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익은 마음
2025년 11월, Kia360 기아자동차 전시*체험관
나의 아들은 대단한 자동차광이다.
어쩌면 그렇게나 자동차에 매료될 수 있는 걸까?
걷기도 전부터 촉촉한 두 손에 장난감 자동차를 한 대씩 쥐고
바퀴를 굴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던 일상이더니
어느 날은 엎드려서 바퀴가 굴러가는 모습만 무섭도록 관찰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쩌면 남자인간 안에 내재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사냥본능 DNA] 때문이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동차]라는 세계로의 입문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도 변치 않는 최애 [경찰차]부터
소방차, 구급차, 중장비차, 교통수단, 군용 탱크.. 등
자동차의 세상은 종으로, 횡으로, 끝을 모르고 확장이 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아웃라인이 정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처음의 경찰차로 돌아와 특공 경찰차, 순찰차, 과학수사차..
소방차는 소방 사다리차, 소방 살수차, 물탱크트럭.. 등등
세부 카테고라이징 단계가 이어진다.
그날은
이런 자동차마니아 아들을 위해
현대모터스튜디오와 기아자동차 체험*전시관 두 군데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두 군데 다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최고의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전시되어 있는 각종 자동차들을 전부 탑승해 볼 수 있고
눈 돌아가게 만드는 굿즈샵에서 자동차 장난감도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천국이 별 거냐 싶어지는 스케줄.
이런 날의 아이는 기분이 좋다 못해 은은하게 돌아(!) 있다.
머릿속은 땀으로 촉촉하고
목소리는 한껏 상기되어 있으며
두 볼은 내내 발그스레, 입가에는 웃음을 잔뜩 머금고
두 눈을 반짝이며 땅에서 약 2cm 정도 떠다니는 느낌으로 움직인다.
행복한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흐뭇함에 취한다.
그 강렬한 행복감을 맛보고자
주말이면 온전히 아이를 위한 일정을 짜려는 거겠지,
그리고 그 힘으로 또 평범한 월화수목금을 살아가는 거고.
Kia360 내부에는 각 자동차 별로 제작된 엽서가 놓여 있다.
"이거 혹시 가져가도 되나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된다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직원 분들이 다가와 웃으며 손에 쥐어주신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이런 류의 호의는 더없이 반갑고 감사하다.
"가져가도 된대?"
어른들의 대화를 기다리던 아이가 기대에 찬 눈으로 물어본다.
"응! 한 장씩 종류별로 골라볼까?"
횡재했다는 듯 확장되는 커다란 눈동자,
그리고 보물카드처럼 소중하게 차곡차곡
작은 손에 모아지는 자동차 카드들.
양손에 두어 장씩 자동차카드를 쥐고 날개처럼 퍼덕이며
아이는 신난 마음을 춤으로 발산한다.
그 모습을 잠깐 눈에 담고
나도 여유롭게 뒤로 돌아 뒷짐을 지고 마저 전시를 감상한다.
그때,
빼액 소리에 찔린 듯 놀라 돌아보니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씩씩대며 태은이를 노려보고 있다.
도톰한 원피스에 물결모양의 카라, 치맛단은 체크가 들어가있다.
곱슬거리는 파마머리를 눈썹보다도 높게 양갈래로 묶었고
새하얀 타이즈에 굽없는 메리제인 검정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나는 마침 5미터쯤 떨어져 있었기에
일단 바로 개입하지 않고 무슨 일인가 지켜봤다.
태은이는 의아하다는 듯 누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바로 다음 순간 여자아이의 아빠가
"아니, 아니지 지연아. 왜, 왜그래? 이거 동생 건데 그렇게 확 뺏으면 어떡해?"
하며 딸의 손에 쥐어진 자동차 카드를 뺏을까 말까 망설인다.
빳빳하던 자동차카드가 구겨져있었다.
'태은이가 뺏은 건 아니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개입하지 말고 지켜봐야겠다.'
생각하면서 남편을 살펴보았다.
태은이 바로 뒤에서 듬직하게 서있는 남편,
팔짱을 끼고 태은이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역시나 개입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런 때 나는 고마움과 안도의 마음이 동시에 든다.
아이의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나의 의중과 같은 결을 갖고 있다는 점이
육아를 함에 있어 더없이 든든하고 큰 힘이자 믿는 구석이 된다.
"지연이가 동생 거 뺏었어? 에이, 안되지. 엄마가 대신 돌려줄게. 괜찮지?"
하며 엄마가 지연이의 손에서 자동차 카드를 억지로 빼냈다.
구겨진 자동차 카드를 보지도 않고 태은이 손에 허둥지둥 올려놓듯 돌려주고는
자신의 아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태은이는 다시 돌아온 자동차카드가 구겨진 것을 보고
잠깐 얼굴이 일그러지며
뒤를 돌아 아빠를 올려다봤다.
남편은 그런 태은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말없이 두 눈을 천천히 깜박이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연이라는 아이는 이제 아빠 품에 안겨
본격 울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입을 어찌나 크게 벌리고 우는지
만화에서처럼 목젖이 다 보이는 거 같았다.
"아이고.. 속상했구나? 우리 딸이 속상할만했네."
아이의 아빠가 지연이의 울음에 기름을 붓는다.
"그리고 지연이가 지금 졸려서 더 그래, 졸려서~"
곁에서 아이의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이 부부는 대화의 방식을 차용했지만
사실은 지연이의 성에 차는 역성을 들어주고 있었다.
묘한 배틀의식 마저 전해졌다.
마치
"엄마 말이 맞지?"
"아니, 아빠 말이 맞지?" 하는 듯한.
"어이구~ 우리 딸, 무안했어 무안했어. 어어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마지막 한마디는 킥이었다.
자, 그러니 마음껏 울어도 된다. 고 선언해 주는 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으라는듯 하는 변명 같았다.
태은이는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휴..! 한숨 한번 내뱉고
다시 날갯짓을 하며 이 공간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편은 그런 아이의 뒤를 좇아 익살스럽게 종종 뛰어갔고
가벽 너머 저쪽 공간으로부터
태은이와 남편의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지연이는 아빠 품을 격렬히 거부하며 내리겠다고 사지를 뻗대고 있었고
안고 걷기에도 커다란 딸아이를 떨어트릴세라
콧잔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치켜 쓰지도 못한 채
지연이의 아빠도 그렇게 아이와 함께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의 옷매무새를 바로 잡아주며
"가자가자~ 이제 집에 가요~"
하는 지연이 엄마의 뒷모습을
나는 잠시간 바라봤다.
#뺏어서미안해
#어렵지않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