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D-114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은 직원이 100명정도 되는 회사였다. 직원 수가 몇 만 명을 넘어가는 그런 대기업에 비하면 아주 작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회사에 첫 출근하는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7월 초의 여름이었다. 평소에 나는 더위를 아주 많이 타지만, 그날은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 정장 같은 옷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첫 출근을 한 나는 전임자에게 업무 인계를 받으면서 걱정이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다. 돈을 관리하는 업무였음에도 업무 처리를 거의 수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에서 자료를 추출하고 하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필요한 자료를 항상 전산팀에 요청해야 했고, 각종 관리를 엑셀로 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스템도 아주 옛날에 개발한 후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아 인터페이스도 엉망진창이었다.
또, 업무 방식에도 체계가 없었다. 표준 매뉴얼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만큼 회사의 체계는 얼기설기 짜여져 있었다. 회사를 다닐수록 작은 조직이 가진 역량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더 큰 회사를 찾아 이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년 반만에 나는 더 큰 회사로 이직하였다.
두 번째 회사는 첫 번째 회사 인력의 한 3배정도 되는 곳이었다. 매출 규모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두 번째 회사는 썩 괜찮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메일, 메신저, 업무 포털 등을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하면서 관리하고 있었고, 업무에 필요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또한, 업무마다 체계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다. 모든 업무에서 어느정도 표준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고, 직원들도 그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첫 번째 회사에 비하면 시스템, 체계 측면에서는 훨씬 앞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시스템, 체계를 갖추고 있어도 결국 조직은 사람이 이끄는 곳이므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이상적인 조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직이 커질수록 업무를 지시, 관리, 감독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관리자들이 모두 쌍둥이가 아닌 이상(?) 각각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A, B라는 관리자가 있다고 해보자. A라는 관리자는 X의 방식을, B라는 관리자는 Y의 방식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다 보면 결국 Z라는 엉뚱하고도 비합리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10년 간의 조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조직은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관리자들 저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정말 쓸데없는 일을 벌이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구석으로 던져버리는 경우도 많다. 바다를 향해야 하는 프로젝트는 각각의 관리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내면서 산으로 들로 내빼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 과정에서 물론 성과가 날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아랫 사람들이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들어진게 아닌 자신들의 성과라고 굳게 믿는 관리자들이 많다는 점은 모든 회사원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이 점은 내가 퇴사를 결정한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것만큼 조직을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