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가두어지지 않는다

24- 쿠쉬

by 유시


와이셔츠가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옷은 하얀 건물에 삐집고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삐져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건물은 와이셔츠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와이셔츠의 두 소매가 각각 다른 창으로 빠져 나온 채 허공을 날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몸통 부분도 뒷편의 다른 창으로 삐져 나와 펄럭이고 있는 듯하다.


꿈은 가두어 둘 수 없다. 집안에 안락하게 있는 것은 꿈이 아니다. 꿈은 결코 편히 잠들어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옷의 주인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고,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 채, 빈 옷만 펄럭인다. 이 거대한 옷의 주인은 누구인가. 화면 하단으로 올망졸망하게 그려진 겨우 사람 형체만 알아 볼 수 있는 왜소한 이들이 그들이다.


마치 옛날 유명 게임중 하나였던 레밍(Lemings) 에 등장하던 자그마한 형체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 익명의 사람들은 꿈에 다다르기 위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기도 하고 멀리서 사다리를 들고 뛰어 오기도 한다. 혼자서 이루기 힘든 사람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기도 한다. 손잡아 이끌기도 하고, 작은 깃발을 들고 기다리기도 하고, 함께 모여 그 방법을 같이 의논하기도 한다. 묵묵히 혼자 땅을 파는 사람도 있고, 이러저러한 시도가 무산된 사람은 덜썩 주저앉아 낙담하기도 한다.


바로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흰 건물에 걸려 있는 둥근 회중시계는 곧 이를 상징한다. 비록 지금 여기 현실은 춥고 바람 불어 나뭇잎 다 떨어진 어둡고 삭막한 곳이지만, 그래도 저멀리 꿈이 이루어질 그때 그 곳은 환히 빛나는 청명한 세상이다.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 태생의 이민자이다. 이 그림은 물설고 낯선 타향에서의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였던 자기 자신을 위한 헌사처럼 보인다.

그대 꿈의 펄럭이는 아우성이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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