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05화

이거 만지면 안되거든?

하지만 너도 만졌잖아..?

by FONDOF


현대모터 스튜디오 내 작은 카페




햇살은 뜨뜻한데 바람은 차갑고 공기는 바삭한,

5월 말이 선사하는 희귀하고 귀한 날이었다.


테이크아웃 카페,

계산대 앞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매와 스타일 좋은 젊은 할머니가

메뉴를 올려보고 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그들이 궁금해 보이는 직원,

'지금 주문한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메뉴만 보고 있나?'


주문하기에는 조금 떨어져 서있는 그 애매한 거리를 보며

나는 저 사이로 그냥 들어가 버릴까 짧게 망설였다.

그러나 언니로 보이는 여자가 낌새를 챈 듯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 보더니

빠르게 주문대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엄마, 뭐 드시려오?"

"아 그.. 저 뭐야 그냥 그거면 된다니까.."

"아이스커피? 뜨거운 거 말고 아이스지? 춥지 않겠어?"

"아유 그래 뭐 알아서 해 엄마는 저 쪽 가 있을게, 좀 앉아야겠다.."

"너는 뭐 할래? 너도 엄마랑 같이 앉아있을래?"

"아니 나도 여기 있지 뭐~ 카페인 안 들어간 거는 없나?"


'마음을 정하고 주문대 앞에 선 게 아니었구나..'

짝다리를 짚고 서서 나도 메뉴나 봐야겠다, 하던 차에

갑자기 내 허리춤으로 불쑥-

여서일곱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시야에 등장한다.

레이스 치렁치렁 원피스에 빨강초록 형형색색의 부분가발까지

잔뜩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이모랑 여전히 옥신각신하며 주문도 전이었고

(점원에게 "혹시 이 카드는 할인 안 되나요?" / "네.. 그건 적용 안되세요..")

그러는 동안 어른들의 레이다에서 벗어난 이 자유로운 아이는

음료수 매대 앞에 서서 각양각색의 주스와 우유 등을

손가락으로 하나 집어 이름을 말하고

"이거 뽀로로 소다맛이다!"

또 하나 집어가며 이름을 말하며

"어, 이거 애플주스 나 아는데! 저번에 먹어봤는데!"

혼자 노는 건지, 누군가 들으라는 듯 자랑하는 건지

미묘한 경계의 놀이를 진행 중.


그때 여자아이보다 조금 어린,

한 네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애가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나 이 장면을 흙 튀긴다.

남자아이는 대뜸 음료들을 가리키더니 손으로 집으며

"이거 뭔데! 나 이거 좋아하는데! 이거는 뭔데!" 쩌렁쩌렁 신이 나서

지식(과 경험)을 뽐낸다.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고 그냥 이걸 아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보여,

그 귀여움에 웃음이 났다.


여자아이는 잠시 옆으로 물러나 남자아이를 경계하며 물끄러미 관찰하다가

자신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리다는 걸 파악한 듯했다.

그리곤 곧바로 자기 영역인데 왜 침범하냐는 듯

“이거 만지면 안 되거든?” 라며 팔과 어깨로 밀어낸다.

앙칼진 톤, 내가 잠시 무안해져 버렸다.

(하지만 너도 만졌잖아..?)


남자아이는 잠깐 여자아이를 한 번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대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엄마와 이모 곁으로 가서 올려다보더니 일러바치듯

“여기 있는 거~ 만지면 안 되는 거잖아~” 라며 으쓱댄다.


이제야 뜨문뜨문 주문을 하고 있던 엄마는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작하는 아이의 손을 떼어내며

"어어 잠깐만~" 하고 이모에게 무언의 눈길로 아이를 토스한다.

눈치 빠른 이모가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는데


“응? 맞아 맞아~ 이거 만지면 안 되지. 우리 똑순이 아이고 예뻐!”

호들갑 한 번 떨어주며 조카 얼굴을 장난스럽게 뭉갠다.


아이는 만족한 듯 다시 음료수 매대로 몇 걸음 이동해

다시금 검지손가락으로 찬찬히 살피다가 하나를 집어 들고선

"나 이거 먹을래!"라고 이모 얼굴 앞에 들이민다.



나는 그런 아이의 뒤통수를 내려보다

절로 나온 한숨 한 번 쉬고 피로해진 눈을 한 바퀴 굴려 감았다 뜬 찰나에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도 주문을 채 다 받지 못하고 아이 엄마를 동동 바라보던 모습,

나도 점원도 순간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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