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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l 16. 2018

부정의 긍정에서 긍정의 긍정으로

-피트 닥터 감독의 <인사이드 아웃> (2015)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완벽하고 작은 실수마저 호감으로 느껴지고는 한다. 그러나 사랑의 내부에는 크고 작은 슬픔들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한 우리는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크고 작은 습관들을 바꿔가기로 결심하고 이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실망하는 순간들이 늘어가며 지루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때마다 우리는 크게 싸우고 집에 돌아가 사랑을 저주하고 책망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부정하고 그의 존재 내부에서 내가 긍정하는 부분만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지속되는 싸움 속에서 서로의 호감은 분노로 바뀌었을 것이고 아니면 성격 차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상형을 찾아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잘못의 반복은 우리가 기쁨이라는 긍정의 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한다. 상대를 부정하는 긍정은 언제나 판타지이다. 부정을 통해서 도달하는 긍정은 끊임없는 부정을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카사노바들은 수많은 연애를 시도하지만 사랑에 실패한다. 그 이유는 현실에 진정한 사랑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그들은 사랑이 실재하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사랑이란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착취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부정의 긍정에서 긍정의 긍정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쁨이 슬픔을 부정하고 원을 그리며 좁은 내부 속에 가두어 둘 때 라일리의 일상은 슬픔이 부정되고 긍정의 힘을 통해 견딜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느끼는 슬픔은 망각되거나 잊혀 질 수 없는 분명한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은 커져간다.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미네소타에서 켈리포니아로 갑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되면서 변화된  환경과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부담감은 그녀를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으로 퇴행하도록 한다. 즉 라일리는 자신의 원하는 기쁨과 긍정에 도달하기를 꿈꾸며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라일리의 부정을 통한 긍정의 심리적 양상은 미네소타로 돌아가면 다시 자신이 상실한 행복을 찾을 것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슬픔을 부정하고 행복했던 과거 기억을 추구하며 가출하는 라일리의 모습은 현실과 슬픔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부정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영화는 사고로 컨트롤 타워 밖으로 떨어졌던 기쁨과 슬픔이 다시 힘을 합쳐서 컨트롤 타워로 복귀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긍정에게 부정되었던 슬픔은 비로소 긍정된다. 진정한 긍정이란 기쁨, 슬픔, 분노, 까칠, 소심의 모든 감정들을 우월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삶에 대한 다양한 차이들의 양태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슬픔을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함으로써 다시 삶을 포용하는 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라일리가 자신의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부모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때 더 큰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며 사랑과 긍정의 기쁨을 생성한다. 이것은 부정을 통한 거짓된 긍정의 생산이 아니라 긍정을 통해 더 강도가 높은 긍정을 생산하는 힘의 역능이다. 이처럼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긍정에서 긍정 그러니까 이중적 긍정에 도달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수용하는 역량의 발현이다. 사랑은 대상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관념에 동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힘을 수용하는 역량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긍정의 긍정을 통해서만 도달하는 지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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