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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Jan 27. 2024

이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잘 알겠습니다.

장거리 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고비도 많고 쉬고 싶을 때도 많지 않겠어요. 우리 인생이 마라톤인데 역경하나 없고 눈물 하나 없겠어요.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시련을 가져다주는 것도 인생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람이 참 간사한지라 고마웠던 순간은 금세 잊어버리고 고난이 다가오면 이 세상 짊을 다 짊어진 것처럼 있게 되지요. 왜 나에게만, 왜 나에게만! 원래 다른 사람의 사연보다 내 사연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다 겪으니 당신도 기다려라,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왜 자꾸 위로에 매달리는지 저는 크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알면서도 어설픈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 그런 책들에 매달리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만약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조언해 줄 사람도 없고, 그 무엇도 없다면 어딘가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게 인간 아니겠나요. 인간은 그렇듯 슬픔과 시련 앞에서 언제나 나약한 존재이니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싶은 마음을 저는 단칼에 외면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이해합니다. 사실 저도 그랬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산을 오르다 버섯이 있다고 의심없이 그냥 먹어서는 안되겠지요. 그게 독버섯일 줄 누가 알겠어요. 저는 이 점을 염두해두고 어설픈 위로가 싫다고 얘기하고 다녔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힘든 순간에도 정신 차리고 이게 먹어서 이로운 버섯인지 해로운 버섯인지 그 정도의 지혜는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마음이 많이 망가진 상태에서는 그런 거 분간도 못 합니다. 압니다. 저도 겪어봤어요. 경험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더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어설픈 위로에 현혹되지 말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면 어설픈 위로에 내가 데이고 상처만 더 커지니까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왜 위로의 글귀를 자주 접하고 싶어하고, 그 글자 하나로 마음을 어루어 만지는지를. 나약해질 때면 저도 책을 찾게 됩니다. 에세이는 아니고 주로 소설이지만 그래도 같은 이유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헛헛하고 뻥 뚫린 것 같을 때, 내 마음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 것 같을 때, 답답해서 누구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책을 집어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보다는 책이 덜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간소하게나마 위로를 받기 편하니까요. 책 많이 읽으세요. 이럴 때 보면 괜히 마음의 양식이라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마음 채울 수 있는 건 사람보다는 책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많이 지친 당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도 이제 잘 알겠습니다. 그럴 땐 책을 집으세요. 책을 집고 가만히 앉아 눈만 좌우 왔다 갔다 거리며 움직여보세요. 멀리서 볼 땐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나만큼은 분명 압니다. 나는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요. 꼭 달려야만 움직이는 겁니까. 책을 집는 순간 우리는 달리고 있습니다. 책이 주는 힘을 믿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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