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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 이준서 Mar 16. 2019

은전 한 닢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시크릿 끌어당김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을 읽어보았는가? 안 읽어본 분이라면 전면을 올린다.


 내가 상해(上海)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 짜릴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한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요?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중국 꽃거지

거지란 말 그대로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이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으나 급속하게 산업화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시계(視界)를 넓힌다면 세계 곳곳에 거지들이 넘쳐난다. 인간들의 생활이 수렵에서 농업, 그리고 산업화된 사회로 들어서면서 오히려 이러한 불평등한 계급의 분화는 인간의 계층을 층층이 나누고 있는데, 근대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확대와 더불어 그 계급의 층을 나누는 기준은 단순하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 정치와 종교, 이념, 양성 갈등, 남북 동서갈등……. 계층을 나누던 이러한 기존의 개념들은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영향을 끼치나 상대적으로 그 의미가 약화되었고 지금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소유의 미덕은 성장을 낳고 그것은 다시 분배로 이어져 공평한 사회로 진보하고 따라서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하나, 사실은 성장과 분배의 정의가 제대로, 이상적으로 실현되기는 매우 어렵다. 작금의 지구 인류를 보면 자명해진다.

단지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다란 이 거지의 욕망을 분석해 보자. 돈이란 교환과 가치저장, 그리고 가치척도의 수단이다. 돈으로 이 거지는 밥을 사 먹을 수 있고 이 은전 한 닢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 소비패턴을 계획할 수 있고 이 돈을 저축해 1년 뒤 급할 때에 쓸 수 있다. 이 거지는 당장의 교환가치보다 나중을 위해 가치를 저장하고 가치 측정을 통해 은전 한 닢으로 교환에 성공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돈을 무엇을 할 것이냐? 거기에 대한 목적은 없다. 돈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인 것이다.


한 때 론다 번의 '시크릿'이란 책이 유행을 한 적이 있다. 생각하면 이루어지는 끌어당김의 법칙. 그래서 누구나 생각만 하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길 수 있고 빈 용지에 자신이 벌고 싶은 액수, 10억을 써놓고 매일매일 확언을 하였다. 나는 부자가 된다. 나는 10억 원을 가지고 있다……. 그 아류들이 굉장히 출판계를 휩쓸었다. 시크릿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들을 본인 나름대로 추려보자면? 본인의 생각과 자료들을 대충 인용해 보겠다.

개인적으론 오른쪽 시크릿이 더 좋다

의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지수에 의할 때 의식지수가 최소 200 이상이어야 긍정의 사고를 가진다. 허나 400 이상은 되어야 긍정적 사고를 넘어 현실창조가 더 수월하다. 개인적으로는 의식지수 측정을 불신한다. 어쨌든 매사에 긍정적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뭐 그런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잠재의식에 괴리를 일으킬 만큼의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우지 말 것. 이룰 수 있는 단기목표를 세우고 서서히 이루어 나갈 것. 생각을 그림 그리듯이 구체적으로 그린 후 확언을 하거나 아예 그림으로 남기는 방법. 명상을 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부분을 가진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부족한 질량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소원은 구체적으로. 이루어주세요의 미래가 아닌 이미 이루어졌음을 가정하고 진심으로 감사할 것.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암시를 통해 잠재의식에 각인시킨다 등등등.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지도

그런데 왜 시크릿이 안 이루어질까? 세상의 부는 한정되어 있다. 본인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생각으로 끌어당기는 일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zero-sum :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여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이다. 자본주의는 성장이란 자기 굴레에 갇혀 성공이란 곧 얼마의 돈을 갖고 있느냐로 귀결된다. 인류의 집단의식이 더 많이 갖고 싶길 원하는데 그러자면 남의 것을 뺏어와야 한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데 여기서 파지티브 섬(Positive-sum), 즉 다자가 수익을 보는 구조로 가려면 전체 파이값을 늘리거나 혹은 누군가가 양보하거나 아니면 공유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사실 일반오류는 본인이 성공의 기준을 물질적 부로 잡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물질적 부만을 끌어당기려고만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들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돈을 갖고 싶지 않은가? 천사가 그대의 소원을 단 하나만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로또 당첨이요!라는 말 대신 "저는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싶습니다" 란 말을 할 사람이 과연 몇인가?


집단의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개인의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더 많이 주고 나누는 일. 나와 같은 생각을 타인이 하고 있다면 내가 없는 무언가를 타인이 줄 것이다. 그게 바로 풍요 아닌가? 진정한 시크릿을 이룬 예수나 부처, 크리슈나의 예가 그렇다. 예수가 아무 사심 없이 그대에게 빵을 주고자 할 때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 : 성경에서 예수가 일으킨 기적 중의 하나. 예수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 명을 먹였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을 생성하는 능력은 물리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벗어난 깨달음의 영역으로서 완전한 실상계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적극적인 나눔. 이태석 신부

인간의 운명은 70% 가 애초에 주어지며 30% 가 자유의지의 영역으로 주어진다. 시크릿으로 무엇을 이룬 사람은 70% 타고난 운명이 좋은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나머지 30% 를 움직여서 좋은 운명으로 바꾸고자 한다고 치자. 70억을 벌 사람이 시크릿으로 자유의지 영역을 건드려서 30억을 벌어 100 억의 부자가 되었다. 이런 시크릿은 쉽다. 70억 부자가 100 억의 부자가 되는 일. 누군가에겐 대단한 성공으로 보일지 모르나 70 억이든 100 억이든 상관없이 다 부자이니 상관없는 사람도 있다. 은전 한 닢이 누군가에겐 100 억일 수 있다. 가치척도는 이렇듯 자기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러니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와 달리 부자의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이가, 그러니까 70 % 운명이 거지인 사람의 30% 자유의지를 움직여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땡전 한 푼 없는 사람이 100 억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숫자의 개념으로 본다면 불가능하다. 30% 를 정말 온전히 사용하여, 25%나 26% 도 아닌 30% 를 온전히 사용하여도 70% 운명이 거지가 아닌가.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30 이 70 을 이길 수 없을까?


대부는 유천하고 소부는 유근이니라(大富는 由天하고 小富는 由勤이니라). 큰 부자는 하늘에서 나고 작은 부자는 근면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앞의 공식에 대입해 본다면 70 % 거지의 운명인 자가30%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중소기업 사장이 될 수 있을까? 정답은? 될 수 있다. 사업을 해도 10년 계획을 잡고 3년을 성공하면 나머지 7년을 잘 견디어 10년 성공을 이룬다. 3은 버스기사요 7은 버스인 것이다. 3을 잘 운영한다면 7을 수월하게 다룰 수 있고 그리하면 전체 10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7이요, 그것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 3인 것이니 근면하면 소부는 이룰 수 있다. 방법은? 그 자유의지 30을 100% 로 볼 때 70% 는 노력과 근면이요, 30% 는 시크릿을 활용하라. 집구석에 틀어박혀 시크릿만 한다고 하여도 안 되고 노력이 따라야 하며 무턱대고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모자란 의식의 순화를 통해 부를 끌어당겨야 한다. 특히나 타고난 운명이 안 좋은 사람은 시크릿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냥 막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명상을 배우면 좋다. 의식의 주파수를 집단의식과 지구 공명에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은전 한 닢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 여행을 가고 싶은 게다. 여행을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자유를 느끼고 싶은 게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이 진정으로 정도와 부합한다면 시크릿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한 노력해야 한다. 주어진 운명 7이 좋다면 더 좋은 운명을 위해 3을 다스려야 하고 주어진 7이 안 좋다면 3으로 7을 이끌어야 한다. 거지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은전 한 닢이 아니라 그 은전 한 닢을 가진 자기를 누군가 바라봐 주기를 원했을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인류가 원하는 것은 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맘에 더 가지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러하기를 바라는 본인의 바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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