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D-37
세상이 꽁꽁 얼어버렸다.
얼마 전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날씨가 추운 탓에 눈이 녹지를 않는다.
하얗고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밟을 때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에 기분이 좋아지지만, 한편으로는 빙판에서 미끄려져 안 그래도 골골거리는 내 뼈가 행여나 금이 갈까 조심조심 걷곤 한다.
밖을 거닐 때면 아무리 두껍게 옷을 겹겹이 껴 입어도 벌거벗은 것처럼 한기가 뼛속 깊이 느껴진다. 원래 겨울은 추운 것이라지만 올 겨울 추위는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우리 회사는 요즘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실내 기온을 17도 이하로 유지한다.
덕분에 밖에서 책상을 놓고 일하는 것처럼 손과 발이 정말 시리다. 회사에서 직원들끼리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춥다.' 이 두 글자이다. 가끔은 '내가 이러려고 이 회사를 들어왔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드디어 인사과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담당자는 왜 퇴사하는지, 힘들어서인지 또는 제고의 여지는 없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희망퇴직일이 언제인지 묻는다. 회사를 들어갈 때는 그리 까탈스럽게 이것 저것 재지만, 구성원이 조직을 떠난다고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조직이란 그런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조직이라는 거대한 것을 이루는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내가 조직을 이탈한다고 하여 조직은 아쉬울 것이 없다.
나는 조직을 이루는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므로.
회사 생활을 하는 10년동안 이걸 깨달아서 그런지, 인사과의 그런 태도에도 전혀 아쉬움이나 어떤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나가면 내 일을 나눠서 해야되는 남은 사람들에게도 전혀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언젠간 나를 대체할 새로운 부품이 끼워질 것임을 알기에.
하지만 아예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10년간 쭉 해왔던 일을 던지고 나간다는 것은, 마치 번데기가 자신을 감싸고 보호해주던 고치를 자기 손으로 찢고 나가는 것과 같은 일인 것 같다.
번데기가 고치를 벗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동시에 나비의 삶은 이제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다. 내 감정도 지금 그러한 것 같다.
좋든 싫든, 10년 동안 나에게 안정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준 내 고치를 찢는 중인 지금은, 이제 막 나비가 될 여린 몸에 부는 살랑이는 바람도 시린 칼바람처럼 느껴진다.
하얗게 얼어붙은 강이나 호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마음이 시린 요즘이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듯이, 이 시기가 지나면 나의 인생에도 아주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잎이 무성하고 뿌리가 단단한 나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