 미얀마의 미래를 그릴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들이 말해주었듯, 우리의 마지막 만남은 끝이 아닌, 새로운 것의 시작입니다. 비록 지금은 제 살이 국경세계를 떠나 있을지라도, 제 심장과 영혼은 항상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제 연구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세상을 만드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