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럽되 자랑삼지 않듯

by FONDOF

2025년 5월, 40개월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압도적으로

"아직 원에 안 다니나 봐요?"이다.


열에 대여섯은 '왜...?'가 생략된듯한 의아함이 얼굴에 담겨있다.

서넛은 '아이고...' 하는 거 같은 연민 내지는 응원이 전해지고

한둘은 '대단하시다!'라며 신기함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6개월? 48개월? 언제라고 시기를 명확하게 정해놓진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와 내가 충분한 소통이 가능할 때까지는]이라는 모호한 경계가 있었다.

Conversation이 아닌, Communication 이 될 때까지는

언제고 시작될 아이의 사회생활을 조금 미루고

나와의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자는 다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이

어느새 생후 40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 [충분한 소통]은 진즉에 이루어졌다.

아이가 나의 말을 알아들음은 물론이거니와

내 말 안에 담겨있는 숨은 의미나 감정, ("네가 짜증내면 다른 사람 마음은 어떨 거 같아?")

반어법으로 얘기하는 톤, ("엄마 말 안들을 거야? 어 그래 맘대로 해.")

이중 메시지도 ("엄마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은 혼내서 잘 가르쳐주려는 거야.")

이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거 같다.


그런 아이가 신통하고 고마우면서

내 마음 켜켜이 쌓인 레이어를 하나하나 걷어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 꽃잎처럼 연약하게 웅크리고 있는

'그렇다면 이제 슬슬 기관에 보낼 때가 되었단 말인가?'

이 한 문장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춘다.




아이가 말도 트이기 전, 아주 어릴 땐

"아유 기관이야 뭐.. 말로 뭔가 표현할 수 있을 때 보내고 싶어. 요즘 세상이 하도 말들이 많으니까.. 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아이가 어느 정도 얘기해 줄 수 있을 때 정도랄까? 아니면 '친구 때리면 안 돼!'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 아무래도 또 남자아이다 보니까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은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 인지가 갖춰졌을 때 보내야 내 맘이 편할 거 같아서.."

라고 가족이며 친구며 지인들에게 때마다, 수도 없이, 아주 자주 얘기하곤 했다.


내가 세운 나의 기준을 인정받고 싶었고

(그래서 이미 나의 얘기 속에 [단정]을 촘촘히 심어두었고)

그런 나에게 [내 사람들]이 주는 공감과 존중은 이런 나의 지론을 합리화해 주었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엄마인 거 같다는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커가며

지금은 저 때의 기준 따위,

그냥 [구실] 정도가 필요했던 거라고 편하게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사실은 그냥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지도에 저장해 놓은 '아이와 갈만한 곳'을 전부 도장 깨기하고 싶었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치환되는 이 시기를,

아이의 인생에 내가 전부이고 나의 인생에 아이가 전부인 이 시간을

할 수 있는 만큼 길게 길게 늘이고 싶었던 거다.


그러면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아이의 모습을

아이와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 예쁜 목소리를

많이 많이 기록해서

다시없을 이 시기를 최대한 생생하게 [박제]할

기억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싶었다.


어른님 오시는 밤 굽이굽이 펴고자 동짓달 기나긴 밤의 허리를 구혀낸 황진이의 마음으로

청소년이, 성인이 된 아이와 평생 나눠도 질리지 않을 추억을 쌓고 싶었다.





원에서 아이의 생일파티를 열어줬다며 같은 달 생일인 또래 친구들과 고깔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

어린이집 운동회날에 단체복을 맞춰 입고 왠지 내 아이보다 더 성장한 듯 보이는 영상 속 모습,

박물관이며 숲이며 원 아이들과 짝지어 손을 잡고 다녀왔다고 올린 현장학습 장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는 친구들의 sns 속 아이들을 보노라면

'아, 이런 건 아직 나의 아이는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다.' 하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팔딱팔딱 뛰는 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으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이 일상이

자랑스럽되 자랑삼지 않듯

내 선택의 이면에 있는 숱한 일상들도

단지 사랑스러울 뿐, 부러움삼지 않는다.



그냥

이 땅의 모든 [육아]라는 행위가

응당 애틋한 눈길로 바라봐지는 세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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