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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an 16. 2021

용한 한약을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고?

아이를 낳으려고 한 이유



아이를 가지려고 해도 좀처럼 아이 소식은 없었다. 귀가 솔깃한 ‘용하다는’ 한의원 주소도 물어 물어 찾아갔다. 전국에서 이름난 한약방이라고 했다. 얼마나 용하길래 예약 잡기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에 진짜 아이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한약방은 유명한 지방 도시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를 가지길 원하는 세상 엄마 아빠들이 다 모인 듯 대기실이 붐볐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기다려 만난 의사 선생님. 


간단히 진맥을 집고 “운동하세요. 스트레스받지 마시고요” 같은 엄마 잔소리 같은 말 두어 마디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진지하게 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들을 원하세요? 딸을 원하세요?”      


네...?? 의사는 나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아이 갖기 전에 ‘이걸 하라 저걸 하지 마라’ 등의 상담이 아니었다. 성별을 생각해보지 않아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했다. 그리고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진료가 끝났다.  한약을 받을 주소를 적어놓고 가라고 했다.      



대관절 아들인지 딸인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매달 아이가 생기지 않아 한약방까지 달려온 나에게 성별을 따지는 건 사치와도 같았다. 아니 성별을 따져 낳을 수도 없는 것을. 예비 엄마들의 마음에 바람을 넣는 상술이 아니었을까? 먼 걸음 마다하지 않고 간 한의원, 단 3분 진료, 뜬금없는 질문 끝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 돌아 나오는 마음이 헛헛했다.   

   



아들? 딸? 뭣이 중헌디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왜 그토록 아이를 원했을까? 아이 없이도 30년을 잘 살아왔는데, 아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왜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그때마다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삼 남매가 서로 엄마 옆을 차지하려고 엄마 사이에서 옥신각신 할 때 웃던 엄마. 아무리 형편없는 요리도 딸이 만든 건 ‘맛있다 잘한다’ 해주시던 엄마.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생일이며 크리스마스, 졸업식 때마다 작은 선물을 잊지 않던 엄마. 없는 살림이지만 자식 책 사고 공부시키는 데 쌈짓돈을 주저 없이 꺼내시던 엄마. 주말에는 저녁상을 놓고 가족이 둘러앉았을 때 어김없이 물컵이라도 잔을 들어 짠- 하고 건배를 하며 웃던 엄마.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애쓰던 엄마를 떠올렸다.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라는 질문은 부모의 삶을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기회를 주었다. 부모의 역할과, 고충과, 희로애락을 백분의 일쯤 짐작하려고 애썼다.      



아이가 태어나면 분명히 힘들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나도 내 가정에 따뜻한 시간들로 채우고 싶었다. 장롱 앞에서 이불 돌돌 감싸고 서로 간지럽히면 웃음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에 들리지 않을까? 적어도 한 명쯤은 내가 책임지고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찾아왔다가
별이 되어 떠난 아이는 나에게
 ‘왜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
  라고 질문을 주고 떠났다     




잠 한숨 꼬박 자지 않고 밤새 아이를 안아줄 수 있을 것인가? 새벽에 열이 나고 아프면 둘러업고 뛸 병원은 알고 있나? 토하고 나서 숨을 쉬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엄마가 육아법을 ‘몰라서’ 아이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신생아 응급처치법, 초보맘이 실수하는 것들, 밤중에  이불에 얼굴을 파묻는 무시무시한 일이 생길까 봐 ‘사전 시뮬레이션’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에겐 아이도 없었는데 말이다.     



세상 다 무너져도 한 명 정도는 내가 어떻게 건사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용기가 생겼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돈과 시간과 애정과 노동이 들어가는 일이다이걸 모른 채 시작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별이 된 아이가 다시 오길 기다리는 기간


아무것도 모른 채 막연히 엄마가 되려고 했던 나에게 조금 더 유예기간을 준다고 생각했다. 공부할 기간, 마음을 다스릴 기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기르는 기간, 겸손하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기간.

그리고 내 몸을 보살필 줄 알라고 내어주는 시간을 준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가지려면 엄마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제대로 품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준비 말이다.      




 ‘Why?’라는 부모 질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한약이었다.  


그리고 반년을 꾸준히 먹었던 한약은 아들도 딸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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