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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Feb 18. 2023

원조(?) 대치동 키드의 회상

March 24, 2018

7년 만에 방문한 그리웠던 내 고향,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평생 친구를 만난 곳을 고향이라 한다면 내 고향은 대치동이다.


1978년 성동구 금호동에 살던 초딩 1학년 나는 갑자기 아버지를 여의고 그 이듬해 강북 탈출(?)을 감행하신 어머니를 따라, 제3 한강교를 넘어 바다 같이 넓어 보이던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당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압)구정 국민학교로 발령받으신 교사 어머니를 따라 같은 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는데, 도저히 압구정동에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던 우리 집은 압구정동에서 조금 떨어진 신사동에 있는 5층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의 강남 살이가 시작되었다. 새 학교 등교 첫날, 압구정동 애들은 다 공부도 잘하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다닌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때 입을 ‘메이커’ 옷과 그냥 집에서 입을 ‘보세’ 옷을 구분해 주시고, 코 닦을 때 옷소매로 닦지 말고 꼭 손수건을 사용하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후 몇 번의 이사를 거쳐 중학생이던 86년도에 나는 드디어 대치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어머니의 소망대로 강남 아이(?)로 자라면서 나름 행복한 성장기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는 내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던 주위 친구들과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빈곤감에 어디로든 탈출을 꿈꾸기도 했고 늘 마음 한구석 작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론 그런 삐딱하게 뒤틀린 나의 모습이 무척 싫었었다.


지난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새삼스레 묻는다.

“근데 너 이민 왜 갔냐?”

“왜긴, IMF때 내 인생이 너무 깝깝해서 왔지 뭐. 근데 내가 조금만 더 효자(?)였다면 아마 안 갔을 거야.”


사정이 어찌 되었건 나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외아들 주제에 감히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치듯 이민을 감행했다. 캐나다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간 나도 대치동급(?)으로 신분상승(?)해서 열등감 없이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으하하, 무지 창피하다!)


어느덧 20년이 지나고 50대 후반의 아줌마였던 어머니는 이제 7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셨고, 가끔 나에게 부끄러움을 주었던 작은 반지하 빌라는 재개발을 통해 깔끔하게 정리된 동네의 깨끗한 아파트가 되어 아내와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어제 캐나다로 돌아오기 하루 전, 캐나다 이민국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추첨을 통해 무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부모초청 이민 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이민올 때의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나름 자리 잡고 어머니를 초청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네.


어머니가 실제로 영주권을 얻기까지는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기약이 있는 기다림이니 기쁜 마음으로 영어공부 하면서 캐나다에서의 인생의 마지막 장을 준비하겠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에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이젠 적어도 홀로 삶을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안도감, 아들, 손자, 며느리와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기쁨, 그동안 아들이 가졌을 미안함에서 좀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 아들을 거둬준 것만으로 감사한 며느리가 이젠 시어머니인 당신까지 떠안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 막상 가려니 새로운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뭐 그런 많은 감정이 뒤섞인 것이겠지.


예쁘고 착한 아내는 다행히(?) 무지 두려워(?) 하면서도 나를 위해 같이 기뻐(?)해주려 노력해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2018년 3월 24일, 홀로 밴쿠버로 돌아오는 캄캄한 비행기 안에서 코딱지만 한 iphone 5s로 눈알 빠지게 쓴 오늘의 일기 끝!


이후 1년도 채 안 돼서 어머니는 영주권을 취득하셨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어머니 당신의 심경의 변화로 인해 캐나다 이민을 포기하시고, 2023년 현재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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