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쯤 전, 이런저런 이유로 핸드폰에서 인스타그램 어플을 삭제했다(단상 5).
SNS를 그만두고 난 후, 내추럴와인바 호핑, 위스키바 호핑, 서핑, 골프, 독립영화 관람 등등 그동안 내 오랜 취미였던(혹은 내가 내 취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체력은 줄어들고 아기와 노느라 개인 취미를 즐길 시간도 줄어드니, 일주일 모두 그러모아도 얼마 되지 않는 내 개인 시간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취미가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해서 꾸준히 해 온 취미에만 쓰고 싶어졌다.
정신 차려보니 딱 2개만 남았다.
요가, 그리고 책 읽기.
요가에 대한 나의 오랜 애정은 지난 글(일상을 수련처럼)에서 쓴 바 있으니, 이번에는 독서에 대해서 써볼까 한다.
나의 책 사랑은 유구하다.
독서광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각종 책에 둘러싸여 지냈고, 자연스레 책에 빠르게, 많이 노출되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어두운 방 안에서도 책을 보느라 초등학교 입학 무렵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다.
독서를 독려하시던 부모님도, 막상 내가 중학교 때까지도 학교 공부와는 관련 없는 책만 읽으니 하루는 참다 참다 내 눈앞에서 내가 그때 읽고 있던 책 표지를 찢어버리신 적도 있다(성인이 된 후 사과하셨다...).
이런 오랜 취미인 독서를 취미라 부르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각 기업의 자기소개서에는 꼭 취미를 쓰라는 란이 있었다. 내가 곧이곧대로 '독서'라고 쓰면 자기소개서 첨삭을 해주시던 취업센터 선생님이나 선배들은 "그런 뻔한 거, 고루한 거 말고. 좀 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거 없어? 등산처럼 너의 끈기를 보여준다던가, 스노보드처럼 활력을 보여준다던가."라고 조언했다.
결국 그때마다 나는 후순위 취미였던 조금 더 활동적인 운동 하나를 써서 내고는, 다시 중앙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다행히 어찌어찌 한 곳에 취업이 되어 더 이상 내 진짜 취미를 숨길 필요가 없어진 후에는 여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은 사보기도 하면서 독서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새해가 된 후 1~2월에는 김민철 작가의 '무정형의 삶, ' 나혜석 작가의 '경성에서, 정월, ' 한강 작가의 '흰'을 읽었고, 3월을 앞둔 지금은 김소영 작가의 '어떤 어른, ' 네덜란드의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 작가의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를 번갈아가면서 읽고 있다. 매달 2~3권은 읽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브런치에 그 달 읽는 책에 대한 감상도 남겨보고 싶다.
이런 내 독서 취미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필사이다(≪쇼코의 미소≫, 최은영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완독 할 때마다 필사노트에 필사를 하고 있는데, 필사하는 내용은 주로 아래 2가지이다.
1. 내가 겪어보았거나 지금 겪고 있는 일과 관련된 내용
1년에 해외여행만 4번씩 다니던 시기에는 여행에서 느낀 소회와 관련된 문구를 많이 베껴 썼다.
요즘은 엄마-아기 사이 관계(모성애에 관한 글,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떤 것인가에 관한 글 등)와 관련된 문구가 많이 와닿는다.
2. 잘 쓴 표현
하고 싶은 말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말들이 많다. 한국어가 내 모국어임에도 그렇다.
서면, 브런치 글, 심지어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그 순간의 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서 발을 동동 구른 적이 많다.
그래서 그 당시 느끼는 감정이나, 설령 지나간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걸 섬세하고 우아하게 풀어낸 말이 있으면 꼭 필사해 둔다. 그럴 때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그 표현들을 곧바로 활용해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내 '표현 서랍장'에 보관하는 기분으로 일단 남겨둔다.
최근, 반가운 뉴스가 하나 둘 뜨기 시작했다.
독서,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다: Z세대부터 북클럽 열풍까지 < MZ생각 < 기사본문 - 소비자평가
(1) “… 텍스트힙이요?” 갑자기 찾아온 독서 붐에 대한 출판사 직원들의 솔직 심경 인터뷰 - YouTube
지루하고 평범해보여 당당하게 취미라고 내세우지 못하던 독서가 힙해지다니! 트렌드가 되다니!
부디, 텍스트힙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 다른 유행처럼 일시적이어도 상관없다.
살면서 공부 관련 서적이나 만화책 외에는 책을 펼쳐볼 일이 없던 사람들도 이번 유행을 타고 한 권의 책이라도, 그저 있어 보이기 위해서라도, 책을 만나보면 좋겠다.
그런 다음 그중 10%라도 자신 일상에 책을 들여주면 좋겠다.
김소영 작가의 말처럼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내'므로, 나와 서로 흥미롭게 읽은 책에 관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인(知人)이 늘어나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