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달리기가 살리는 달리기로
[프롤로그]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려 애를 쓰면서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생활 24년차, 워킹맘 16년차.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일과 삶속에서 미션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지요. 일, 육아, 월급, 조직, 팀장, 엄마, 며느리, 노후까지 뭐 하나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낸 끝에 ‘오늘 나 뭐했지? 왜 이렇게 하루가 빠르지?’ 하고 문득 허무해 본 적 있으신가요?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 마음이 헛헛할 땐 쉬운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행동들은 나쁜 습관이 되어 내 몸에 딱 달라붙었지요.
제일 쉬운 건 술이었습니다. 맛있는 안주는 당연지사죠. 술과 안주는 잠깐 기쁨과 웃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술 먹은 다음 날은 마치 충전이 덜된 전자기기처럼 영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긴 숙취와 더불어 늘어나는 몸무게는 감당할 수 없었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머리카락도 마구 뽑았습니다. 어쩌다 어려서부터 머리카락을 뽑는 나쁜 습관이 들어버렸는데 도무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인터넷 숏폼 영상을 보면서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괴상한 모습이라니. 나도 내가 마음에 참 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원형 탈모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고요.
나이 40대가 넘어가자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깨어났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 하나에 감각이 없는 겁니다. 만져도 아무 감각이 없고, 저리거나 욱신거리는 느낌 없이 그저 나무토막 하나가 놓여 있는 것 같은 기분. 당황해 밤새 다리를 두드렸습니다. 겨우 피를 통하게 만들었는데, 다음날 또 똑같은 증세로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고장 나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다닌 회사에 중간 관리자이지만, 결국 나는 일개 회사원일 뿐이었습니다. 고단한 퇴근 후 또 다시 집으로 출근해 육아와 집안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낳은 아이는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부모 마음을 확 뒤집어 놓는 ‘중2병’에 걸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악을 쓰고 회사를 다니며 일하고 육아하고 꾸역꾸역 살까?’ 스스로 질문해도 명쾌한 답을 낼 수 없었습니다. 24시간 동안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누구지?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라는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자꾸 내 마음을 외면했습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괜히 나약한 소리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요.
어느 날 출근길. 멍하게 차들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쌩쌩 달리는 저 차에 치이면, 나는 출근 안 해도 되는 건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말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습니다.
‘나 지금 뭐래니. 정상이 아니구나.’
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골치 아픈 세상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정말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서 도망쳐 멀리멀리 달려가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이야 끝을 선언하고 도망칠 수 있지만, 몸은 하나뿐이라 내 몸에게서 도망칠 순 없었습니다.
더 이상 지긋지긋한 것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삼십육계 줄행랑처럼 시작한 것이 바로 ‘달리기’였습니다. 남들은 몸매관리 건강관리 취미생활로 시작한다는 달리기를, 나는 도망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죽을 것처럼 힘들 때 달리기를 시작했더니, 정말 죽을 것처럼 숨차고 힘들었습니다. 생전 달리기라고는 해보지도 않던 저질체력이었기에 더 힘들었지요. 하지만 이 죽을 것처럼 힘든 달리기가 오히려 나를 살려주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내가 몰랐던 달리기 세상이 길 위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엔 이렇게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달릴수록 힘이 빠지지만, 오히려 힘이 채워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제 달리기를 갓 시작한 초보 런린이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달리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어떤 맘으로 삶의 골목을 돌고 돌아 뛰어가고 있는지, 죽을 만큼 힘들 때 시작한 달리기가 어떻게 나를 살려 주었는지 이야기 해보고 싶었거든요.
자, 그럼 지금부터 ‘도망친 달리기에서 살리는 달리기’로! 생존 달리기 시작해볼까요?
프롤로그
-도망친 달리기가 살리는 달리기로
1부
-술꾼에서 러너로
-발모광꾼에서 러너로
-하비에서 러너로
-사십춘기에서 러너로
2부
-달리기 실패 계단
-뇌를 속이는 달리기
-달리기는 역시 템빨
-달친들의 뼈있는 멘트
에필로그
-지긋지긋하다면 길 위로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