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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Mar 02. 2024

우리는 태어날 때 예쁜 사과였는데

우리는 태어날 때 생채기 하나 없고 반들반들 보드라운 갓난아이였다. 이 핏덩이가 어디 하나 다칠라 부모의 수고로운 손길로 자라지만 나로 인해, 또 타인으로 인해 조금씩 생채기가 난다.



우리는 매일 처음 마주하는 어떤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세상 좀 살아봤다고 유하면 운 좋게 언덕을 쉬이 넘어가기도 하고, 순진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 낑낑거리며 기어올라간다. 살면서 구겨진 마음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는 법도 알게 해 주지만 순진한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이 우리를 다루는 냉정한 곳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



나는 태몽이 사과였다. 삼신할미가 뽀득하고 상처 하나 없는 예쁜 사과를 엄마에게 주고 갔더랬다. 그리고 세상에 사과같이 예쁘기도 한 얼굴을 가진 내가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삶은 쉽지 않았다. 볼꼴 못 볼 꼴을 다 본 나는 일찍부터 상처가 나고 곪고 굴렀다. 아이고 이를 어쩌냐며 엄마가 연고를 발라줘도 소용없었다. 커갈수록 겉은 그럴듯해 보여도 이미 한번 구겨진 내 마음은 다시 펼 수 없었다. 어쩌다 펼쳐 보이면 구김이 가득한 내가 싫어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를 삼신할미의 탓으로 돌렸다. 삼신할미는 질투가 많아서 누가 잘 되는 꼴을 못 본다는데 그러면서 예쁜 사과로 엄마를 유혹할게 뭐람, 속으로 삼신할미의 소행이 틀림없다며 투덜거리기도 여러 번. 운 좋게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제는 내가 먼저 고백한다. 내 안의 구겨진 마음을 펼쳐 보이며.



"나 이런 사람이야. 괜찮겠니?"



괜찮단다. 아무렴 어떠냐고 한다. 상대도 같이 마음을 펼쳐 보였다. 나와 같이 구겨진 마음을. 삶의 굴곡과도 같은 그 많은 구김을. 고생한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아니 마음을 바라본다. 셀 수 없는 구김에 손을 올려놓아본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 따스한 손으로 구겨진 마음을 조금씩 펼쳐놓으리. 흔적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어루만지리.'



이 글을 보는 모두가 글이 아닌 마음을 보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의 구겨진 마음을 또 다른 구겨진 마음을 안고 있는 누군가가 펴주길 바라며. 그 누군가는 같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구겨진 마음 사이로 하루의 굴곡을 넘어가고 있는 예쁜 사과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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