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20일, 21일 올해 추석 연휴 중 2박 3일 간 이국적인 공간을 탐색했다. 여행이라고까지 하기엔 뭐하고, 일상 탈출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날들이 필요한데, 나이가 드니까 동행해 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혼자 나서는 일에 익숙해졌는데, 그러다 보니 공간과 나 자신에 대해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뭐랄까, 언젠가는 무엇을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누구와 먹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고, 어디에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누구와 있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요즘엔 그 사람을 누구로 대체할 수는 없고, 그냥 나의 대처방법을 바꿔서 이렇게 쏘다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혼자 어디론가 떠난 뒤에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의 과거와 현재 혹은 초행길이라면 지금에 집중하게 되었달까. 혹은, 요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 많이 다녔던 지역이, 역시 많이 다녔던 지역과 사실 엄청난 접점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비유하면 내 지인 1과 내 지인 2가 사실은 친척이었다는 것을 10년 만에 알게 된 것 같달까.
어렸을 때 자주 했던 게임 중에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라는 게임이 있었다. 이 게임은 불행하게도 이 게임이 등장한 시점에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해서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소수의 유저들만 했던 마이너 한 게임으로 남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나는 이 게임이 등장했던 초반에 이 게임에 맛을 들여버린 상태라 이 게임에 로열티가 강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엔 ‘스타크래프트’의 게임 세계관과 룰을 다시 익히기가 버거울뿐더러 이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세계관에 빠져든 참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는 단순한 플레이를 사용해서 게임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근데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해서 문명을 건설하거나 다른 부족, 문명, 국가와 전쟁을 해나가면서 제국으로 업데이트해나가는 재미가 단순함에 스토리를 부여했다. 제일 흥미를 유발했던 부분은, 유저의 시점에서 부족부터 시작해 제국, 국가로 영역을 넓혀가면 마치 신대륙 발견처럼 유저의 화면에 검게 표시되었던 미지의 영역이 이미 타 부족, 제국 국가가 있는 영역으로 바뀌어서 보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길게 하게 된 건, 요즘 어딘가 이국적인 공간을 걸을 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의 게임 세계관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된 기분으로 다닌다는 것이다. 뭐 ‘매트릭스’인가 싶기도 한데, 그렇게 까지 어떤 세계관에 깊게 들어가려고 꺼낸 얘긴 아니고, 다니면서 그냥 ‘어! 여기 미지의 영역이었는데 이번에 그게 걷혔네.’ 거기에서 오는 재미가 있달까.
누군가는 담배나 술에 중독되면 끊을 때 금단증상이 생긴다고 하던데, 나는 담배나 술에 중독된 적은 없지만 뭔가에 중독되기는 하고, 그 중독되는 뭔가가 굉장히 개인적인 포인트에 따라온다. 그리고 담배나 술 못 끊는 사람처럼 잘 못 빠져나온다. 중간은 없는 편이다.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도 마이너 한 게임이었는데 엄청 빠져들어서 밤에 부모님께 잘 자라는 인사 듣고 새벽에 다시 잘 일어났냐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하곤 했다. 요즘엔 여행이라기보다는 일상 탈출처럼 하고 있는 공간 탐색에 중독된 것 같다. ‘공간’도 그런 게 좀 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할 때 느꼈던 아드레날린까지는 아니고, 그 묘한 흥미의 지점과 중독의 지점이 있다. 공간을 탐색하는 건 내가 게임의 유저처럼 제국을 세우게 되거나 깃발을 세우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간도 마치 유기체 같아서 새롭게 미개척지를 방문해서 알게 된다거나, 자주 다녔는데 근래에 못 갔던 곳의 변화를 보게 된다거나 혹은 이 지역과 저 지역의 접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거나 그럴 때 묘한 흥미가 생긴다. 뭐랄까. 게임의 세계관 안에 들어온 플레이어이자 바꿔 말하면 실사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된 것 같달까.
아, 음식처럼 오래 음미하다 보면 내 개인적인 역사와 어떤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가 날줄과 씨줄처럼 겹쳐질 때 나는 묘한 맛과 중독성도 있다. 이번에 찾아갔던 ‘연남동’, ‘서교동’, ‘상수동’, ‘망원동’이 그랬다, 굉장히 묘한 맛이 났다.
9월 19일
경기도 고양시 방향에서 서울로 갈 때 전철이나 지하철을 타려면 옵션이 거의 3호선 뿐이다. 이러나저러나 3호선을 거쳐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근데 가끔 지하의 답답함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온다. 그런 때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좀 걸리거나 예상치 못한 도로의 정체를 감수해야 하거나 돌아서 가게 되더라도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특별한 약속이 없을 땐, 이렇게 서울 방향으로 가는 아무 버스에나 올라탄다. 그러면 그 버스들은 주로 서대문구로 향한다. 이곳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별로 없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 버스에나 올라타도 대부분 서대문구를 지난다. 거의 지하철 3호선의 경로를 지상의 도로로 따라가다가 그렇게 갑자기 서대문구 연희동이 보인다.
어떤 장소가 눈에 잘 들어오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연희동의 이름이 학창 시절 전학 왔던 어떤 낯설지만 궁금했던 친구의 이름을 떠올리기 때문에? 여하튼 이번에도 그렇게 연희동을 지나다가 패스트푸드점이 보이길래 배가 고파서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일단 끼니부터 때우고 이 공간을 둘러보든지 하자 싶었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연희동이 중요했다기보다는 여기부터는 아무 곳에나 내려도 어디로든 걷다 보면 흥미로운 곳에 다다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연희동에서 숙소로 잡아둔 서교동 지점까지 내비게이션으로 길 찾기를 해봤더니 도보로 약 40분 남짓 걸렸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지점에 역시나 인스타 핫플로 소개되는 명소가 많았다. 연남동, 서교동, 무슨 무슨 길, 카페거리 등.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걷다 보니까 연남동 골목길이 나왔다. 분명히 한적한 대로를 지나오고 있었는데, 연남동임을 알려주는 좌표쯤의 골목길 곳곳에 이르니까 젊은이(?)들이 아니, 젊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날 나의 복장을 복기해보았다. 2박 3일 묵을 짐을 지고 숙소를 찾아 떠나는 참이라 엄청 부피가 큰 분홍색 백팩을 멘 상태였고, 복장은 분홍 티셔츠에 하얀 긴바지로 약간 추레했다. 아, 2박 3일 일정 중 마지막 날에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예보에 신발은 분홍색 아쿠아 슈즈를 신고 있었다. 핫핑크까지는 아니고 대체로 물 빠진 듯한 분홍색이긴 했지만 분홍 깔맞춤이 약간 민망하게 느껴질 겨를도 없이, 연남동은 인스타 핫플레이스 답게 사진을 찍기 위한 인파 - 여성스러운 옷차림과 남성스러운 옷차림 혹은 캐주얼한 옷차림들의 - 젊은 남녀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인파가 나의 나이를 실감하게 했다. 그래도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이 공간보다 나이가 더 들었구나. 그런 느낌. 공간에도 나이가 있다면 연남동을 비롯한 그 주변 일대는 젊음, 그리고, 동안 중의 동안 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람도 ‘동안’을 볼 때 느껴지는 어떤 감정들이 있다. 연남동 일대를 찾아갈 땐 그런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항상 그 시기의 젊은 세대들이 수혈되고 찾아오는 그 공간은, 스틸 사진이 계속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이곳에 오면 내가 이 공간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동시에 내가 과거의 젊은 시점이라고 할만한 시점으로 인생의 시간을 한번 거슬러 가보게 된달까. 근데 그렇게 하기엔 사실 나는, 한국 나이로 내가 젊었다고 할 만했을 때에 연남동에서 별로 추억을 쌓은 게 없다. 내가 한국 나이로 젊었다고 할 만할 때 그 시기의 추억을 쌓은 곳은 오히려 ‘올드’한 공간들이었다.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젊었을 땐 젊은 거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곳에 사실 발길이 잘 닿지 않았다. 가끔 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것도 마치, 잠깐 들른 사람 혹은 누구 따라온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곳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되니 생각보다 의외였다.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 고고학자는 좀 오반가.
뭔가 인생의 시기에서 ‘통과의례’라는 게 있다면, 아 이것도 좀 오버다. 여하튼 별별 잡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연남동의 황홀함에 넋을 잃기도 하면서 간신히 연남동 골목을 빠져나와 계속 서교동 방향으로 향했다. 갑자기 분위기 경의선 숲길이 나왔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젊음의 거리 한복판이었지만 그 와 중에 비무장지대처럼 산책길이 이어져 있다 보니 드디어 가족단위의 인파가 종종 보였다. 내가 젊었다고 할 만한 나이에 추억을 쌓았던 곳 중의 한 곳은, 약간 이렇게 폐철길이 놓여있는 곳이었다. 딱 짚어서 여기 경의선 숲길은 아니고, 다른 폐철길. 간이역이나 폐철길에 이상하게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나는 가끔 지인들의 우정을 시험할 때, 혹은 정말 개인적인 솔메이트 테스트를 할 때 내 아지트였던 간이역과 폐철길 구간에 데려가곤 했다. 근데 그 감성은 뭐랄까. 너무 마이너 했던 건지, 나중에는 그냥 혼자 다녔다. 공강 때나 뭐 그런 때에. 아, 나중에 이 감성을 잘 표현해준 영화를 찾았을 때 엄청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남주가 여주 찾아 철길 따라간 뒤, 엄청 외진 곳에 있는 간이역에 도착해서 둘이 만나기는 만났던 장면이 나왔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
근데 경의선 숲길은 폐철길이라고 하기엔 너무 인싸가 아닌가. 이렇게 핫플의 정중앙에 놓인 폐철길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은 숨겨진 매력을 감춘 폐철길의 감성과는 다르다. 여하튼 그것도 그렇고 경의선 숲길은 너무 자주 와 봐서 이번엔 이곳을 지나치기로 했다. 2박 3일의 일정을 예상하여 메고 온 짐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던 것도 있었다. 계속 걷다 보니 추석 연휴인데도 인파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음과 추석 연휴의 시간은 상관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젊음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었다. 아닌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통해 듣고 있던 음원이 불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어폰이 망가졌나 보다. 인근 다이소를 검색했다. 바로 근처에 있었다. 아, 이런 편리함 또한 정말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다시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이소에서 구입하는 이어폰은 정기적으로 망가지는 것 같다. 그래도 큰돈 주고 오래 쓸 이어폰을 살 엄두는 못 내고 다이소에서 그간 사용하던 이어폰을 찾아 다시 바꿔 낀 뒤 길을 나섰다. 짐은 점점 무거워졌고, 여기부터는 대로변이라 변화는 잦지만 익숙한 길이라 피로가 동시에 밀려오기도 했다. 숙소 방향으로 가더라도 조금 덜 익숙한 길, 낯선 길로 가고 싶었다. 이게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게 여행에 가까운 것 같으니 말이었다. 익숙한 길들을 지나 굳이 골목길을 찾아갔고, 덕분에 미로처럼 되어 있는 서교동 골목을 헤맸다. 숙소 인근은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을 때 즈음, 내비게이션에 KT&G 상상마당의 위치가 눈에 띄었다. 숙소는 그 인근에서 도보로 5분~8분 거리에 있다고 표시되었다. KT&G 상상마당은 상영관이 적어서 대형 영화관에서 보기 힘든 독립영화 볼 때 종종 다녔는데, 이번엔 영화가 목적이 아니라 방문하기에 부담 없는 소품샵, 굿즈샵을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들리기로 했다. 굿즈샵은 독립영화처럼 뭐랄까, 약간 벽이 있다기보다는 완전히 오픈된 장소였다. 통유리로 된 건물 1층에 위치해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었으니까. 1시간 가량 짐을 지고 걸었던 터라 거의 기진맥진 체력이 다해 지쳐있는 바람에 그 굿즈샵을 건너뛸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오픈되어 있으니까 편하게 방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둘러보는데, 처음엔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와 귀여움으로 무장한 굿즈들이 생각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근데, 향수를 발견하고는 잠깐 숨을 고른 뒤 향수 앞에 멈춰 섰다.
그런 콘셉트의 향수들을 종종 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유난히 그 향수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어떤 감수성을 ‘향’으로 바꾼다는 발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문학작품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수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시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수성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향에 담아 놓은 향수 같은 식이었다. 문학 작품뿐 아니라 장소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을 담은 향도 있었다. 대표적인 향으로 ‘제주도’에 관한 ‘향’ 시리즈였다. 한라산 향, 올레길 향 같은, 뭐랄까 보통 향수하면 느껴지는 유혹적인 강한 ‘향’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 은은한 향 혹은 아득한 향을 담아냈달까. 그걸 향으로 어떻게 표현하나 싶으면서도 그 순간, ‘향’에 대해 굉장히 근본적이면서도 동시에 예술적이고도 상업적인 고찰을 해낸 뒤 그 어딘가의 접점을 찾아낸 시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그리고 향이 너무 편안해서 잠깐 평안해졌다. 아로마 테라피까지는 아닐지라도, 뭔가 평안해지는 느낌. 왜, 화장품 중에도 뭔가 화학약품 덜 쓴 것 같고 자연적으로 보이는 -그게 콘셉트일지라도- ‘이니스프리’ 시리즈가 있지 않던가. 여하튼 그 향으로 위로를 받은 뒤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찬찬히 굿즈샵을 다시 둘러보게 됐다.
굿즈샵을 둘러본 뒤 다시 길을 나서서 숙소로 향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다는 신호가 표시되었다. 내비게이션에 5분~10분으로 표시된 거리였으니, 아무리 헤매도 걷다 보면 찾겠지 하는 심산으로 충전을 하지 않은 채, 혼자 골목을 계속 걸었다. 그런데, 골목은 생각보다 거미줄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었다. 숙소 위치가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과 상수역 사이의 어딘가라는 것. 그 사이에 점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그 일대는 점점 더 활기를 띄었다. 젊음의 거리라는 말이 실감되는 동시에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카페거리가 아닌 클럽 거리는 정말 낯설었다.
숙소를 두고 빙빙 돌다가 결국 핸드폰을 충전해서 내비게이션을 켠 뒤, 1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숙소를 찾았다. 숙소는 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형태의 게스트하우스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인이신지 모를 젊은 한국 남자분이 영어로 인사를 해주셨다. 외국인만 받는 숙소는 아니었지만, 주로 여행객들이 묵는 장소라 처음에 영어로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나는 한국어로 내 이름을 말한 뒤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간단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진행되었던 숙소 사용 규칙을 들은 뒤 개인방을 받았다. 숙소 사용 규칙을 들을 때 봤던 주방과 복도, 화장실, 샤워실과 개인방 등으로 봐서 게스트하우스는 굉장히 특이한 구조였다. 그러니까, 광장과 밀실이 정말 잘 분리되어 있었다고 할까. 나는 개인방, 그러니까 이번 일정 동안의 내 밀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구석에 위치해 있는 것도, 그래서 창문 너머로 바깥이 보이는 방인 것도, 창문이 이중창이 아닌, 격자로 된 창문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의 밀실은 호화롭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정갈’했다. 예전에 수도원의 기도실 같은 느낌의 공간을 동경한 적이 있는데, 뭐 그것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또 아주 폐쇄적이지는 않았다. 개인방에 도어록은 있었지만 방음이 잘 안 되는 구조인지 옆 방이나 복도의 소리가 들려서 편하게 소음을 낼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여하튼 그런 게 다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광장과 밀실이 정말 잘 분배되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이신지 모를 분이 숙소 사용 규칙을 언급한 이후에는 개입하지 않은 점도 굉장히 센스가 있는 운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암묵적인 규칙이 여행자인 내가 머물기에 참 좋았다.
방에 머물면서 쉬고 있는데 창 너머로 클럽의 음악과 인파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낮도 낮이지만, 밤에 더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혼자 클럽에 가는 모험까지 할 여력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 그런 소음으로부터 가까우면서도 안전한 공간에 있는 기분이 뭔가 또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이제 외출하지 말고 다음 날 길을 나서야지 싶다가 배가 고파서 가까운 편의점에라도 들려야겠다는 생각에 잠깐 외출을 했다. 그리고 외출하고 나서 다시 깨달은 것. 이곳이 클럽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숙소였다는 것. 어둠이 내린 길목에 위치한 편의점의 앞, 뒤, 좌, 우가 온통 불야성이었다. 조심스럽게 불야성을 헤치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카푸치노 맛의 컵커피 하나와 빼빼로를 사들고 나서는 길에, 나는 내가 인생에서 아주 조그마한 사치를 부린다면, 뭔가 이 불야성 한복판에 있는 편의점에서 굳이 컵커피와 양이 적은 과자인 빼빼로를 산 뒤 불야성을 한 바퀴 산책하고 다시 숙소에 들어가는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뭐, 전에 국토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라는 섬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곳에 입점해 있던 편의점에서는 도시락 종류나 햄버거, 샌드위치가 들어오지 않더라. 만약 들어와도 그곳에서 파는 도시락 종류나 햄버거, 샌드위치는 뭔가 사치스러워서 정가로 팔지 못 하지 않았을까. 등산하는 길목에서 파는 생수나 아이스크림이 사치스러운 가격인 것처럼. 그날 컵커피와 빼빼로가 그랬다. 다행히 불야성을 둘러보고도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는데 당연히 다시 밤중에 밖으로 나가겠단 생각은 못 하게 하게 됐다. 그 정도로 모험을 즐기지는 않아야 한다.
9월 20일
다음 날 아침, 전날 너무 걷다가 새로운 장소에 와서 긴장한 탓인지 쉽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소음과 긴장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도 오픈된 공유 주방에서 간단한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게 가능한 시간이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였던 것도 생각나 간신히 몸을 일으킨 뒤 주방으로 갔다. 오픈된 공유 주방에는 간단하게 셀프 토스트로 끼니로 해결할 수 있게끔 식빵과 토스트기, 소포장된 딸기잼 파우치와 오렌지주스, 믹스커피가 놓여 있었다. 주머니 사정으로 이번 여행까지는 아닌 여행에서는 맛집 투어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준비되어 있던 조식을 셀프로 잘 챙겨 먹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탄수화물만으로 끼니를 챙기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챙겨 먹고 하루치만큼의 짐을 에코백에 나눠 담은 뒤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이 일대가 좋은 건, 아무렇게나 길을 나서도 흥미로운 길들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밤엔 생각보다 위험지대라 당황했지만, 그래서 낮에 더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기도 하고, 사실 너무 힘들면 그냥 망원동 근처에 있다는 한강공원에서 캔 탄산이나 하면서 멍 때리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숙소에서 소책자를 보던지 멍 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망원 한강공원으로 좌표를 잡고 길을 나섰다.
걷다 보니 상수동 카페거리를 지났다. 역시, 아무 곳이나 발걸음을 해도 손길이 많이 간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어젯밤의 클럽문화라고 하기엔 내가 클럽에 입장한 게 아니었고 사실 놀 줄 모르는데 혼자 노는 척할 수도 없는 것도 있기는 하고. 여하튼 나는 아무래도 상수동 카페거리까지만 커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근데 동시에, 그게 이 일대의 밤과 낮의 양면이라는 게 의아하면서, 야누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접고 다시 망원 한강공원 방향으로 향했다. 향하는 길에 ‘양화진’을 거쳤다. 이 장소는 숙소에서 망원 한강공원을 가려면 지나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나갈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지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정말 너무 정문에서 지나쳤다. 이 공간은 나를 알까. 우습게도 나만 당황했다. 걷다가 외국인 선교사 묘원 등, 천주교 성지를 다 지나가게 되었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어떻게 뭔가 외진 곳에 있을 것 같은 성지가 시내 한복판에 있을까 싶으면서도 성지에 다다르니 뭔가 결계가 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싶어서 굉장히 신비함을 느꼈던 적이 있는데, 이 날은 내가 성지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단 생각이 들지 않는 동시에 또 관광객 느낌으로 방문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이런저런 감회를 정리한 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한강공원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는 길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신기했다. 지인 1과 아는 사람 2가 사실은 친인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뭔 말이냐면 도보 여행자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서 출발하면, 골목길을 굽이 굽이돌아 망원 한강공원에 닿을 줄 알았는데, 이곳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서 바로 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을 통해 한강공원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이다. 오버해서 표현하면 홍해가 갈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심결에 한강공원에 도착해버렸다.
자, 이제 한강변을 따라 산책한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그런데 아차, 캔 탄산을 챙기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냥 한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흘러가는 강물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다. 강물과 반대방향, 인파와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망원 한강공원의 ‘보통의’ 산책로 입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으로는 골목길을 굽이 굽이 엄청 돌아가야 입구가 나온다고 나와 있어서 나도 당황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강변 따라 그렇게 걷는 중에 한강에 놓인 여러 다리들 중, 한 곳으로 보이는 다리에 출입 계단이 보였다. 이곳이 산책로 입구는 아니겠지만 한번 가보자는 생각에 한강공원을 생각보다 빨리 나오면서 동시에, 아, 그 출입로를 따라 다리에 진입한 후에 곧 그 다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양화대교였다. 그렇게 양화대교 한복판은 아니고 양화대교 보행로에 서게 되었다. 다시 옵션이 주어졌다. 그대로 그냥 한강공원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한강 건너편으로 갈 것인가, 한강 이편으로 갈 것인가.
단순하게 나는 여행객의 기분을 느끼려면 한강 건너편으로 가는 옵션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양화대교 보행로에 올 일이 이제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일단 양화대교에 왔으면 걸어서 한강을 건너가 보자 싶었다. 예전에 여의도를 자주 다닐 때 답답하면 마포대교를 건너던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양화대교는 동선에 들어올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유행가 ‘양화대교’가 유행할 때, 그 감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왜, 가사에 등장하는 택시 드라이버의 사연은 ‘마포대교’가 아닌 ‘양화대교’를 따라 흘러가는 것인가. 마포대교는 건너편이 여의도, 이편이 마포일 텐데, 양화대교는 건너편에 뭐가 있던가. 양화대교의 저편 방향 표지판에 ‘문래동’이라고 표기된 것이 보였다. 문래동 가기 전에 당산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긴 아주 잘 아는 동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한 동네였던 것 같다.
양화대교 같은 한강 다리를 건널 때는 엄청 큰 크루즈의 갑판에 올라온 기분 같은 게 든다. 이곳은 바다는 아니고 ‘강’이지만 ‘강’이 부르면 뛰어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그러니까 그 기분의 정체가 나한테는 크루즈 갑판에 올라온 기분 같은 거였다. 그럼 양화대교를 크루즈라고 하면 도대체 몇 층짜리 크루즈인 건지, 이왕에 크루즈라고 생각하기로 한 거, 타이타닉이라고 생각해볼까. 그렇게 한강공원에서 보는 한강과 양화대교에서 보는 한강의 다른 면을 감상이랄까, 감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낭만적이라 어울리지 않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오히려 멀리서 정중앙을 볼 때 강물이 보여주는 잔인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저편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다다랐다. 당산동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먼저 ‘선유도 공원’이 보였다. 아, ‘선유도 공원’ 종종 버스 타고 지나치던 곳인데 매번 들릴 생각은 하지 못 했던 곳 아니던가.
문득 시계를 보니 정오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제주도와 마라도, 여의도와 선유도. 그러고 보니 나는 요즘 아일랜드에 꽂혔는데, 무작정 걷다가 이렇게 어반 아일랜드인 선유도, 여의도보다 외딴곳인 선유도를 마주할 줄이야. 정말 어반 아일랜드가 내 동지 같아서 별생각 없이 오니까 이곳에 다다른 게 무슨 계시인 양 느껴졌다. 하필 ‘선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별로인 걸로 얽혔던 나의 기억과 내 기억과는 무관한 섬의 이름도 정말 타이밍이 잘 맞네 싶었다.
선유도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내부 시설물 안내도가 있었다. 여러 테마의 정원이 있었는데, 섬 전체가 흡사 한강 위에 떠 있는 잘 가꿔진 공원의 느낌이었다.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했다. 이곳도 단조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상보다 흥미로운 길들이 많았다. 투박한 돌기둥이 이어진 길들로 나 있는 정돈된 숲은 오버해서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을 연상시켰다. 아니, 다른 한편 전쟁 중인 외딴섬에 표류한 포로가 된 기분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가 조금 깊이 들어왔다 싶을 즈음 전망 좋은 카페가 보여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격이 후들후들했다. 등산로에서 마주한 생수나 아이스크림의 약간 사치스러운 가격이라는 것이 이 상황에 적용될 것 같았다. 여하튼 이번에도 하루 동안의 여비가 정오에 이곳에서 부리는 사치를 한꺼번에 감당할 금액보다는 적었기 때문에 한강뷰를 앞에 둔 카페를 뒤로 하고 다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놀랍게도 그곳이 아니어도 한강뷰를 볼 곳은 곳곳에 있었다. 괜히 목이 말랐을 뿐이다. 아니, 사실 정오가 넘어가니 정말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멍하니 한강뷰를 전망하는데 이곳에서 야경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동시에 이참에 그냥 야경까지 있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에 굳이 욕심 내서 갈 곳이나 향하고 싶은 곳이 없지 않나 싶었다. 그저 정오의 한강뷰가 청명하고, 슬슬 배가 고프네 그런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려면 우선 이 외딴섬에서 나와야 했다. 나그네가 된 기분이었다.
선유도 공원의 입구이자 출구가 한 곳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신기한 발견이자 위로가 되었다. 섬이라 육지와의 접점 혹은 입구이자 출구가 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입구와 거의 반대방향에서 보행자를 위해 마련된 다리를 건너니 선유도역 방향의 한강공원과 자전거 길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어디로 발걸음을 향할지 고민하다가 밥을 먹기 위해 시내에 가기로 했다. 거창한 밥은 아니고, 추석 연휴에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혼밥 하기에 눈치 보이지 않는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럴 땐 익명성이 장점인 시내의 패스트푸드점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을 수 있었지만, 조금 지쳐있어서 그냥 밥 먹는 것은 편하게 먹고 커피 마실 짬에 눈치 보지 않고 조금 앉아있다 오기에 적당한 곳으로 패스트푸드점 외의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으로 가장 인접한 곳을 찾아보니 도보로 20분 내외의 장소가 검색됐다.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지만 발걸음을 향했다. 패스트푸드점은 선유도역을 지나 당산역과 영등포구청역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고, 그곳을 향해 걸으면서 도보여행자로서의 장점을 생각했다. 아, 그러니까 걷다가 문득 과자 공장을 보았는데, 과자 공장이 저렇게 크고,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다니, 세상엔 아직도 내가 몰랐던 일들이 많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웠다. 아파트 단지 인근이라 그런지 추석 연휴에 한가한 건가 싶으면서도 종종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드립 커피를 마셨다.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다시 어디로 향해야 할까, 숙소에 가서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태원’에 가기로 했다. 갑자기 분위기 이태원이 웬 말인가 싶지만, ‘이태원’에 있는 아랍인 거리와 이슬람 사원에 가보는 건 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 언젠가는 가봐야겠다, 생각하던 일이었다. 마침 숙소에서 읽으려고 연휴기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둔 소책자 이름도 ‘아브라함의 종교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였다. 지리적으로는 굉장히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약간 생소한 그곳에 가 보려면 우선 밝은 때에 가야겠다 싶었다. 해서, 발길을 이태원역으로 돌렸다.
아, 여기까지 오려고 숨 가쁘게 타자를 치며 걸어왔다. 그러니까,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거리’와 ‘이슬람 사원’ 얘기는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어떤 큰 발견을 했다거나 대단한 통찰이 생겼다거나 특별한 사건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 국가들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정신적 거리나 심리적 거리가 더 멀었는데 가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왔다는 것. 뭔가 그게 중요했다. 가까이 있는데 여전히 이질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뭐랄까, 관광객 아니 여행자인데, 정탐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파주에 살면서 북한을 TV로만 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지 모르겠다. 아, 이슬람을 북한에 비유하거나 뿌리가 같은 어떤 종교와 다른 종교를 남한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입시키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어떤 개인이 어떤 종교에 대해 가지는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혹은 정서적 거리, 혹은 복합적 감정을 그렇게 나마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가득 찬 간판으로 둘러싸인 이슬람 거리를 통과하면서 이곳에 옮겨 놓은 그들의 ‘성지’는 어디에 숨겨져 있나 왠지 뭔가 조심히, 길 따라 찾아갔다. 그런데 왠 걸, 점점 외진 곳이 나오고 이슬람 사원이 더 멀게 표시되는 것이 아닌지. 내비게이션을 확인해보니 지도 상으로 이슬람 사원의 좌표를 이미 지나쳤다고 표시되었다. 아니, 이슬람 사원에 예전에 한번 답사와 본 적이 있고, 사진으로 확인했고, 지나온 길에는 이슬람 사원처럼 생긴 돔이 안 보였는데 지나왔다니.
그래도 내비게이션의 말을 듣기로 하고 좌표 따라 걸어온 거리를 거슬러 되돌아가니 이슬람 현판이 가득 찬 삼거리 사이로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물론 돔도 있었고, 사진에서 본 대로였다. 예배당은 남성만 입장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예배당 근처까지 발을 딛기는커녕 외벽만 확인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묘하게, 사실 겁을 잔뜩 먹은 채로 말이다.
다시 이태원역으로 돌아갔다. 이제 어딜 더 갈 수 있을까 무슨 얘기를 더 풀어놓을 수 있을까 싶다. 그 순간의 나는 정말 나그네 같았다. 아, 이태원을 더 둘러보면 될까. 조금 이국적이지만 이질적이지 않은 공간에 닿고 싶었다. 그래서 앤틱가구거리를 걸었다. 그 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상들과 분수대 장식들, 무슨 무슨 풍의 서양식 가구들이 가득한 상점이 빼곡히 이어진 공간이었다. 다행히도 앤틱가구거리는 이국적임에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공간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얘기를 계속해보자면, 이태원 거리도 이태원역 방향에서부터 걷기 시작해서 앤틱가구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녹사평역이 나오게끔 길이 나 있었다. 이제 정말,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녹사평역 방향으로 길을 걸었다. 그때, 이국적인 현판과 사람들로 가득 찬 그 공간 사이로 순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운 안정감을 주는 발견이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던 풍선이 빵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이곳에 올 때는 혼자 오지 말아야지 싶으면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한 아이스커피 한 잔과 구석 한 자리, 창문 너머의 풍경에 다시 그 모든 긴장을 까맣게 잊었다.
이 날의 여정은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신기한 길들이 나오더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길은 다 이어져 있더라로 요약될 수도 있을까. 목을 축이고 녹사평역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직진을 하니 이태원 시장이 나왔다.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는 의심스러운 구호를 걸어둔 그 길에 그렇게 다시 빨려 들었다. 다행히 ‘여성 안심 귀갓길’이라는 구호는 그냥 구호 혹은 위험신호가 아니었다. 그 거리는 앤틱가구거리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리였는데, 베트남식 음식점과 카페가 가득한 거리로, 그 길 따라온 만큼 되돌아가니 다시 이태원역이 나왔다.
그렇게 비록 여행까지는 아니지만 여행을 시작했던 원점, 상수역으로 향했다. 시간은 늦은 오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태원역에서 상수역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여행이라고 할만한, 그러니까 뭔가 여행답게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여행을 해볼까 싶었다. 조금 찬찬히 둘러보고 숙소 근처인 동네를 마실 하는, 그런 여행. 원점에 도착하면 그런 여행을 이제야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상수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출구에서 전에 걸었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걸으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아니 초저녁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방향은 와 보지 못한 길인 줄 알았는데, 웬걸 극동방송 건물이 보였다. 외진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수역에서 와보니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그 건물을 발견한 거리는 상수동 로데오거리로 이름 지어져 있었다.
조각난 퍼즐처럼 이곳에 언젠가 한 번쯤 지나쳤던 혹은 들렀던 건물 혹은 음식점, 혹은 더 구체적으로는 언젠가 그 길에 동행해줬던 친구가 디저트 맛집이라고 소개해주며 당근케이크를 사줬던 걸로 기억하는 케이크 가게들처럼 단편적인 기억들의 일부가 산책을 하면서 맞춰지고 있었다. 그곳이 여기에 있었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케이크 가게에 들어가서 당근케이크가 아직도 잘 있는지 보는 주책은 떨지 않았다. 그리고, 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꾸 멀리서 거리를 두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까이 가서 보기엔 내 시계의 시간이 자꾸 늦었다고 말했고, 그보다 사실 나는 살짝, 아니 상당히 지쳐있었다.
2박 3일 일정이라 이 날은 벌써 서교동에서 숙박하는 둘째 날이자 초저녁에 동네 사람처럼 이곳에 마실 나올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지쳤지만, 망원 한강공원에 다시 가서 저녁의 강변 모습을 보기로 했다. 망원 한강공원은 서교동 골목길을 굽이굽이 지나서 망원동 대로를 거쳐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망원 한강공원 입구가 크게 표시되어 있고, 보행자들이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걸 보니 여기가 초입인 것 같았다. 초저녁의 한강공원은 잔뜩 힘이 들어간 낮의 모습과는 또 다르게 한껏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자전거 도로에는 가벼운 복장을 한 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고, 강변 근처의 벤치에는 친구 혹은 가족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강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걷다 보니 오전에 망원 한강공원을 나와서 양화대교로 갔던 계단도 다시 마주했다. 하루를 뭔가 너무 게걸스럽게, 허겁지겁 보낸 것 같은 반성도 들었지만 그래도 우연히 마주쳤던 -주어졌던- 길이 다시 새로운 길로 이어지고 예전의 경험들과 연결되어 다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낸 일련의 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무작정 걷는 일이 나그네 같으면서도 아주 단편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고, 개인적인 시간들과 사건들을 연결시켜준 것 같았다. 지쳤지만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강은 계속 흘러 이전의 강물이 흘러간 뒤 새로운 강으로 채워졌고, 과거의 길은 멀어지고 새로운 길이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