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의식 속에는 신에 대한 지향이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딱히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희망이 실패하는 자리마다 저것이 신의 실패인가, 아니면 인간의 조급함인가에 대해 질문하고는 했다.
그것은 언제나 비어있는 절대성으로서 신의 자리를 경유하는 의심의 형식으로, 나의 의식은 그 토대 위에 구축되는 것이다. 믿음은 맹종이 아니라 신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신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의 세계는 이 세상의 밖이 아니라 그 내부의 중핵을 지향하며 고통 속에서 삶의 긍정을 지켜내는 견고함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철학자 지젝이 말했듯이 예수가 괴물이라면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이 죽음을 맞는 모순의 방식으로 신과 인간의 단절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즉 신의 사랑은 예수의 죽음이 예증하듯 나를 내어주는 방식으로만 너에게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사랑의 보편적 형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어법에 따라, 신의 윤리는 "언제나 네 사랑이 신을 위한 보편적 법칙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행위하는 것"에 있다.
이 정언명령은 신을 위해 나의 생명을 희생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타자를 신과 같이 섬길 때 신이 비로소 임한다는 절대적 사랑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