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B급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이 있다.
저예산으로 대충 만든듯한 다소 저질스럽거나 잔혹하거나 똘끼있는 그야말로 내키는대로 만든 영화들.
병맛같지만 오히려 통쾌하고 유쾌하게 감정을 내뱉는 영화.
그러나 때론 잘꾸며놓고 매끄러운 것보다
거칠고 제멋대로인 B급정서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착한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사람은 벌을 받는다"
우리는 어릴적부터 동화나 학습을 통해 권선징악이나 도덕적규범을 따르는 데 대한 해피엔딩을 세뇌당했다.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세상은 온갖 부조리와 패배감이 가득하지 않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들 자신도 욕망에 약하고 실수투성이인 한낱 인간일 뿐인데 도덕적 규범이네 사필귀정이네 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영화들에 때로는 염증이 날 법도 하다.
때로는 거칠지만 솔직하고 거침없이 내지르는 B급영화들이 뇌를 비우고 즐기기에 부담없다는 거다.
B급 영화에 대해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황당함을 지적하며 영화의 전형적 틀에 맞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어쩌겠나.
그 황당함과 똘끼가 매력인 것을.
영화 '지구가 끝장나는 날'은 학창시절 잘나갔던 게리킹이 친구들을 불러모아 고향으로 가 학창시절에 못다한 술집순례를 시작하는데 거기서 파란잉크가 흐르는 로봇인간과 맞닥뜨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로봇인간과의 혈투 중 로봇 인간의 머리가 뽑히고 몸이 부서지는 폭력적장면은 물론이오,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주인공의 어이없는 똘끼와 적대관계였던 로봇들과 공생하는 반전결말까지 거침없고 통쾌하다.(거대기업 스타벅스를 대놓고 까기도 한다^^)
이봐!병신이 되는 것도 인간의 기본권리야!
와...이 엄청나게 시원시원하고 섹시한 대사.
이렇게 거침없이 내지르는 말에 담긴 허를 찌르는 주제의식까지. 한마디로 통쾌하다!
이제는 킹스맨처럼 B급 감성을 잔뜩 넣은 메이저급 영화들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영화 뿐만이 아니다.
일본여행에서 꼭 빠지지 않는 쇼핑장소가 있다. 돈키호테라고 음료부터 화장품, 문구류,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파는 가게다. 잡다하고 복잡한 게 이곳의 묘미다.
나도 일본에 갈 때마다 꼭 들르곤 하는데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벽장 속에서 반가운 물건을 발견하는 것 같은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고급지고 질서정연한 A급정서가 아니라 편안하고 만만한 B급정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쇼핑몰을 본딴 상점이 생겼을 정도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영국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녀의 플랜A는 2년간의 대학원을 마치고 1년의 인턴, 마지막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힘들고 아니다 싶으면 플랜B로 변경해 영국의 대표 빵인 스콘을 제대로 배워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친구의 계획을 응원했다.
실은, 그녀가 따끈하게 구워줄 스콘때문에 플랜B가 은근히 더 기대되기도 했다.
꼭 정석대로 살 필요도 없다.
남들이 봐도 멋진 인생, 고급진 인생에 목 맬 것도 없다.
B급이란 A급보다 못한 게 아니라
삶의 다른 방향성일 뿐이다.
조금 더 유쾌하고 거침없는.
일상의 무게에 지쳤다면
잠시 무거워진 뇌를 내려놓고
유쾌한 B급 정서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