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시작해본 지 얼마 안 됐다. 원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계란 후라이뿐이었다. 라면도 잘 못 끓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설명서대로 안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난 맹세코 설명서의 토씨를 그대로 따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자취할 때, 친구는 내가 끓인 라면을 한 젓갈 먹고서 손을 펼쳐보라더니 이렇게 말했다.
“요리 오지게도 못 하게 생긴 손이네.”
아... 그런 손이 있는 건가. 태생부터 요리를 못 하게 타고났나보다 깨닫고 할 생각도 안 하다가, 반 년 쯤 전인가이런저런 이유로 요리에 맛이 들려서(맛이 들린거지 결코 잘 하는 건 아니고) 요즘은 반찬도 좀 하고 국도 좀 한다. 하다보니 조금씩 괜찮은 맛이 나기도 한다(진짜?).
음식 솜씨는 별로 없는 게, 식재료 고르는 데는 까다로워서 몇몇 재료는 꼭 시장에서 산다. 특히 참기름, 들기름은 방앗간에서 직접 짠 게 아니면 입에 안 맞아서 못 먹겠다. 급할 땐 어쩔 수 없이 동네 마트를 가긴 하지만 두부도 웬만하면 시장에서 사둔다. 시판하는 말랑하고 부들부들하기만 한 두부에선 그런 구수한 콩 맛이 나지 않는다.
두부와 비지를 사러 나간 김에 고사리도 사기로 한 날이었다. 비도 오고 칼칼한 육개장이 땡겼다. 육개장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요리.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채로 시장길을 걸었고, 곧 내 비장한 레이더망에 고사리라는 글자가 걸려들었다.
'말린 고사리 5천 원'
저 정도에 5천 원이면 양도 괜찮고 가격도 적당한 것 같고. 이걸로 살까? 아니, 근데 잠깐. ‘말린’ 고사리? 말렸다니? 왜 하필 말렸어. 말린 거면 얼마나 불려야 하나. 되게 딱딱해 보이는데, 설마 하루 온종일 불려야 하는 건가. 오늘 당장 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고민이 되어 앞에서 삐죽대고 있으니, 사장님이 나와 말을 건다.
“고사리 그거 맛있는 거예요. 드릴까?”
“(쭈뼛쭈뼛) 음... 그... 안 말린 건 없죠?”
“우리는 말린 거만 파는데. 왜? 뭐 하시게?
“(자신 없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육개장.. 끓일 건데요...”
“육개장~ 언제 먹을 건데요?”
“(점점 더 기어들어 가며) 오늘 저녁이요오...”
“아, 그럼 집에 가자마자 삶아. 씹을 수 있을 정도로만 20분 정도 삶아서 찬물에 한두 시간 정도 불리면 돼요. 보고 통통해졌다 싶으면 꺼내서 국 끓이면 돼. 나중에 나물 할 땐 전날 밤에 미리 불려놓고 하면 더 부드럽고 좋지. 육개장 먹고 남은 거는 그렇게 해 가지고 나물 무쳐 먹어요.”
리듬감있게 쏟아지는 사장님의 꿀팁. 죽었던 기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가면, 엄마는 꼭 시장통 입구에서 우뭇가사리가 든 콩물을 사주셨다. 콩물은 엄청나게 좋았지만 우뭇가사리가 싫었던 나는, 오목한 병 입구로 우뭇가사리만 훅훅 밀어가며 열심히 콩물을 흡입했다. 온 신경을 우뭇가사리 고르는 데 집중한 채 두 다리만 기계처럼 엄마를 따라다녔는데, 보통 콩물 한 병을 다 비워낼 때쯤 장보기도 끝이 났다.
장보기의 마지막 코스는 항상 생선 가게였다. 엄마는 무슨 요리를 할 것인지 얘기하며 손질을 부탁했고, 그러면 시크한 생선 가게 아저씨는 대답도 안 하고 손질을 시작했다. 어떤 때는 비늘만 벗기고 통째로 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대가리와 꼬리를 잘라낸 후 내장도 바르고 댕강댕강 토막을 내어 줄 때도 있었다.
팔딱이는 생선이 불쌍해서 쳐다보기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저씨의 숙달된 손놀림은 불쌍함도 잊고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시간을 재본 적은 없지만 생선 대여섯 마리를 손질하는데 1분도, 아니 30초도 안 걸릴 것이었다.
손질이 끝나면 물을 한 번 끼얹어 씻은 다음 까만 봉지에다 한 방에 후루룩! 하고 담는 것도 엄청났다. 그리고 마무리로 봉지 안에다 소금을 두 번 착착! 보지도 않고 쳐 넣었는데, 후에 TV에서 최현석 셰프가 현란하게 소금 뿌리는 걸 봤을 때 난 그 생선 가게 아저씨가 생각났다. 매우현란하지만,결단코 간결한 손놀림이었다.
손질된 생선 봉투를 건네고 돈을 받는 동안, 아저씨는 시크한 표정을 조금 풀고서 아직 요리가 능숙할 것 같지 않은 새댁에게 이것저것 코치를 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다른 생선보다 살이 잘 풀어지니 너무 오래 조리면 안 된다든가, 어떻게 보관하면 좋은지에 대한 거였던 것 같다.
엄마는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남긴 우뭇가사리를 먹으며 아저씨에게 들은 요리 팁을 나에게도 일러주듯 똑같이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나한테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안 잊으려고 하는 복기였을 것이다.
말린 고사리를 받고 5천 원을 건네 드리며, 그 시절 엄마가 했었던 것 같은 질문을 이번엔 내가 한다.
“보관은 어떻게 해야 돼요? 냉동보관 해야 돼요?”
“말린 거라 그냥 실온에 두면 돼요. 아니면 한 번에 다 불려서 냉동해도 되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젊은이가 걱정됐는지, 사장님은 돈을 받고도 한참을 서서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셨다. 다 씻어서 말린 거니 너무 박박 씻으면 향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과, 삶을 때 청주를 쬐끔 넣으면 쓴 맛을 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인터넷만 뒤지면 다 나오는 정보일 테지만, 얼굴 맞대고 직접 묻고 들으니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응원까지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늘 육개장을 잘 끓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아 참!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사장님! 이것도 불리면 미역처럼 막 불어나나요?”
“아니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쬐끔 통통해지는 정도지.”
"아, 네. 감사합니다!"
"육개장 맛있게 드셔요."
나는 저녁으로 무사히 육개장을 먹었다. 대단한 맛을 내지는 못했지만 나름 안정적(?)인 맛이었고, 고사리는 특히 불리고 삶을 때 향이 정말 좋다는 걸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