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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Oct 27. 2024

왜 젊은이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지 물으신다면...

저출산의 비물질 영역

출산을 다룬 책을 쓴 원죄로 저출산에 관련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차이는 무엇일까? 출산율을 높일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네? 제가요? 모루겠어요...


대한민국 특유의 노동 구조, 집값 부담, 경쟁적 비교 문화로 인한 비용 상승과 과도한 사교육 등이 저출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수많은 경제학자, 인구학자, 정책 전문가들이 저출산 담론을 이끌어 온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반면에 애석하게도 나는 사회 구조나 정책/제도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산부인과 의사로서, 인간의 출산을 경제 문제가 아닌 생물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초저출산 현상도 동일한 관점을 통해 나의 의견을 덧붙여 보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신생아 1명의 총 양육 비용은 약 3.35억이 든다고 한다. 전 세계 1위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비용에 청년 세대는 점점 더 출산을 주저한다. 그렇다면 청년 세대는 아이 1명분의 생활과 교육 비용 지출, 자녀로 인해 발생하는 거주비용의 상승분, 양육 투자 시간에 따른 부모의 기회비용, 각종 세금 혜택과 국가에서 지급되는 양육 수당을 더하고 빼서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시적 경제 문제는 지극히 중요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결심의 상당 부분은 개개인의 느낌에 이끌리는 본능적인 일이다. 꼭 산술적 셈법을 거치지 않아도, 사람마다 아이 낳는 것에 대한 긍/부정의 심리 상태가 있다. 그래서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인간 본연의 인지적 구조, 생물학적 성향, 인류학적 시사점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 각도에서 살펴보면, 현대인이 일상에서 선호하는 가치가 재생산(임신-출산-육아)의 속성과 얼마간 갈등을 빚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공감을 얻은 이 인터넷 게시물에서 보듯이, 출산-양육을 관통하는 몇 가지 비물질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비효율, 불확실성, 위험, 자율 상실, 관계성 등이다. 이런 속성은 임신에서부터 양육에 이르기까지 필연적으로 재생산에 결부된다. 하지만 (젊은이로 추정되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삶에 이러한 요소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도 위 글에서 드러난다. 오늘날의 저출산 경향에 기여하는 바가 돈만큼 절대적이지는 않겠으나, 비물질적 요소도 분명히 출산을 기피하게끔 만들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무얼 하면 얼마를 준다는 식의 대안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이미 ‘무얼 하기로’ 마음먹은 존재에게만 의미가 있는 방식이다. 결혼이든 출산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대책이라는 것은 그러한 마음을 어떻게 먹게 할 것인가에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정지우 


나는 이 비물질적 요소들을 두 가지 세계로 나누어 제시하려고 한다. 하나는 뿌리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햇빛 세계다. 사람이 태어나는 곳, 다른 말로 뿌리 세계는 어두운 땅 축축한 흙 속에 박혀 있다. 그 곳은 불확실성, 온갖 위험, 모호한 것, 자율 침범, 구질구질한 사적 관계, 그 무엇보다도 죽으면 썩어 없어질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우리의 잎새는 신선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햇빛을 열망한다. 햇빛 세계는 달콤하다. 통제 가능성, 확실함, 명료한 예측, 육체적 안전, 독립적인 개인의 자율성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무가 잘 자라려면 물론 뿌리가 빨아들이는 물과, 잎새가 거두는 햇빛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 문명, 특히 최근의 한국 사회는 햇빛 세계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그 덕에 뿌리는 차츰 메마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나는 육체, 경쟁, 통제, 자율, 관계라는 키워드를 통해 최근 심화된 햇빛 세계(현대적 정신 세계)와 뿌리 세계(임신-출산-육아) 사이의 괴리를 살펴보려고 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요즘 것들’이 유독 버르장머리가 없고 나약하고 이기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에 호모 사피엔스가 추구하는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다. 뿌리와 잎새가 반대 방향으로 뻗어가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만의 일이겠는가? 다만 기술문명과 소비문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에 근래에 이 부조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은 그 근본적인 생물학적 속성이 수백만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뿌리는 그 자리에 머물렀을 뿐인데, 잎새만 태양을 향해 끝을 모르고 뻗어가버렸다. 이 괴리에 따라서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재생산 경험(임신-출산-육아)에서 더 큰 불일치를 겪게 마련이며, 그것이 초저출산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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