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년으로 적어야지
'중경삼림'의 이 대사를 듣고 단숨에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만년이라...'영원' 이란 말만큼이나 매력적인 거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원'을 꿈꾸지만
사실 영원한 것은 없는게 유일한 진리인 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유통기한이 있다.
우리가 쓰는 물건도 닳거나 질리면 수명을 다한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 수명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사랑 역시... 그런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 소풍가는 날 전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너무 설레서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여행을 가기 전에 설레여 이런 저런 준비들을 하는데 막상 여행을 가면 즐거움은 많지만 설레임은 금세 사라진다.
사랑도 시작하기 전에는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상대에 대해 알아가느라 새벽까지 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방금 보고도 또 보고싶어서 헤어지지 못한다.
그사람이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사랑을 시작하고 나면 설레임은 영원하지 않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서로에게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을만큼 알고나면 설레임은 곧 편안함으로 변한다.
서로에게 과도하게 몰입하고 집중했던 것들이 원래대로 일상을 되찾고 나면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변했다는 마음이 사랑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고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유통기한이 임박해오기 일쑤다.
중경삼림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금성무(경찰233역)는 연인 메이에게 이별을 당하고 그녀를 기다리며 자신의 생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사먹는다.(메이가 파인애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일이 하루 남은 날 5월 1일자 유통기한인 파인애플을 찾자 편의점직원은 말한다.
기한 지난 거 누가 좋아하죠?
다들 신선한 거 찾지
금성무는 대꾸한다.
파인애플 한 캔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줄 알기나 해요?
맞다. 파인애플 통조림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파인애플 농장부터 가공공장, 도매소매를 거친 엄청난 과정이 필요하다. 하물며 사랑을 시작하고 쌓아가는 일은 어떻겠나.
흔히 잡아 둔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사랑도 막상 시작하고 나면 소홀해지기 쉽다. 그런데 바다나 강을 누비는 물고기는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지만 어항 속 물고기는 먹이를 주지 않으면 죽는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랑이 내게 왔을 때 더욱 소중히 아끼고 가꾸지 않으면 그 사랑은 금세 색이 바래고 죽고 만다.
영화 '6년째 연애중'을 보면 오래된 커플이 어떻게 이별하게 되는 지 보여준다.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연애에 점점 상대의 말에 호응하지 않고 시큰둥해지는 두 사람은 다가오는 새로운 사람에게 흔들리기도 하고 결국 오해와 실망을 안긴 채 관계가 끝나고 만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엔 동감한다.
그러나 사랑=설레임 이란 공식이 아니라면 사랑은 가꾸기에 따라 지속가능한 것 같다.
누가 그런말을 하더라.
사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상대를 보고 심장이 뛰면 그건 심장병이라고. 하하.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말투 하나에 반응하던 시기는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그것도 신선식품처럼 짧다.
그러나 설레임 대신에 들어서는 안정감과 신뢰 역시도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라면 그건 유통기간이 꽤나 길지도 모른다.
중경삼림의 금성무(경찰223)처럼 만년까지는 아니라도 유한한 인간 수명 정도는 커버 칠 수 있는 정도의 유통기한이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통조림을 먹으며 사랑만은 영원에 가까운 불변을 바라는 감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금성무처럼 오늘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