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D-1
내 정식 퇴사일은 2월 1일자이지만,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오늘은 쉬기로 했다.
퇴사하고 가장 먼저 하고싶었던(?) 일은 바로 집정리였다.
그중 1순위는 냉장고 정리.
지금 사는 집은 결혼 후 두 번째 집인데, 2021년 2월 말에 이사오고 나서 냉동실에 음식을 마구잡이로 쌓기만 하고 정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냉동실에 더이상 무언가를 넣을 공간이 없었다. 더이상의 공간도 없고, 냉동실에서 무엇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썩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꼭 쉬는동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운동.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퇴근 후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며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여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기도 하고 경이롭다.
심지어는 나와는 다른 종족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한동안은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라는 생각도 한 적 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가 약했던 것이 아니라, 진짜 운동에 쏟을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마치 방전 직전에 있던 핸드폰처럼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냉장고 정리, 운동 이 두 가지는 꼭 해야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원래 계획은 8시에 일어나는 것이었지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조금만 더 자야지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9시가 되어 있었다.
MBTI J형인 나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늦게 일어난 것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으로 간단하게 다이어트 삼각김밥을 먹고 운동복을 챙겨입고 집 밖을 나섰다.
요즘 '런데이'라는 앱의 30분 달리기 프로그램을 따라서 하고 있는데, 오늘은 3주차 2번째 시간이었다.
그간 영하의 기온으로 감히 달릴 엄두를 못 냈는데, 오늘 마침 영상의 기온이라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밖을 나서서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간 좀 쉬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래도 조금씩 달리기 시간이 늘어가는 것에 뿌듯함이 생겼다.
달리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장사하는 가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회사 안에 갇혀있을 때는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줄 몰랐다.
직장에서 느끼는 바깥 세상이 언 시냇물 같았다면,
내가 밖에 나와서 보는 세상의 모습은 그 얼음 아래 흐르는 물같이 고요한 듯 활동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물 안 개구리가 마치 우물 밖을 처음 나와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충격의(?) 달리기를 끝내고 들어와서 씻고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대망의 냉장고 정리를 하였다.
냉동실에 있는 것들을 전부 끄집어내어 유통기한을 살피고, 유통기한이 지난지 한참 된 것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생선, 떡, 빵 등 종류도 다양했다. 정리하고 보니 버린 음식물 쓰레기만 35L였다. 문득 부끄러워지며, 앞으로는 환경을 위해서 먹을 만큼만 사고, 음식을 되도록이면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계획한대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달리기를 하면서 보았던 세상의 모습을 닮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하고 평온하지만 활기차고 역동적인 하루.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방향은 이런 것이다.
얼음 밑에 흐르고 있는 시냇물같은 하루.
오늘을 보내며 정말 퇴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