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레이디 처치맨
목욕하는 순간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세속의 먼지를 씻어내는 청결한 순간이자 편안히 휴식하는 순간이다. 계절에 따라 따뜻하거나 시원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면 저절로 탄성이 나오게 된다. 거기에 창밖으로 멋진 풍경이 보인다면 더할 나위없을 것이다.
전망을 가진 욕실은 다소 의외이다. 벗은 몸과 전망은 기본적으로는 서로 배치된다. 노출증 환자가 아니라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하여 오히려 내밀하게 밀폐시키거나 차단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림에서처럼 전망 자체가 저멀리의 것으로서 식별되지 않는 익명성을 확보한다면 양립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거꾸로 이같은 조망권 자체는 꿈의 욕실이 되기도 한다.
분홍빛 욕조 앞 창으로 뉴욕 맨하튼의 고층빌딩들이 도열해 있고 멀리로는 허드슨 강과 대서양이 아스라히 떠있다. 저녁 어스름이다. 그 위로 황혼의 노을이 분홍색과 황금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다시 그 위로는 흰 구름띠가 상단의 푸른 하늘까지 광대하게 뻗어 있다. 욕조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욕실의 주인은 물을 받아 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이 욕실의 조망은 실제로 뉴욕의 웨스턴 헤미스피어에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의 것이다. 이 건물은 파크애버뉴 432로서 미국에서 세번째로 높은 건물이자 주거용 건물로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가격도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비싼 아파트이다. 화가 레이디 처치맨(Leidy Churchman : 1979 ~ )은 이 아파트의 홍보자료에 나와있는 조망을 토대로 이 작품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세계 여러 곳에서 그룹전으로 전시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보스턴대학미술관에서 미술관 첫 개인전시회를 가지기도 하였다. 현재 뉴욕에 살고 있는 화가가 이 그림을 빌어 '언젠가 나도 저런 곳에 살아 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잠시 환상을 가져 본다. 저 욕조에 몸을 담근다면..... (물이 넘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