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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으는 돼지 Apr 22. 2020

결혼한다는 말에 주변에서 하는 잡소리

평소 예뻐하는 후배가 결혼 소식과 동시에 퇴사 소식을 전했다. 우리 앞에는 막 나온 마늘 치킨이 놓여 있었다. 나는 닭다리를 집으려다 말고 먼저 축하한다고 말했다. 후배는 이제서야 비행에 재미를 붙인 참이었는데 그만둬야 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나는 닭다리를 입에 가져가며 물었다. 남자친구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어서 결혼을 하면 미국에 가서 살아야 된다고 했다. 나는 닭다리를 씹어대다 이제 미국에 가야지만 아끼던 후배를 볼 수 있단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후배는 한국에 올 때마다 꼭 연락하겠다며 웃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보다 축복하고 축하해 줘야 했기에 나는 무작정 축하해를 외치며 맥주잔을 높이 쳐들었다.


프로포즈며 결혼 준비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결혼하기 전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에 들뜬 후배에게 결혼 준비 비법을 전수해 줘야 할 분위기였다. 나는 큰 갈등 없이 결혼 준비를 했고 제법 즐거운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기에, 후배는 내게서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는 눈치였다.


결혼 전에 나도 섭섭한 마음이 들긴 했는데 그렇게 만든 사람은 결혼할 남자친구가 아니라 언니들이었다. 내가 기죽어 있으면 내 손톱 모양까지 이쁘다고 들먹이며 어떻게든 칭찬할 거리를 찾아주던 언니들 말이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한 언니는 결혼한다는 내 말에 남자친구 직업을 물었다. 공기업에 다닌다고 말하니 양미간을 찌푸리며 별안간 심각해졌다.


"백 세 시대인데 말이야.. 요즘에는 정년 이후에도 일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언니가 개그를 하나 싶었지만 표정이 퍽 심각했다. 어쨌든 받아쳐주긴 해야 하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언니, 나는 올해 내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남자친구 육십 세 이후까지 가늠이나 하겠어?"


결혼하기 전 고려해야 할 사항에 배우자의 정년 이후 삶도 있다는 걸 파악한 하루였다. 미적지근한 축하를 받고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정말로 남자친구가 정년 이후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도통 가늠이 가지 않아 이내 그만두었다.


얼마 뒤 다른 언니에게도 결혼한다고 말했다. 정년 이후고 뭐고 어쨌든 나는 남자친구랑 결혼할 거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긴 해야 했다. 이번에 말한 언니는 집은 구했냐고, 매매인지 전세인지부터 따져 물었다. 전세라고 말하면 내 결혼의 위상이 낮아지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니는 한동안 언니가 몸소 겪은 결혼이란 제도와 가정을 일궈나가는 일에 열변을 토했다. 대부분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느냐는 이야기였다. 결국 매매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언니가 날 위해 한다는 소리가 내 기분을 잡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샌가 언니에게 내 남자친구의 좋은 점을 늘어놓으며 이 결혼은 잘한 결정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그만두었다.


그날 이후 나는 결혼한다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은 뜬금없다는 눈치였다. 그 편이 낫다고 믿었다. 결혼이 임박했음에도 이것저것 궁금해하고 물어오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내가 불만이 있어서 같이 불평한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정작 나는 불만이 없는데 내 결혼에 대해, 결혼할 사람에 대해 언제라도 불만을 터뜨릴 준비가 된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하며 또는 피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잡음을 끄니 조용해서 좋았다. 나와 남자친구는 나름대로 어울리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그래, 열심히 일하긴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모로부터 받을 신혼 집이 없다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인 삼포세대를 오히려 강요받는 입장이었다.


내 입에서 대단한 결혼 명언이라도 나오길 기대한 후배에게 말했다. 너 결혼 참 잘하는 거라고, 혹시나 어떤 사람이 네 결혼에 왈가왈부한다면 질시든 부러움이든 다 잡소리니까 듣지도 말라고. 후배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 가서 살아야 된다고 하니 후배 커리어나 미국에서 혼자 지낼 생활을 걱정하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나는 닭다리를 마저 뜯으며 그렇게 말한 자기야말로 미국에 가서 뒤지게 살고 싶나 보네,라고 말을 뱉은 다음 닭다리와 함께 씹어줬다. 후배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구하지도 않은 조언이 너무 많다. 닭다리를 먹을 때처럼 씹는 게 상책이다. 내가 논리적으로 따져들면 그쪽에선 더 같잖은 논리로 덤벼든다. 각자의 논리는 교차되지 않는 평행선으로 달릴 뿐이다. 흔들리고 말았다면 이미 말린 거다. 내가 직접 겪고 고심해서 내린 판단을 욕되게 하는 일은 기꺼이 막아서고 지켜야 할 영역이다. 고유한 영역은 개별적이다. 개별적이기에 결코 침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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