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엄마에게 꿈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젊었을 때는 옷 만드는 것도 하고 싶었고...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이제 오래되서 기억도 안나."
그말을 하는 엄마의 표정에는 그리움같은 것이 묻어났다.
어릴 때 나에게 부모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엄마는 항상 자식들 끼니를 거르는 일 없이 챙기셨고
아빠는 일을 쉬어본 적 없이 월급을 꼬박 생계와 자식을 양육하는 데 쓰셨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내게 언제나 믿을구석이었고 따듯한 보금자리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내가 엄마와 아빠의 나이가 되어보니
부모님도 슈퍼맨 슈퍼우먼이 아닌 보통의 존재셨더라.
단지
우리를 키워내기위해 슈퍼맨 슈퍼우먼처럼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오셨던 거더라.
"한 송이 꽃을 피우려 작은 두 눈에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을까
...
포기 안하려 포기해버린
젊고 아름다운 당신의 계절
가수 세정의 노래 '꽃길'의 일부이다.
내가 자라날수록 엄마의 꿈이 희미해지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인생이 바래져갔다는 걸
이제야 아프게 느낀다.
아빠는 너만큼은 반드시 지켜줄꺼야
영화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카가 형사가 자신의 어머니와 연관된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마주하게 되는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그 살인 사건의 진실에는 히로미란 여성과 그녀 아버지의 지독한 부성애가 깔려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린 히로미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을 감추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고 평생을 다른 사람으로 떠돌며 살다가 마지막까지도 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부모의 사랑은 때론 머리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물론 일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참 철없기도 했지.
한 때는 내가 저절로 큰 줄 알았다.
사춘기 때는 바락바락 대들며 날 이해못한다고 쏘아 붙이기도 했고,
부모님의 조언과 충고가 간섭이라며 귓등으로 흘려들은 것도 여러 번 이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가슴에 멍이 드셨을까.
이제 막 새내기 엄마가 된 나는 느낀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감을.
그것도 절실히 말이다.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 않더라.
하던 일을 중단해 경단녀가 되어야했고
하루 열댓번씩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느라 몇 시간씩 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부모가 되어가면서야
부모님의 빛바랜 꿈과 마주한다.
그게 너무나 아파서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엄마는 대답하셨다.
이제는 눈도 침침해서 바늘귀 끼는 것도 힘들다고.
그냥 조금 맘편히 지내고 싶다고.
이런 부모님께 노래가사처럼 꽃길만 걷게 해드리고 싶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신 바늘귀를 꿰어드리는 것.
조작이 어려운 스마트폰의 기능을 설명해드리는 것.
인터넷 쇼핑 주문을 대신해드리는 것.
쑥쓰러움과 민망함을 이겨내고 세월을 입은 거친 손을 쓰다듬어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