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업무분장
2025년 11월, 스타필드 잇토피아 내 유아놀이방
이곳은 내가 아이와 즐겨 찾는 공간이다.
널찍하게 오픈되어 사방팔방으로 시야가 확보되면서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에서 식사를 즐길 수도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뛰어놀 수 있으니
올 때마다 만족스러운 곳이다.
어른들이 식사하는 동안 아이들은 매트 깔린 유아공간에서 뛰어놀다가
허기가 지면 한 번씩 달려와 감자튀김이니 너겟 같은 것들을 입 안 가득 욱여넣고
우물대며 다시 놀이를 하러 들어가곤 한다.
어른들은 이따금씩 미어캣 모드로 자신의 아이가 잘 놀고 있는지,
다른 친구들을 다치게 하거나 속상하게 하고 있진 않은지,
엄한 데 올라가거나 뛰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진 않은지 체크한다.
태은이는 동갑내기 친구 유하와 개끈 풀린 강아지처럼 뛰어놀고
나는 유하의 엄마 혜미와 마주 앉아
한참 전부터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드디어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놀이방 안에는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아기들부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예닐곱 살 어린이들까지
다양한 월령의 작은 인간들이 놀고 있다.
돌쟁이 아기들이 딱 잡고 일어서기 좋을 정도의 크기만 한
정육면체 모양의 쿠션 큐브블록이 있어서
아이들은 저마다 쿠션 큐브블록을 하나 둘 품에 쥐고 다니며
쌓기도 하고 던지거나 의자 삼아 앉거나 하며 잘 갖고 논다.
한쪽 구석에서 큐브로 요새를 짓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게 정성껏 쌓아놓은 큐브를 날듯이 뛰어다니며 전부 부서뜨리는 무리들도 있다.
공들여 쌓은 큐브성이 무너져 속상해하는 아이의 눈에 원망이 그렁그렁하다.
엄마 봤어? 나 멋지지? 하며 쌩하니 달려가는 천둥벌거숭이의 눈빛은 속도 모르고 반짝인다.
아이들 하나하나 표정이 어쩜 그리 생생한지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공간이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남매가 각각 큐브블록을 하나씩 아름드리 안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남매의 엄마를 보니 앞에 각각 3개의 큐브블록이 놓여있다.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아, 나 안 해!" 하며 얼굴을 잔뜩 찡그리더니
벌써 엄마 곁으로 간 오빠 뒤를 심술 난 듯 발을 쿵쿵 구르며 따라간다.
오빠는 엄마가 지켜주고 있던 블록 3개 위에
지금 가져온 하나를 더 얹어 총 4개의 블록탑을 쌓았다.
반면 여자아이의 블록은 3개가 제각각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이거 하나 더 쌓은들 어차피 오빠 블록보다 높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 여자아이는
온몸을 베베 꼬며 마지못해 블록 하나를 쌓고는
울기 시작한다.
엄마가 그런 아이를 차분히 달래주었지만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보기 시작한다.
"아니야! 아니야!"
오빠 블록을 한 번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자신의 블록을 가리키며 둘 다 멋지다고 괜찮다고 해주는 듯한 엄마에게
여자아이는 그저 아니라고 패악에 가까운 성질을 부리고 있다.
"야, 어차피 그래봤자 너도 4개고 나도 4개야. 우리 똑같아."
달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오빠도 한 마디 보탠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일수록 화가 더 난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이
이 공간에도 적용된다.
오빠는 동생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쌓은 4개의 탑이 그저 뿌듯한 눈치다.
블록탑과 키도 재보고 엄마에게도 뭐라 뭐라 하는 얼굴이 내내 웃고 있다.
줄무늬 티셔츠에 안경,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하나로 묶은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웃어 보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그녀가
더없이 우아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쩌면 그녀, 굉장한 육아 고수일지도.
오빠와 엄마의 사이가 살가울수록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삐이익 소리를 내며 끓어오를 주전자 같았다.
아이의 생떼에 감정적으로 응수하지 않고 차분히 지도하다가
더 이상 효과가 없는 지경에 이르자
엄마는 결심한 듯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간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는 딸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여자아이는 격렬하게 거부하며 양팔을 만세 하듯 쭉 펴 올린다.
아이가 품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나 싶었지만
엄마는 능숙하게 다시 딸아이를 다잡고 들어 올린다.
바지춤에 야무지게 넣어 입힌 내의가 아이의 몸부림과 함께 빠져 올라가 생살이 드러난다.
아이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고 귀여운 배꼽이 빼꼼 보인다.
나의 시선은
그런 채로 속절없이 엄마에게 잡혀 신발장 쪽으로 강제퇴장당하는 모습을
천천히 따라갔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등장하더니
마치 인수인계받듯 차분하게 아이를 이어받는다.
아빠 품에 안기자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뭔가 체념한 듯 얌전해진 아이,
그들은 그렇게 코너를 돌아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아이의 엄마는 말없이 아이를 아빠에게 전달해 주고는
홀연히 돌아서 다시 아들에게로 왔다.
그리고 이 다정한 모자는 그들만의 놀이를 세상 즐겁게 이어간다.
이번에는 블록들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는 아들과
그 아들의 한 손을 잡아주며 응원하는 엄마,
마치 EBS 어린이드라마에 나올법한 화목함이다.
수 분이 지났을까,
아빠와 딸이 다시 돌아왔다.
억지로 안겨가던 아까와는 달리
단정하게 아빠의 손을 잡고 제 발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맞은편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한다.
여자아이는 오빠와 엄마를 불러 눈을 맞추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숟가락으로 몇 번 식판을 휘젓더니
입을 앙 벌려 입안 가득 쌀밥과 돈가스를 넣고 우물거리며
아빠를 향해 배시시 웃는다.
#박수
#짝짝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