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바다에 살았습니다. 저 깊은 곳이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고 들여다볼 수도 없는 곳이었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인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저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별난 사람인 건지 특별한 사람이었던 건지 아가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육지의 세계를 갈망했어요. 한때는 저도 평범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나 형벌인지 뭔지 아가미라는 게 생긴 이후로 물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저 깊이 암흑 같은 곳으로요.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니, 아니 추락하다 보니 저 바다 밑도 끝은 있더라고요. 여기서 멈추고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있는 힘껏 차올라 내려왔던 만큼 다시 올라갈 것인지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얼마의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아주 오래도록 외롭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냈죠.
'다시 한번 바다 위로 가보겠어. 내가 있던 곳으로. 그곳이 그리워 외로운 건 더 이상 못 참겠어.'
힘차게 도움닫기를 해봅니다. 아직은 멀고 험한 여정이지만 발버둥 치면서 어떻게든 위로 더 위로 올라가려 애를 씁니다. 얼마나 걸렸을까요.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형체도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있는 힘껏 몸을 움직입니다.
'도와줘요. 여길 벗어나고 싶어요!'
순간 바다 위로 얼굴을 내밀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수영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보는 나는 어딘가 달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의 특별하기도 하고 형벌 같기도 한 아가미라도 본 것일까요. 그 사람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대뜸 말을 건넵니다.
"나와 같이 얘기하지 않을래요? 숨 좀 고르고요. 그렇지요."
그 사람 덕분에 안정을 취하며 밭은 숨을 고르고 몇 년 만인지 모를 육지에 발을 내딛는 게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바닷속에 오랜 시간 침잠해 있다는 걸 잊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육지에서 생활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 사람이 가르쳐준 세상의 룰과 사람에 대해 명심하면서요.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상식선과 타인의 상식선이 달랐고 대놓고 나쁜 사람에게 상처받았죠.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는 골이 깨질 듯이 아팠습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나는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시 바다로 돌아갈지 아니면 끝까지 버텨볼지요. 끝까지 버티면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라도 되어 있겠죠.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바다로 돌아가면 이 세상과는 영영 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바다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대신 자기 전 눈을 감고 캄캄한 여기가 바다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의 한계와 인내심을 점검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할 줄도 알아야 하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고 싶어 발버둥 쳤던 수만 번의 움직임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 외롭고 처절했던 다시 돌아가고 싶니? 지금 여기보다 바다가 더 낫니?'
마음은 계속 아니라고 합니다. 다시는 외롭게 있을 수만은 없다고 외칩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입니다. 육지에서 사는 것. 살아남는 것. 하지만 힘들면 눈을 감고 캄캄한 바다에서 홀로 나의 깊이를 가늠해 볼 것. 세상과 싸우는 것 같을 때는 두 눈 질끈 감고 잠시 피신해 있을 것.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용기를 가질 것.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제는 어엿한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