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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Flight Apr 29. 2020

나의 항공사 합격 스펙

- 나의 대한항공 공채 합격 노하우 공개 -

- 토익 935점

- 영어 회화 구사 능력 '상'

- 일본어 회화 구사 능력 '중'

- 국립 민속 박물관 가이드 자원봉사 (영어)

- 영어과 취업 대책 부위원장

* 취미 : 단소 연주

* 가장 막강 스펙은? (글 속에 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대한항공 입사 원서에 기입했던 나의 '스펙'이다. 요즘 세대들은 토익 만점은 물론, 제2 외국어, 기업체 인턴, 공모전 수상, 해외 유학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데도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그들보다 좀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비교해 초라한 스펙으로 운 좋게 항공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내 스펙 중 '국립 민속 박물관 가이드 자원봉사'가 눈에 띈다 (나만?). '그게 뭐지?' 궁금하지 않은가? (않다! 나만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경복궁 안에 국립 민속 박물관이 있다.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찾는 곳인데,  그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역사, 유물에 대해 영어로 설명해 주는 자원봉사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머리도 식힐 겸 경복궁을 찾았다가 외국인 단체에게 영어로 유물을 설명해 주는 한국 사람을 보고 '바로 저거다' 꽂혀서 지원하게 되었다.


박물관 가이드 자원봉사는 1년 넘게 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역사와 문화, 유물을 영어로 설명해 주는 일은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설명이 끝나면 외국인들은 감사의 표시로 팁을 주곤 했는데, 팁은 사양하고 대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 영어 실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외국인 커플에게 한국의 전통 악기에 관한 설명을 하다가 문득 단소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잠시 배웠지만, 그 소리에 꽂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틈틈이 연습해 오고 있었다. 이후 외국인들에게 박물관 안내를 하면서 한국 전통 악기가 나오면 잠시 눈을 감아보라고 한 후 단소로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박물관은 공명이 잘되어 단소 소리가 더욱 구슬프게 (혹은, 청승맞게) 울렸고, 연주가 끝나면 외국인은 물론, 다른 한국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곤 했다.


대한항공에 지원하는 사람은 SKY 출신은 물론이거니와 해외 유학파도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토익 성적과 박물관 가이드 자원봉사만으로는 왠지 불안해서 '일본어 구사 가능함'도 추가했다. 일본어는 2학기 동안 기초 정도 배운 실력밖에 안돼서 혹시나 면접 때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시키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자기소개뿐만 아니라 지원 동기, 희망 직무 등에 대해 일본어로 번역해서 딸딸 외워놓았는데 다행히 면접 때 질문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한항공이 나를 뽑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나의 가장 막강 스펙은 바로 '빨간 얼굴'이었다. 웬 얼굴? 그것도 빨간 얼굴? 사실 나는 평소에 술을 먹은 것처럼 얼굴이 약간 붉은 편인데, 대한항공 면접을 볼 때는 긴장감에 얼굴이 더욱 빨개져 있었다 (친구들이 이런 나를 "빨갱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내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 중 하나였다. 나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친구는 나의 강력 펀치로 '즉결 사형'에 처해졌다) 면접날 면접관님이 빨간 내 얼굴을 보고 한 말씀하셨다.


-- 이덕영 씨는, 그렇게 얼굴이 빨개서 서비스를 제대로 하겠어요?


그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임기응변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물로 순도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면접관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 면접관님, 저는 지금 얼굴이 매우 빨갛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떨리고 긴장하고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간 것은 아닙니다. 제가 얼굴이 빨간 것은 대한항공에 입사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의 표현입니다. 저는 대한항공에 입사해서 이 뜨거운 열정을 승객들에게 전하는 칼맨이 되고 싶습니다".


내 답변을 들으시고 면접관님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빨갛던 얼굴이 더욱 불타올랐지만 무더운 여름, 소나기가 한차례 스쳐 지나간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몇 주 뒤 나는 전화기 너머로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헉~ 하고 놀라는 사람 없기!) 그때보다 스펙이 몇 개 늘었다. 비행을 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 대한항공은 중국 승객들이 많이 이용을 하는데 (몇 년 전에는 중국인이 뽑은 최고의 외국 항공사로 선정됐었다) 중국 승객들에게 중국어로 서비스를 하고 싶은 마음에 2년 동안 중국어에 꽂혀 지냈더니 HSK 6급을 취득하게 되었다.


입사원서에 '일본어 회화 구사 능력 <중>'이라고 쓴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중국어 자격 취득 후 일본어에 꽂힌 채로 2년 보냈더니 JPT 855점이 나왔다 (나중에 점수를 더 올렸다). 언어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앞으로 대학교 때 한 학기 공부했던 스페인어(에스 뚜디어 에스파뇰라 엘라 유니버시다드)와 내가 은퇴 후 1년 정도 살고 싶은 나라, 네팔어(데라이 미뚜짜, 남로짜)를 배울 예정이다. 이래 저래 생각해 봐도 외국어에 꽂힌 나에게 있어 항공사는 최고의 직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대한항공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1위가 바로 '나'다.




* 가장 크게 발전한 스펙은 대한항공에 대한 '사랑', 서비스에 대한 '열정', 고객 감동을 위한 '부단한 노력', 안전 운항을 위한 '철저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원래 스펙 쓸 때는 좋은 말 다 갖다 붙이는 거니깐, 와~ 하고 감탄하지 말자. 그렇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와~                                                          (하지 말라니깐)



* 항공사 입사 교육을 받던 어느 날, 낯선 분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셨다. "누구신지..." 바로 면접날 나에게 질문을 던지셨던 분이셨다. 유난히 빨갛던 내 얼굴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빨간 얼굴 속에서 '열정'을 느끼셨다며 나의 입사를 축하해 주셨다.


* 누구나 자기만의, 감추고 싶은 '핸디캡'이 있다. 그런데 감추려 하면 할수록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려고 한다. 감추지 말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면 어떨까? 밖으로 꺼내 남들에게 보여도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심각한 핸디캡이 아닐 수 도 있고 사실 남들은 나의 핸디캡에 대해서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핸디캡을 인정하고, 보듬어 주고, 가꿔주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핸디캡은 감추고 싶은 단점이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가장 강력한 '장점'이 될 수 있다.



* 지금은 더 이상 예전처럼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다. 뻔뻔해져서 그런가? 얼굴이 빨개지더라도 "거봐, 나 얼굴 빨갛지"라고 내가 먼저 빨개진 것을 인정해 버린다. 그러면, 또 금세 원래 색깔로 돌아간다.


* 전화기 너머로 면접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목청이 터져라 '야~~~~~~~호'를 외치며 캠퍼스를 뛰어다녔다. 다들 미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았지만, 상관없었다.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



JPT 860점, HSK 6급, 토익 860점이면 사내 자격 최고 등급인 1급을 받을 수 있다. 지금 나는 세개 외국어에서 1급이다. (JPT는 나중에 1급 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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