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거나 제사거나 그랬던 것 같다. 큰아빠네, 작은아빠네, 우리 가족, 고모들, 그리고 마지막은 늘 고모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는 고모할머니하고 나란히 앉아 담배 한 개비를 피고 난 후 식구들의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마당의 아궁이에는 불이 지펴지고 연기가 하얗게아주 높이까지 피어올랐다. 내 또래 애들은 그걸 신호로 삼아 마당에서 놀곤 했다. 놀다가 밥 다됐다 부르면 마지못해 끌려가서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엄마가 만족할 만큼 입에 넣고 다시 나가 놀았다. 놀다 지치면 그대로 다 한 방에 들어가 눕는 거였다.
그리고 눈을 뜨면 한밤중. 창호지 바른 문 너머로 건넛방의 형광등 빛이 새어 들어오고, 여전히 시끌시끌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까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내 옆에서 자던 친척 동생의 목소리도 저쪽에서 들린다.방 안을 둘러보면 나만 빼고 다 없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와, 시끌시끌한 건넛방.뜬금없지만 나는 그 상황이 좀 서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니다. 잠에서 깼으면 얼른 일어나 그들이 웃고 있는 저 방으로 들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예민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게 참 별 일이었다. 나 빼고 화목한 저들의 웃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아무래도 멋쩍고 어려웠다.
그래서 뜨신 방바닥에 눈 감고 누워 누가 여기 혼자 있는 나를 좀 떠올려주기를,떠올리고데리러 와주기를 한없이 기다렸다. 갈 때 나도 좀 깨워서 같이 데려가 주지. 누가 날 좀 깨우러 안 오나. 생각하면서. 그렇게 몇분인지 몇시간인지 모를 만큼 누워있다 보면 주로는 엄마나 아빠가, 가끔은 동생이 방에 들어와 나를 흔들어 주었다. 그러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기쁘고 서러운 거다.
그래서 일요일 한낮, 초등학교 운동장 끄트머리에서 모래성을 만지작대며 친구들 무리를 기웃거리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쓰였나 보다. 아이는 정글짐 아래에서 왁자지껄 놀고 있는 친구들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쪽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기웃기웃, 그러면서도 관심 없는 척 애꿎은 모래성만. 사실은 저들 중 누가 날 좀 불러주지 않나 기대하며. 방 안에 혼자 누워 누군가 깨워주기만 기다렸던 소심한 나와 비슷했다. 그 작디작은 마음의 소리가 들릴 리 없는 다른 아이들은 그저 신나기만 했다. 나쁜 사람은 없는데 상처받는 사람이 생겨나는, 인간계에만 있을 법한 아주 잘고 사소한 갈등.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내가 그랬다고?’하고 신기해하게 될 마음.
그렇다고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별 게 다 별 거인 시절이 있으니까. 저 아이도 지금 그 시절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나 혼자 오래 잔 것에 놀라거나 뿌듯해하며 일어나겠지. 일어나 떠들썩한 그들 사이로 들어가면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묻겠지.시끄러워서 깼다며 괜한 엄살을 떨어볼지도 모른다.
별 거나 돼야 별 거로 느끼는 것과, 별 게 다 별 거인 것. 뭐가 더 나은 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저 아이의 소심함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길. 스스로도 주눅 들지 말길. 저 시기를 상처 없이 잘 보내길 바라며 또 낯선 얼굴 하나를 눈에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