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애가 끓어오른다.
2025년 12월, 프리미엄 아웃렛
집에서 20분 거리에 프리미엄 아웃렛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찾곤 한다.
간단한 쇼핑 하기에도 부담 없고 식사도 다양한 옵션이 가능해서
괜히 그냥 집에 가기 아쉬운 날이면 만만하게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게다가 아웃렛 야외로 나오면 중앙에 제법 큰 놀이터가 있어서 참새방앗간이기도 하고.
그러면 남편과 아이를 놀이터에 들여보내고
나는 바로 앞 친절하게 즐비된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며 기다리곤 한다.
저녁 시간이지만 영상 5도 정도,
15분 정도는 밖에서 뛰놀려도 될 거 같았던 날,
아이는 꺅꺅 소리를 지르며 아빠와 함께 미끄럼틀 안으로 사라졌고
나는 더없이 흐뭇한 마음으로 그 장면을 감상한다.
철제의자에 얇은 방석을 깔아놓아 준 덕에
그리 춥지 않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려줄 수 있다.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태은이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주변을 휑 둘러봤는데
아니, 이건 태은이의 목소리가 아니다.
“엄마아.. 허엄마아…”
목을 긁으며 내는 쉰소리로 가늘게 우는 남자아이의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내가 앉은자리 기준으로 왼쪽 50미터쯤?
새빨간 패딩점퍼를 입고 울며 엄마를 찾는 남자아이가 보인다,
4살? 어쩌면 3살 정도?
‘어머, 어떡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아이 곁으로 검정 패딩을 입은 긴 머리의 여성분이 다가갔다.
나는 미어캣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걸로 보아 엄마 같지는 않다,
그녀도 나처럼 저 아이를 발견하고 어쩜 좋아 하는 마음으로 다가간 거 같았다.
아이는 잠시간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다시 엄마를 부른다,
좀 전 보다 더 커진 목소리.
“엄마아아..어엄마아아아..”
아이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정처 없는 발걸음으로 허둥대며 아무 데로나 마구 걸어가고 있었다,
여성분은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며 멈춰 세우고는
무릎을 꿇고 아이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얘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지 그대로 계속 앞으로 앞으로 간다.
‘아이고, 얘야..’
그런 아이를 난감한 듯 몸을 숙이며 따라가 주시는 여성 분,
그리고 그녀 뒤로 멀찍이서 지켜보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
개유모차를 붙잡고 서서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이는 고집스럽게도 계속해서 걸었고
이윽고 내 바로 앞까지 왔다.
나는 못 참고 일어나 그녀에게 물었다.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린 건가요?”
“네에.. 아휴…”
그때 그녀와 내 사이로 검은 정장을 입은 시큐리티 직원 남성 두 분이 지나갔다.
그녀는 다시 아이 꽁무니를 따라 움직였고
나는 시큐리티 직원 중 한 분을 불러 세우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려서.. 얼른 가보세요, 방송해주셔야 할 거 같아요. “
시큐리티 남자직원이 얼른 저 둘에게 따라붙었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이 되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아니 사내아이.
아이는 여전히 엄마를 부르며
어른들이 뭐라 하든 상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런 아이를 종종 쫓아가는 두 명의 친절한 어른의 키를 낮춘 걸음걸이.
.
.
.
‘뭐, 괜찮겠지.‘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다시 앉았다.
1분쯤 지났을까,
아이와 비슷한 새빨간 패딩점퍼를 입은 여자가
황망한 눈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요만한 남자아이 못 보셨냐고 물으며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서 등장했다.
나는 옳다구나 냉큼 일어나
”아이 저 쪽으로 갔어요! “
일단 아이 엄마에게 아이의 행방을 알려주며
따라오시라 했다.
아이 엄마는 순간 안도하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헐레벌떡 달려오는가 싶더니 금세 터덜터덜 속도가 느려졌다.
“남자아이가 맞나요?”
손바닥을 허리춤에 갖다 대며 아이의 키를 같이 알려주면서.
“맞아요, 빨간 패딩 입었죠?”
“… 예.. 예….”
아이 엄마는 좀처럼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얼마간이었을지 모를, 그녀 시야에서 아이가 사라졌던 마음을 가늠하며
나는 좁은 길로 이어진 산책로를 먼저 뛰어가
야트막한 언덕 너머에 아이와 여성 분, 시큐리티 직원을 불러 세우고
뒤 돌아 아이 엄마에게 아이 여기 있어요! 외쳤다.
이 기쁜 소식을 1초라도 먼저 알려주고 싶은 마음,
마라톤 전투 승전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렸던 페이디페데스의 심정으로.
아이 엄마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언덕을 한 달음에 올라왔고
아이를 보자마자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 장면을 기쁘게 직관하며
여성 분도, 나도, 시큐리티 직원도
엷게 웃으며 각자 방향으로 퇴장하는데..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사자후.
“너 진짜 자꾸 혼자 어디가? 왜 그렇게 혼자 사라져? 또 그럴래?”
그래, 저게 찐 반응이지.
저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겠나..
= 얼마나 화가 났겠나..
언제 그쳤는지 더 이상 울지 않는 얼굴로
(아니 처음부터 소리만 울고 있던 거였을지도)
그런 엄마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고 쪼꼬만 녀석.
나는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를 낳기 전이었다면 어쩌면
저 엄마를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좀 안아주지, 화부터 내네.. 이러면서.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극한의 두려움은
극도의 분노와 맞닿아있다는 걸.
가방이며
쇼핑백이며
핸드폰이며
전부 그대로 야외 테이블에 널브러져있던 자리로 돌아와
차가운 방석 위로 풀썩 앉았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빨간 패딩을 입은 남자아이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엄마를 앞질러 걷고 있고
빨간 패딩을 입은 엄마는
두어걸음쯤 뒤에서 아이 뒤통수를 노려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마엄마손좀잡아라마