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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Apr 29. 2020

대한항공에 '꿈'을 묻다

-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

1. '꿈'을 묻다.


입사 후 신입 사원들은 신갈에 있는 연수원에서 합숙 교육을 받았다. 회사와 각 부서에 대한 소개부터 항공사 현황, 항공사 주요 이슈, 서비스 트렌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선배 강사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팀워크 활동을 한다. 연수원은 푸른 푸릇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공기가 매주 좋았다. 나는 교육 중에 종종 입사 동기들과 숲 속 산책을 즐겼다. 그날도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소나무 숲을 거닐다가 문득 동기들에게 내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우리, 10년 뒤 대한항공에서의 '꿈'을 적어서 이 음료수병 안에 넣고 소나무 아래 묻어두면 어떨까? 10년 뒤 이곳을 다시 방문해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해 보는 거야".


모두들 재미있는 생각이라며 웃는다. 우리는 각자 메모지에 '10년 뒤 꿈'을 적은 후 병에 넣고 소나무 아래 묻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 이벤트(?)를 함께했던 동기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는데, 그중 1명은 3개월 뒤 항공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나가고, 또 1명은 1년 뒤 다른 회사로 전직했다. 그 둘의 꿈은 '퇴사'였나 보다. 이제는 2명만 남아 대한항공을 지키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있고, 나머지 한 친구는 전공인 중국어를 활용해 중국 지점에서 능력을 펼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병 속의 메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만, 지금도 '10년 뒤 나의 소원'이 생생히 기억난다. 승무원으로 전직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루어졌을 꿈인데. 인생은 내 의지와 소원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좋은 추억이 되었다.



2. '꿈'을 향해...


입사 교육이 끝나고 내가 처음 배속받은 부서는 김포 국제공항 수하물 팀이었다(당시는 인천 국제공항 개항 4년 전이다). 수하물 팀은 승객의 수하물이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탑재되는지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즉, '정확하고, 안전하게' 탑재되지 않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하물은 때로 분실되고, 파손되고, 엉뚱한 목적지로 가버리곤 한다.


수하물 카운터를 찾아오는 승객의 대다수는 화가 난 상태로 오셨다. 본인의 수하물이 분실, 파손, 오송 된 걸 알고 웃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끔 있기도 한데, 그 경우도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어이없어 웃는 것일 뿐. 한국에 도착했는데, 수하물은 파리에 가 있다든지, 비싸게 주고 산 여행 가방이 깨져 있는 것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승객도 더러 있었다.


화가 난 승객을 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승객이 화를 낸다고 해서 같이 화를 내거나, 흥분했다고 해서 거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 승객 수하물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불편을 이해하고, 승객의 불만과 말씀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승객도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오히려 '충성 고객'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수하물팀에서 나의 주 고객은 '짐'이었다.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하고 싶었는데, 무뚝뚝한 '짐'들을 상대해야 하다니.... 내 '꿈'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꼭 배워야 할, 지금 생각해 보면 배워두기 잘 한 업무였다. 승객의 '짐'도 나에겐 소중한 고객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끌고 가는 승객들을 보면 맨 먼저 그 '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 짐은 이민을 가는가 보다. 저 짐은 여행 가는 걸까?. 가방 속에 김치가 가득 들어 있을까? 터지지 않게 조심해서 탑재해야겠다. 저 짐 속에는 귀중한 비즈니스 서류가 들어있을 거야.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할 수 있게 해야지'. 나는 말없는 짐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3. '꿈'이 깨지다.


공항에는 수하물 부서 이외에도 체크인 카운터, 출입국, 운송 총괄 등 다양한 부서가 있다. 수하물 팀에서 7개월쯤 지났을 때 팀장님께 다른 부서로의 전출을 요청했다. 수하물 업무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부서 업무를 배우고 싶었던 열정이 넘쳤다 (다른 부서 업무에 '꽂혔다')고나 할까? 그런데 팀장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오라는 부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디 부서냐고 물으니

'인재 개발원'이란다. 물 없이 고구마 열개쯤 먹은 듯 가슴이 확 막혔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재 개발원은 우리 회사의 핵심 부서중 하나였다. 나같이 '빽' 없고 (반면, 수하물 부서에는 Bag이 엄청 많았다) 능력 없는 녀석이 갈 곳이 아니었다 (인물이면 몰라도). 난 몸으로 뛰는 현장 체질인데.... 발령 취소가 안 되겠냐 물으니 이미 늦었고, 곧 발령이 날 거라며 수하물 업무나 잘 마무리하라며 어깨를 두들겨 주셨다.


이틀 후 회사 소식에 내 발령 소식이 떴다. 선배들은 "너 보기보다 능력 있다"라고, 동기들은 "핵심부서로 가서 좋겠다"며 나의 발령을 축하해 주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운송에 뼈를 묻고 싶었는데, 나는 현장 부서가 체질인데, 가능만 하다면 '무효'로 하고 싶었다. 2001년 10월 1일, 정든 수하물 팀을 떠나 교육원 근무가 시작됐다. 회사 생활의 첫 위기가 찾아왔다.


수하물 부서 근무 시절, 'V'자를 그리며 행복해 보이지 않은가! 대한항공 인재개발원은 등촌동 하이웨이 주유소 맞은편에 있다.





*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면 보통 현장으로 배치된다. 3년 정도 현장 근무 후 스탭 부서 (자기 책상과 컴퓨터가 있고, 몸보다 머리를 써야 하는 업무)로 발령을 받는다.


* 공항에는 여러 부서가 있다. 승객에게 탑승권을 발권해주는 카운터 팀, 승객의 출/입국 업무를 담당하는 출/입국 팀, 승객의 수하물을 관리하는 수하물 팀, 외항사 항공기 운항을 담당하는 외항사 팀, 그리고 운영을 관리하는 공항 운영팀. 대부분의 신입들은 카운터, 출입국, 수하물 팀의 '현장'에 배속되어 실전 업무 경력을 쌓는다.


* 공항 근무는 순환된다. 짧게는 몇 달, 혹은 몇 년 주기로 공항 내 업무부서가 바뀌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게 된다. 대한항공은 해외 지점이 많고, 해외 근무 기회도 많다. 공항 근무 경력이 있으면 해외 근무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니, 해외 근무를 꿈꾸는 사람에게 있어 공항 근무 경력은 필수다.


* 대한항공에 입사하면 직종 (종합직, 서비스 사무직, 객실 승무직, 운항 승무직, 정비직, 전산직 등)에 상관없이 인력 개발 센터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남을 교육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이 알고,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모범이 돼야 한다. 세 가지 모두, 나와는 무관한 얘기여서 인력개발원 근무 시절 어려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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